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 갈등 속 '그림자' 된 아이... 오은영 "방임과 학대" 경고
[이준목 기자]
▲ MBC <오은영 리포트-결혼 지옥>의 한 장면. |
ⓒ MBC |
수많은 가정 내 부부갈등 속에서 최대의 약자이자 피해자는 엉뚱하게도 '아이'가 되는 경우가 많다. 최소한 본인의 의사표현이나 자기보호가 가능한 성인에 비하여, 아이는 단지 그 가정에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본인의 책임과 무관하게 두려움과 불안감을 감당해야 한다.
불우했던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로 인하여 애정을 갈구하는 아내, 고된 일상에 찌들어 무뚝뚝하고 무기력해진 남편, 그리고 이러한 부부의 갈등 속에서 '방임과 학대'에 노출되어버린 아이의 안타까운 사연이 시청자들의 충격을 자아냈다. 8월 7일 방송된 MBC <오은영 리포트-결혼 지옥>에서는 '사랑받고 싶어 vs 돈 좀 아껴, 사돈 부부' 편을 통하여 어린 나이에 결혼해 가정을 꾸린 젊은 부부의 이야기가 그려졌다.
결혼 7년 차인 박지수-이우주 부부는 30대의 나이에도 학생을 연상시키는 동안 커플로 눈길을 끌었다. 스튜디오에 등장하자마자 돌연 눈물을 쏟아낸 아내는 "사기결혼을 한 것 같다. 남편에게 너무 지배적인 결혼생활 때문에 무너진 삶이 너무 불행하고 억울해서 여기에 나오게 됐다"고 먼저 사연을 신청한 이유를 밝히며 궁금증을 자아냈다.
▲ MBC <오은영 리포트-결혼 지옥>의 한 장면. |
ⓒ MBC |
부부의 일상이 VCR로 공개됐다. 아내는 남편에게 시종일관 적극적으로 애정을 갈구하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남편은 피곤하다는 이유로 번번이 대화를 회피하거나 무뚝뚝하게 반응했다. 결혼하고 남편을 따라 연고가 없는 지역으로 오게 된 아내는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할 상대가 없어서 우울감에 빠졌다고 한다. 사람이 그립고 소통할 대상이 필요했던 아내는 시급을 받지 않고 일을 도와주는 아르바이트를 하기도 했다.
아내는 저녁에 피곤해서 잠든 남편을 깨우며 대화를 시도했다. 아내는 "정말 나를 사랑하는 게 맞냐?"고 확인받고 싶어했다. 계속해서 잠을 깨우는 아내에게 분노한 남편은 "그만 좀 하라"고 화를 내며 험한 말까지 쏟아냈다. 참다못한 남편은 결국 밖으로 나가버렸고, 아내는 텅 빈 침대에 앉아 홀로 눈물을 흘렸다. 패널들은 절박한 아내에 비하여 남편의 태도가 냉정해보인다는 의견을 밝혔다.
아내는 남편의 사랑을 확인받고 싶어하는 이유에 대하여 "평소 대화하는 시간이 없다. 남편은 바쁘다는 이유로 전화하는 것도 연락하는 것도 빨리 해야 한다. 집에 와서도 내 말에 집중하지 않는다. 같이 사는 게 맞나 싶을 정도로 대화가 되지 않는다"며 답답함을 호소했다.
이어 아내는 남편의 이런 행동이 결혼생활 초기부터 시작되었다며 "남편은 항상 자기를 우선 해주기만을 바란다. 출산을 하고 나서 초보 엄마로서 모든 것이 서툴고 두려웠을 때도, 남편은 아이 한번 봐주는 것도 굉장히 싫어했다. 저는 답답한 육아 감옥에 갇혀 홀로 유령이 된 기분이었다"고 고백했다.
