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에게 권력 물려준 훈센 총리, 캄보디아 미래는?

박정연 2023. 8. 8.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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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 마넷 새 정권 앞으로 5년이 중요... "2028년 총선, 훈 마넷에겐 터닝포인트"

[박정연 기자]

 38년째 장기집권한 캄보디아 훈센총리의 연설 모습. 그는 지난 2021년 말 큰 아들 훈 마넷을 총리 후게자로 공식 지명한 바 있다. 그는 퇴임후에도 당대표직을 그대로 유지하는 등 섭정 정치를 펼 것으로 현지 전문가들은 분석하고 있다.
ⓒ 박정연
 
아시아 최장기 독재자로 38년간이나 집권한 훈센총리가 그의 장남에 권력을 승계함에 따라 캄보디아는 북한과 같은 세습독재국가로 역사에 이름을 남기게 되었다.

<크메르타임스>를 비롯한 현지 주요언론들은 노로돔 시하모니 캄보디아 국왕이 지난 7일(현지시간) 훈센 총리의 요청에 따라 훈 마넷 캄보디아군 부사령관 겸 육군대장을 신임 총리로 지명하는 왕명을 발표했다고 전했다.

장남 훈 마넷은 새 의회가 구성되는 오는 21일 비준을 받은 뒤 다음날 캄보디아 총리로 공식 취임하게 된다.

훈센 총리와 분 라니 여사 사이에서 태어난 3남 2녀 자녀 가운데 맏아들인 훈 마넷은 이날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총리로서 국가와 국민에 봉사하게 된 것은 최고의 영광"이라며 시하모니 국왕에게 감사를 표하고 "국민들의 생활 소득 수준과 국가의 위상을 높이기 위해 더욱 노력하겠다"고 약속했다.

집권당인 인민당(CPP) 중앙위원회 상임위원이기도 한 훈 마넷은 지난달 23일 치러진 제7대 총선에 출마해 수도 프놈펜 선거구 의원으로 당선되었다(참고로 캄보디아 국회의원 선거는 지역비례선거제도를 채택, 개인의 인지도나 대중지지도보다는 당에서 정해준 공천 순번이 당락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기자 말).

훈센 총리는 지난 2021년 말 총리 자리에 욕심을 내비친 막내 아들 훈 마니 대신 큰 아들인 훈 마넷에게 권력을 주기로 최종 결심한 바 있다. 집권당인 인민당도 만장일치로 훈 마넷을 차기 총리 후계자로 공식 선언했다.

훈센 총리는 그동안 아들의 정치 앞날에 방해가 될 만한 요소와 반대파 세력들을 차례대로 숙청해왔다. 총리의 강력한 라이벌인 삼 랭시 전 캄보디아구국당 (CNRP) 총재에게는 선거 개입혐의 등을 씌운 뒤 궐석재판을 통해 25년간 선거 출마를 금지시켜 버렸다. 삼 랭시는 내란음모죄와 명예훼손, 부패 등 여러 가지로 혐의로 얽매어진 상태이며, 구속을 피해 현재 프랑스와 미국 등지에서 기약없는 망명생활을 이어가는 중이다.

또 다른 야당 지도자이자 구국당을 함께 만든 주역인 켐 소카 역시 국가 내란죄 등 혐의로 27년형을 선고 받고 현재 가택연금중이다. 그외에도 훈센 총리는 자신을 반대하는 망명 정치인과 활동가 16명에 대해서도 20년간 출마·참정권을 제한했다.

노련한 정치 9단답게 훈센 총리는 일부 야당인사들을 회유해 자기편으로 끌어들여 기존 야당세력들을 와해시키기도 했다. 이번 총선을 앞두고도 상당수 야당인사들을 상대로 협박과 회유를 해 전향시키려 했다. 그 결과 일부 야당인사들은 결국 현 정권에 굴복하거나 백기 투항했다. 

훈센 총리는 앞선 2013년 총선에서 야당바람을 일으키며, 44% 지지표속에 55석을 차지했던 캄보디아구국당(CNRP)을 대법원 판결을 통해 2017년 반역죄로 강제 해산시킨 뒤 이듬해 총선에서 전 의석(125석)을 싹쓸이 하며 일당독재 체제를 확실히 굳혔다.

이번 총선을 앞두고 선거관리위원회(NEC)는 집권당의 하수인 역할을 톡톡히 했다. 선관위는 현재주요 야당이자 삼랭시 전 야당총재의 지지 세력으로 구성된 촛불당(CP)이 당 등록 서류 원본을 누락했다는 이유로 총선 참여를 금지시켜 버렸다. 앞서 치러진 지난해 6월 지방선거 때는 등록 서류 제출 문제를 지적조차 않던 선관위가 갑자기 원본 서류누락을 이유로 총선 참여를 거부했다고 야당이 거세게 반발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선명야당이 총선에 불참하는 바람에 지난 7월 치러진 총선 역시 하나마나한 선거라는 비판 여론이 미국을 위시한 서방세계를 중심으로 들끓었다. 

