런던 담벼락에 '중국 공산당 정치 선전' 등장… 왜?

영국 런던의 예술가들이 주로 밀집해 거주하며 ‘예술가들의 도시’로 불렸던 브릭 레인(Brick Lane) 골목 곳곳에 중국 공산당의 핵심 가치로 알려진 문구들이 등장해 찬반 논란이 뜨겁다.

일각에서는 문화 식민주의에 대한 항의라고 주장했지만, 해당 낙서를 조롱하며 새로운 낙서를 덧붙인 이들도 있다.

런던 예술가의 거리에 등장한 중국 공산당의 12가지 사회주의 핵심 가치관 [사진출처=연합뉴스]

7일(현지시간) 영국 BBC방송, AFP 통신에 따르면 지난 주말인 5∼6일 사이 브릭 레인의 한 벽면에 자유·평등·공정 등 중국 공산당의 12가지 사회주의 핵심 가치관이 새겨졌다.

뒷골목 담벼락인 ‘브릭 레인’은 평소 정치적 풍자 메시지를 담은 낙서나 그래피티로 빼곡히 채워져 있다. 누구나 자유롭게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공간이다.

하지만 누군가 담벼락 전체를 흰색 페인트로 칠해 기존 낙서를 싹 덮어버린 뒤 그 위에 붉은색 페인트로 중국식 사회주의 핵심 가치관인 한자 24글자를 적어놓은 것이다.

이들 12가지 사회주의 핵심 가치관은 후진타오 전 중국 국가주석 시절인 2012년 제18차 전국 대표대회에서 채택된 것으로, 인민들에게 사회주의 사상을 선전하는 도구로 쓰인다.

이를 낙서한 이들은 중국 유학생들이 주축이 된 ‘까치’라는 뜻의 필명 ‘이취에(一鵲)’를 사용하는 예술가 그룹이다.

이취에 멤버 중 한 명인 왕한쩡은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해당 낙서 제작 과정과 완성된 담장 사진을 게재하며 “문화 식민주의를 비판하기 위해 낙서했다"고 밝혔다.

이어 “서구중심주의와 식민주의에 대한 항의의 표현”이라며 “많은 예술가의 작품을 가려버려 유감이지만 이는 서구식 자유주의에 따라 정당한 것이며 (서구식) 자유에 대한 대가”라고 주장했다.

그의 주장에 반발하는 사람들은 본래 그의 작품에서 일부를 변경해 희화화했다.

해당 한자 앞에 ‘없을 무’(無) 자나 ‘아니 불’(不) 자를 써서 ‘무자유’ ‘무평등’ ‘불공정’ 등의 단어로 바꿔버린 것이다.

매체에 따르면, 평등 글자 앞에는 공산주의 정권을 비판한 조지 오웰의 소설 ‘동물농장’에 등장하는 구절 “누군가는 다른 이들보다 더 평등하다”가 적혔고 ‘화해’(和諧·화목) 단어 아래에는 “6월 4일(톈안먼 사태 발발일)을 기억하라”는 문구가 쓰여있다.

예술가 이췌가 쓴 중국 공산당의 핵심 가치 자유, 평등, 민주 등의 글자에 불(不), 무(無) 등이 덧씌워진 모습 [사진출처=에포크타임스 캡처]

또 다른 벽면에는 시진핑 국가주석을 비판하려는 듯 곰돌이 푸를 그려놓은 삽화를 넣은 그림이 그려지기도 했다.

이들이 브릭 레인의 기존 낙서를 모두 지워버린 것을 두고, 그래피티는 표현의 자유로서 보호돼야 한다는 비판도 나왔다.

인권단체 홍콩워치의 베네딕트 로저스는 엑스(옛 트위터)에 “정권에 대한 선전으로 런던 브릭 레인을 더럽혔다”고 적었다.

왕씨는 BBC와의 인터뷰에서 “생각보다 반응이 격렬했다”면서 살해 협박은 받은 사실도 밝혔다.

이어 24글자로 된 사회주의 핵심 가치관은 “중국의 목표일 뿐만 아니라 세계의 공통 목표”라고 말했다. 이취에의 또 다른 멤버는 새로운 낙서를 할 것을 예고했다.

현재 런던 당국은 이들이 한 낙서를 모두 지운 상태이다.

김현정 기자 kimhj2023@asia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