남편은 아내와 가정을 돌보지 않은 이유에 대하여 "아이가 신생아일 때 밤새 울어서 잠을 못 자고 나가다보니 피곤해서 예민해졌다"고 해명했다. 그렇다면 남편은 대체 왜 그리 피곤해하는 것일까.
남편은 채소-과일 가게의 지점 관리직을 맡고 있었고, 일주일에 하루만 쉬고 항상 새벽에 출근해 10~12시간 이상을 일해야 하는 고된 일상을 보내야 했다. 원래 마른체형이었던 남편은 힘든 업무를 하면서 살이 찔 틈이 없다며 현재 173cm에 체중이 47kg에 불과하다고 밝혀 패널들을 놀라게 했다.
▲ MBC <오은영 리포트-결혼 지옥>의 한 장면. |
ⓒ MBC |
하지만 부부의 가장 심각한 문제는 따로 있었다. 집에 있던 아내는 정오가 다 되어서야 아이와 배달음식으로 첫 끼니를 해결했다. 아이는 엄마와 같은 느지막한 시간에 일어나, 엄마가 먹는 샐러드와 영양제를 함께 따라 먹었다. 아이가 먹기에는 너무 큰 알약이 버거웠는지, 엄마가 보지 않는 사이에 몰래 영양제를 버리기도 했다. 식사를 마친 후 아내는 이번엔 아이를 남겨둔 채 홀로 외출했고, 집에 혼자 방치된 아이는 TV를 보면서 시간을 보내야 했다.
영상을 보는 내내 큰 충격을 받은 표정을 감추지 못하던 오은영은 아내에게 "당장 그만두셔야 한다. 아이를 혼자 두시면 절대로 안 된다"며 단호하게 지적했다. 아내는 "CCTV를 설치해놓았는데"라고 해명했지만, 오은영은 재차 "아이를 혼자 두면 안되는 것은 위험한 상황에서 대처가 안되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오은영은 아내의 행동이 "교육적 방임에 가깝다"라고 일침을 놓았다. 생리학적 리듬을 따라 아이가 제때 자고 일어나는 것은 아이의 건강과 직결된다. 어린이집-유치원에 갈 시간에 아이를 깨우지 않는 것도 명백한 방임에 해당한다. 아이가 먹기 힘든 엄마의 영양제를 복용하고 몰래 버리는 등의 행동도 모두 엄마의 눈치를 보는 행동이었다.
나아가 오은영은 "이것은 '학대'의 한 종류라고도 볼 수 있다"고 질타하며 "(초보 엄마라도) 어른이기 때문에 이건 그냥 넘어갈 수 없다. 남편 역시 그 책임을 면할 수 없다"며 강도 높은 쓴소리를 이어갔다. 탄수화물과 단백질 등 영양소를 섭취하지 못한 아이의 건강상태도 염려되는 대목이었다.
오은영은 "가장 가슴아픈 건, 엄마가 아이의 얼굴도 보지 않더라"며 아내의 무관심한 태도를 지적했다. 남편에게는 애정을 끊임없이 갈구하던 아내는, 정작 아이와 같을 있을 때는 별다른 대화도, 따뜻한 눈길 한 번도 주지 않고 식사에만 집중하거나 휴대폰을 들여다보기에만 바빴다.
오은영은 "'맛있어?', '많이 먹어'같은 부모와 자식간의 기본적인 상호작용도 없었다. 아이는 엄마한테 칭찬과 사랑을 갈구한다. 인간이고 아이라면 부모에게 당연히 받고 싶은 것이다. 아이가 의젓하고 너무 말을 잘 들어서 더 가슴이 아프다"라고 안타까워했다.
▲ MBC <오은영 리포트-결혼 지옥>의 한 장면. |
ⓒ MBC |
남편은 평소보다 일이 일찍 끝나서 빨리 퇴근했다. 하지만 아내는 남편이 문자와 사진을 보내어 상황을 설명했음에도, 방송촬영을 위하여 평소와 다른 모습을 보인다고 의심했다. 남편은 아내가 평소에도 자신을 자주 의심한다며 무덤덤한 반응을 보였다.