미국과 유럽연합(EU) 등 자유민주주의진영 국가들은 이번 선거가 자유롭고 공정한 환경에서 치러질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 선거 참관인 파견마저 거부해버렸다. 이번 총선 선거참관인단은 중국과 러시아 및 아프리카 기니비사우에서만 왔다(참고로, 금년 2월 발표된 이코노미스트인텔리전스유닛(EIU)의 민주주의지수에서 캄보디아는 선거 절차와 다원주의 부문에서 북한과 함께 0점을 받았다).

이번 2023 총선에선 집권여당인 인민당이 5년 전 선거 때처럼 125개 전 의석을 독차지하지 못했다. 대신, 군소 야당에게 일부 의석을 내줌으로서 나름 외형상 '다당제민주주의국가'라는 모양새만 간신히 갖추게 되었다. 그나마 5석을 획득한 정당인 푼신펙(FUNCINPEC)은 수권능력을 가진 진정한 야당이라고 보기 어렵다. 라나리드 왕자(2021년 사망)의 큰 아들인 노로돔 차크라붓 왕자가 이어받은 당으로 사실상 친정부 성향이 강하기 때문이다.

아버지 뒤를 이를 새 지도자 훈 마넷은 누구?
 
 훈센총리의 뒤를 이어 장남인 훈 마넷이 캄보디아 차기총리로 이달 22일 임명될 예정이다. 위 사진 이미지는 훈 마넷의 개인 페이스북에 포스팅된 커버 이미지. 앞 군용차에 군복을 입은 아버지 훈센총리가, 뒷 차에는 아들 훈 마넷이 탄 채 경례를 하는 모습이다.
ⓒ 훈 마넷 공식 페이스북
1977년생으로 올해 나이 45세인 훈 마넷은 캄보디아 왕립군부사령관 겸 육군 대장이다. 그는 1995년 매년 개발도상국에 배정하는 정부 추천 10인에 포함되어 미국사관학교인 웨스트포인트에 입학, 1999년에 졸업했다. 이후 뉴욕에서 경제학 석사학위를 받고, 영국으로 건너가 브리스톨대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 덕분에 영어실력도 유창하고 국제 매너도 세련된 편이다. 지금의 아내 역시 미국 유학시절 만났다고 한다. 그가 서구식 자유민주주의와 인권 문제에 대한 관심과 이해가 매우 높은 엘리트로 평가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서방세계에서의 생활 경험과 인맥이 있다고 해서 그가 반드시 서구식 자유민주주의를 받아들이고, 자국의 인권 문제에 관심을 갖고, 야당 탄압에 대한 서방세계의 요구도 진일보한 입장에서 수용할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이미 캄보디아는 훈센총리의 오랜 장기집권을 통해 지금의 정치시스템이 확고히 구축된 상태이고, 미국보다는 친중국 중심의 국가운영체제로 이미 전환되었기에 다시 돌아가기에는 너무나 먼길을 지나왔다. 

게다가 상당히 긴 시간 훈 마넷이 아버지의 후광이나 그늘에서 벗어나기 어렵다는 지극히 현실적인 이유도 있다. 아버지가 섭정을 할 경우 그가 새 총리로서 맡게 될 역할과 활동 범위도 분명히 제약과 한계가 따를 것으로 보인다.

최근 국내외 언론들의 전망과 분석대로 훈센 총리는 집권당의 당대표직을 그대로 유지할 예정이다. 현지 언론보도에 따르면, 총리는 국왕의 자문회의의장직을 맡기로 했다고 전해지며, 곧 상원의장 자리까지 맡을 것이란 이야기가 기정사실화되어 흘러나오고 있다. 실제로 총리는 최근 자신과 수 십년간 함께 해온 기존 내각 각료들이 총리 자신처럼 현직에서 퇴임하면 상원으로 자리를 옮겨가게 될 것이라고 밝힌 바 있어 이 같은 가능성에 힘을 실어준다.

게다가 훈센 총리는 최근에도 "적어도 2033년까지는 다른 직책에서 정부에 봉사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건강이 허락하는 한 앞으로 최소 10년간은 권력을 쥐고 있겠다는 게 총리의 기본 생각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때문에 8월 22일 캄보디아를 이끌 새로운 총리로 취임하게 될 훈 마넷에겐 앞으로 풀어야할 숙제이자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현지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한편, 현지 전문가는 훈 마넷의 미래에 대해 이 같은 의견을 내놓았다. 

"앞으로 집권 5년 후 또 다시 치러지게 될 2028년 총선은 훈 마넷 신임 총리에게는 일생일대 매우 중요한 선거이자 정치 인생에 있어 매우 중요한 터닝포인트가 될 것이다. 이는 아버지 후광이 아닌 오로지 자신의 능력과 국민들의 지지도, 정치적 리더십을 한꺼번에 평가받는 첫 심판대가 될 것이기 분명하기 때문이다."

또 다른 현지 전문가들의 주장과 의견을 종합하면, 만약 그가 5년후 선거에서 기대에 못 미친 성적표를 얻게 된다면 아버지의 섭정 정치가 5년 더 연장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 사이 야당세력들이 다시 힘을 얻을 테고, 예상치 못한 권력누수현상이나 권력 암투도 일어날 수가 있다.

여하튼 훈 마넷에겐 앞으로 집권 5년간이 그의 정치생명은 물론이고, 캄보디아의 미래마저 좌우하게 될 것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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