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험생 잡는 킬러문항, 국영수에만 있지 않습니다

김홍규 2023. 8. 8.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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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장] 교육과정 성취기준 벗어난 문제는 모두 '킬러문항'

[김홍규 기자]

▲ 교육부 설명자료 교육부는 지난 7월 20일 교육부는 <공정한 수능을 위해 EBS 연계 문항에서도 킬러문항 요소를 배제할 예정입니다>라는 제목의 설명자료를 배포했다.
ⓒ 교육부
교육부는 지난 7월 20일 <공정한 수능을 위해 EBS 연계 문항에서도 킬러문항 요소를 배제할 예정입니다>라는 제목의 설명자료를 배포했다. TV조선이 7월 19일 보도한 < EBS 교재에 '킬러문항'…강사도 '당혹' > 기사에 대한 해명이었다.

8월 7일 수능 업무를 주관하는 한국교육과정평가원장이 새로 임명됐다. 신임 원장도 취임사에서 교육부와 같은 맥락의 발언을 했다. 그는 킬러 문항'을 "철저히 배제"하고 "시험 문제가 공교육 내에서 출제"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공교육 내  출제'는 교육과정을 지키겠다는 약속이어야 한다. 가면을 바꿔 쓴 대학 입시 설계자들이 어떤 변화를 얼마나 만들어낼 수 있을지 궁금하다.

다음은 수능을 출제하는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2022년 6월에 실시한 '수능 모의평가' <사회·문화> 과목 9번 문제이다. 이 문제는 어떤 '능력'을 알아보려고 했을까?
 
▲ 수능 사회문화 과목 문제 사례 수능을 출제하는 교육과정평가원이 2022년 6월에 실시한 <사회·문화> 과목 9번 문제이다. 수능 연계교재인 <EBS 수능특강 사회·문화>에도 이 문제가 실렸다. EBS는 이 문제의 주제를 ‘성 불평등 현상의 이해’라고 적었다
ⓒ 한국교육과정평가원
     
수능 연계교재인 < EBS 수능특강 사회·문화 >에도 이 문제가 실렸다. EBS는 이 문제의 주제를 '성 불평등 현상의 이해'라고 적었다(<EBS 수능특강 사회·문화> 정답과 해설, 55쪽). EBS가 제시한 문제 분석과 정답 찾기 방법을 따라가 보자.
 
"[문제분석] : 자료에서 '여성비'는 남성 1명당 여성의 수를 나타낸다. 예를 들어, 1구간에 해당하는 남성이 1명일 때 여성은 1.61명이다. 그런데 사람 수임을 고려하여 남성이 100명일 때 여성이 161명이라고 이해해도 된다.
[정답찾기] : ⑤ 1구간에서 남성이 100명일 때 여성은 161명이므로 1구간의 전체 직원 중 남성 직원이 차지하는 비율은 (100/261)×100이다. 이러한 원리를 활용하면 각 구간의 전체 직원 중 남성 직원이 차지하는 비율은 2구간에서 (100/210)×100, 3구간에서 (100/138)×100, 4구간에서 (100/129)×100, 5구간에서 (100/116)×100이다. 따라서 1구간에서 5구간으로 갈수록 각 구간의 전체 직원 중 남성 직원이 차지하는 비율은 지속적으로 증가한다.
[오답 피하기] : ① 전체 직원의 여성비가 0.62이므로 전체 직원 중 남성이 100명일 때 여성이 62명이다. 따라서 전체 여성 직원이 전체 직원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62/162)×100이므로 62%가 아니라 약 38%이다. … "
(<EBS 수능특강 사회·문화> 정답과 해설, 55쪽)
 
'성 불평등 현상'은 현행 <사회과 교육과정> 사회·문화 과목 성취기준 [12사문04-03]에 근거한다. 성취기준은 "다양한 사회 불평등 양상을 조사하고 그와 관련한 차별을 개선하기 위한 방안을 모색한다"라고 되어 있다(교육부 고시 제2018-162호 [별책 7], <사회과 교육과정>, 250쪽).
성취기준 [12사문04-03]에 관한 <사회과 교육과정> 해설은 다음과 같다.
 
"[12사문04-03]을 통해 사회적 소수자, 성 불평등, 빈곤의 양상과 그 문제점 및 해결 방안을 탐색한다. 특히 사회적 소수자는 인종, 민족, 국적, 신체 등 다양한 요인에 의해 규정될 수 있다는 점과 그로 인해 발생하는 차별에 대한 대응이 필요하다는 점을 인식한다."
(교육부 고시 제2018-162호 [별책 7], <사회과 교육과정>, 251쪽)
 
사회·문화 과목 성취기준 [12사문04-03]과 해설에서 '성 불평등'을 다루는 이유는 분명하다. 학생들이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다양한 불평등의 한 모습으로 성 불평등 현상의 존재를 알게하고, 해결 방법을 찾아보게 하는 것이다. 성취기준 [12사문04-03]이 속한 단원은 '사회 계층과 불평등'이다.
앞에서 본 2022년 6월 출제된 '수능 모의평가' <사회·문화> 9번 문항은 '성 불평등 현상의 존재 양상'을 다루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성 불평등에 대한 이해 정도는 이 문제를 푸는 데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단순하게 말하면 이 문제는 계산 문제다.
 