아내는 남편의 동선을 위치추적으로 감시하는가 하면, 귀가한 남편의 휴대폰에서 업무전화와 사적인 통화까지 모두 확인했다. 아내는 사소한 부분에서 시작된 의심이, 남편과의 소통이 되지 않으면서 점점 커졌다고 주장했다. 남편은 아내와의 대화를 피하게 되는 이유에 대하여 "아내가 매번 했던 이야기를 반복하는데 지쳤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듣고 있던 오은영은 조심스럽게 "아내는 지금 본인의 아픔과 남편에 대한 의심에만 몰두해서 아이를 못 보고 있는 것 같다. 아내의 관심에 아이가 많지 않다"라고 지적했다. 아내가 휴대전화를 뒤지는 데 집착하는 동안, 아이는 부모와의 소통없이 그대로 방치되어 있었다. 아이가 부모가 있는 침대 위로 올라오려고 하자, 아내는 야단을 쳤고 주눅든 아이는 다시 거실로 나가버렸다.
오은영은 "이 집에서 아이는 '그림자' 같다. 아이를 응대 안 하는 것도 방임의 일종이다"라고 지적하며 문제의 심각성을 일깨웠다. 실제로 부부의 양육 태도 검사에서 아내는 아이에 대한 애정표현이 부족한 반면, 간섭과 처벌은 높은 수준으로 나타나 우려를 자아냈다. 부모가 아이 앞에서 감정을 조절하지 못하고 여과없이 표출할 때마다 아이가 무서움을 느낀 것으로 드러났다. 오은영은 "아이가 사랑을 받으면서 균형있게 발달하려면, 책임있는 부모의 역할이 필요하다. 이제부터라도 아이를 다시 중요한 위치로 되돌려놓아야 한다"고 당부했다.
알고보니 아내는 어린 시절부터 친엄마로부터 심각한 수준의 정서적 학대와 폭력을 당한 것으로 드러났다. 아내는 엄마가 일기를 안 썼다는 사소한 이유 등으로 수시로 폭언과 모욕을 일삼았고, 심지어 오빠를 시켜서 폭행을 당하기도 했다고 밝혀 충격을 안겼다. 아내는 "항상 비교당했고, 무시당했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으로 만들었다"고 회상하며 눈물을 흘렸다.
아내는 "엄마를 증오하고 이 세상에 없었으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들었다"고 고백했다. 심리검사에서 아내는 사회적 민감성이 예민한 성향으로 나타났고, 다른 사람이 자신을 어떻게 대하는가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편으로 드러났다. 또한 본인이 힘들기 때문에 아이에게도 애착을 가지지 못하고 있다는 진단이 나왔다. 반면 남편은 타인과 거리감을 두는 것을 더 편안해하고 독립적인 성향이라, 정반대 성격인 아내로서는 더 외로움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 MBC <오은영 리포트-결혼 지옥>의 한 장면. |
ⓒ MBC |
남편도 아내의 상처를 알고 있었다면서도 왜 가정을 더 돌보려고는 하지 않았던 것일까. 남편은 2년 전 큰 교통사고로 뇌출혈까지 발생하는 중상을 입었다. 아내는 큰 충격을 받았고 이후로 영양제 구매에 무리하게 집착했던 것도 바로 남편의 건강에 대한 걱정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로 인하여 아내가 영양제를 구매하는 데 지나친 비용을 쓰면서 남편의 경제적 부담만 더 늘어나는 아이러니한 형국이었다.