 교육부 오승걸 책임교육정책실장이 26일 오후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사교육 경감 대책 발표장에서 수능에 출제된 '킬러문항'(초고난도문항) 사례를 공개하고 있다.
ⓒ 권우성
인문, 사회계열 학생들이 많이 선택하는 과목에서 다소 복잡한 계산 문제를 넣어 난도를 높이는 사례는 흔하다. 위 사례 문제에다 계산을 더 복잡하게 만들면 어려운 정도가 올라가고 틀리는 학생이 더 많아진다.
이 정도 계산은 고등학교까지 수학을 정상적으로 이수한 학생이면 풀 수 있지 않느냐는 반론도 있을 수 있다. 이렇게 되묻고 싶다. 수능에 수학 과목 시험은 왜 있느냐고. 그리고 수능에서 수학을 선택하지 않는 학생도 있다. 이보다 더 중요한 문제는 사회·문화 교육과정 어디에도 계산 능력을 높이라거나 평가해야 한다는 내용이 없다는 점이다.
 
"수능에서는 해마다 인구 관련 자료를 제시하고 이를 분석하는 고난도 문항이 출제되고 있다. 이러한 문항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먼저 EBS 연계 교재에서 제시하는 다양한 인구 관련 자료를 연령대별(0~15세, 15~64세, 65세 이상) 인구 비율로 전환할 수 있는 힘을 길러야 한다. … 이번 수능의 경우 12.5%가 1/8에 해당하는 것만 알아도 시간을 단축할 수 있었는데, …"
(2014학년도 <수능특강 사회·문화>, 155쪽)
 
위에 옮긴 글은 사회·문화 마지막 단원 '현대의 사회 변동'에 대한 < EBS 수능특강 사회·문화 >의 '연계 분석 및 학습 대책'이다. 그런데, 이 단원 교육과정 성취기준은 다음과 같다. 12.5%가 1/8이라는 것을 알아서 시간을 줄이는 것이 교육과정 성취기준 달성과 도대체 어떤 연관이 있을까?
 
"[12사문05-01]사회 변동을 설명하는 다양한 이론을 비교하고 사회 운동이 사회 변동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한다.
[12사문05-02]세계화 및 정보화로 인한 변화 양상을 설명하고 관련 문제에 대처하는 방안을 모색한다.
[12사문05-03]저출산・고령화와 다문화적 변화로 인해 대두되는 과제를 제시하고 이에 대한 대응 방안을 모색한다.
[12사문05-04]전 지구적 수준의 문제와 그 해결 방안을 탐색하고 세계시민으로서 지속가능한 사회를 위해 노력하는 태도를 가진다."
(교육부 고시 제2018-162호 [별책 7], <사회과 교육과정>, 252쪽)
 
'킬러 문항'은 국어, 수학, 영어 과목에만 있지 않다. 대부분 학생들이 틀리는 '초고난도' 문항만이 '킬러 문항'도 아니다. 교육과정을 벗어난 문제는 모두 시험 보는 사람을 잡는 '킬러' 문항이다.

앞서 언급한 취임사에서 신임 한국교육과정평가원장은 '킬러 문항' 배제를 위해 교사들 중심으로 '공정수능 평가 자문위원회'를 꾸려 교육부가 추천한 '공정수능 출제 점검위원회'와 함께 공교육 안에서 출제가 이루어지게 하겠다고 했다.

'킬러 문항' 제작에 익숙한 '입시 전문가'들이 자문위원회와 점검위원회에 들어갈 가능성이 높다. 그들이 '킬러 문항' 개념을 모호하게 사용하는 교육 관료들과 어떻게 다를지 두고 볼 일이다.

다시 강조하지만, '공교육 안 출제', '킬러 문항 배제'는 교육과정을 준수한다는 의미여야 한다. 교육과정 성취기준 내에서 문제를 내야 한다. 교육부와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은 그동안 자신들이 만든 교육과정을 스스로 팽개쳤다. '킬러'를 만든 이들이 모여서 하는 수사가 제대로 될지 걱정이다.

교육과정은 학생들이 공교육을 통해 달성해야 할 기준을 고시한 것이다. 이 성취기준 바깥에서 문제가 만들어진다면 이는 공교육 안 출제가 아니다. 정부와 산하 기관부터 교육과정을 무시한다면, 수험생을 '잡는' 이름도 으스스한 '킬러 문항'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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