남편은 수익에 비하여 아내의 지나친 과소비에 불만을 드러냈다. 아내는 식비와 의류, 남편은 게임 아이템 등에 거액의 돈을 낭비하였고, 이는 유일한 수입원인 남편의 월급을 훨씬 초과하는 수준이었다. 부부싸움을 하면 남편과 아내는 서로 경쟁을 하듯 돈을 쓰는 것으로 자존심 싸움을 벌이곤 했다. 부부는 결혼 후에 자산을 모으기는 커녕, 오히려 남편이 총각시절에 모아놓은 돈을 까먹어가며 근근히 버티고 있는 실정이라는 게 드러났다.
부부는 미래 계획을 놓고 이야기를 하다가 의견이 갈렸다. 아내는 남편과 함께 더 시간을 보내기 위하여 가게 일을 그만두고 자신과 같이 택배 알바를 하자고 제안했으나, 남편은 지금 하고 있는 과일가게 사업을 준비하고 싶다며 난색을 표했다.
아내는 남편에게 바라는 것으로 "진솔한 대화, 다정히 불러주는 이름, '고맙고 네가 있어서 잘살 수 있었다'라는 말이 듣고 싶었다. 남편에게서 인정받고 싶었다"고 고백하며 눈물을 흘렸다. 반면 남편은 "가정적인 남자가 되고 싶다. 아내가 과거에 연연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남들처럼 좀 평범하게 살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다.
하지만 오은영은 "이 두 분은 만일 경제적인 어려움까지 더해지면 부부생활이 파탄날 것"이라고 쓴소리를 날리며 현재 부부의 심각한 재정상황과 경제관념을 경고했다. 오은영은 "지금 남편에게 필요한 것은 수면과 휴식"이라고 당부하며 남편의 건강 악화→ 무리한 영양제 구입→남편의 노동시간 증가라는 악순환으로 이어지는 아내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또한 남편에게는 감정적으로 본인이 감당하기 힘든 부분을 회피하려는 성향이 있다는 진단이 나왔다. 오은영은 "남편은 불편한 상황이 벌어지면 감정적 에너지를 추슬러서 뚝 떨어져 나와 버리는 면이 있다. 아내는 속시원하게 말을 해야 풀리는 타입이고 어릴때부터 과도한 감정에 노출되어 있다보니, 그럴 때마다 남편이 '나를 사랑하지 않나보네'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한편으로 오은영은 "남편이 가족을 위해 일을 하고 있다는 것도 사랑이다. 아내의 아픔은 이해하지만, 남편도 가장으로서의 책임감 때문에 굉장히 힘들게 버티고 있는 게 느껴진다. 그것을 아내도 알아줬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심리검사에서도 남편은 서툰 표현과 달리, 내면에는 가정과 아내에 대한 책임감이 강한 것으로 드러났다.
솔루션에서 오은영은 가장 시급한 문제로 "아이의 상처를 줄여야 한다"고 당부했다. 고심하던 오은영은 "이 부부에게만큼은 제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유아에게 '사교육'을 받으시라고 권하고 싶다. 가슴 아프지만 그렇게 해서라도 5세 아이에게 적합한 교육적 자극 및 건강한 상호작용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덧붙여 오은영은 "부모가 아이를 돌보는 게 가장 좋지만, 이 부부처럼 여러 가지 상황이 어렵다면 다른 사람과의 상호 작용을 해서라도 아이에게 도움이 되는 교육이 필요하다. 제 진심을 알아주시기 바란다"고 강조했다. 이에 아내는 "저도 달라지고 싶다. 더 좋은 엄마-아빠가 되어서, 아이가 '또다른 제가' 되지 않으면 좋겠다"고 화답하며 변화에 대한 의지를 드러냈다.
마지막으로 오은영은 아내에게는 과도한 영양제 구매를 멈추고 부부의 가정 경제를 위한 실질적인 개선방안을 마련할 것을 조언했다. 또한 남편에게는 진정성을 가지고 솔직하게 표현하는 대화를 연습해볼 것을 주문했다. 솔루션을 받아들인 젊은 부부는 서로의 손을 못잡고 그동안 못다한 마음을 전하며 새로운 시작을 기약했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