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맛 안나유"... 폭우 피해 농민들 도우러 현장에 갔습니다

오창경 2023. 8. 8.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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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기] 7월 극한 폭우로 '일시정지'된 충남 부여, 일상 회복 위해 뙤약볕 땀흘린 봉사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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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창경 기자]

▲ 부여군 구룡면 구룡평야가 잠긴 모습 지난 7.14일에 내린 비로 논과 하우스가 잠긴 모습
ⓒ 오창경
 
지난달 14일부터 내렸던 극한 폭우로 인해 충남 부여군의 시설 하우스를 비롯한 산사태, 축사, 가옥 침수 등의 피해가 컸다.  그날 이후 부여는 모든 것이 일시 정지되었다. 오직 수해복구 현장에서 움직이는 자원봉사자들의 활동만 활발할 뿐이었다.

인근 지역의 피해 상황이 속속 전해지고 있었다. 흙더미에 엉망진창이 된 집들과 흙탕물이 빠져나가고 수확을 앞둔 수박과 멜론이 나뒹구는 하우스 사진들이 온갖 매체에서 올라오고 있었다. 멜론과 대추, 수박 농사를 짓는 가까운 지인들의 피해도 심각했다(관련 기사: 한 통도 못 건진 수박, 소 22마리 폐사... 부여는 이렇습니다 https://omn.kr/24v89).

바윗돌도 당장 옮길 수 있을 것 같은 마음에 당장 지인들 하우스에 달려가고 싶었지만, 몸과 의욕은 언제나 엇박자로 나가는 법이다. 결국 자원봉사 논의가 시작되면서 단체로 움직이기로 했고, 스케줄이 짜여졌다. 나는 오이 시설 재배 연동 하우스로 가게 되었다.

언뜻 덜 심각해 보인 피해, 속내는 달랐다
 
▲ 오이 양액 재배 연동 하우스 안에 수해로 엉망진창이 되어 있다. 자원봉사자로 이 하우스로 투입되어 정리하게 되었다.
ⓒ 오창경
 
장마는 전국에 기록적인 피해를 남겨놓고는 사라져 가는 중이었다. 남은 비를 마저 뿌리고 물러가겠다는 듯 부여엔 가는 비가 계속 내렸다. 오이 넝쿨이 줄을 타고 올라가 노란 꽃이 피고 있거나 손가락 크기의 오이가 막 달리기 시작한 연동 하우스가 우리가 자원봉사를 할 곳이었다. 외관상으로 보기엔 피해가 심각해 보이지 않았다.

"오이 넝쿨이 줄을 타고 올라갔잖아요. 줄기에 집게가 두 개씩 물려져 있어요. 그 집게와 오이 줄기를 분리하고 오이 모종을 뽑아주세요."

오이 농장주가 알려준 대로만 하면 너무 쉬운 일이었다. 게다가 그날은 비가 조금만 내리는 덕에 하우스 안 작업 환경도 좋았다. 하우스에 가득 찬 펄 흙을 삽으로 퍼내거나 진흙투성이의 살림살이를 씻어내고 옮기는 일을 각오한 것에 비해서는 노동 강도가 낮은 일라고 느꼈다. 마음이 놓인 것은 사실이었다. 고단한 육체노동을 각오했던 비장함에 살짝 바람이 빠진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노란 오이꽃이 피어 있거나 손가락만한 오이가 달린 모종을 뽑아내는 일은 마음이 더 힘든 일이었다.  같은 현장에 있었던 박수현 전 국회의원(충남 공주시)은 '손가락을 잘라내는 심정'이라고 말했다. 침수된 오이 모종은 살려낼 궁리를 하기보다는 뽑아내는 것이 상책이라고 했다. 흙 한줌 묻히지 않고 양액(수경 재배시 식물 성장에 필요한 물질을 용해시킨 수용액)으로만 키운 오이들이 흙탕물에 잠겨버렸는데, 제대로 오이 구실을 하겠는가.

일주일 뒤면 수확이었는데 
 
▲ 수해 피해를 입은 오이들을 뽑아내서 바깥으로 실어내고 있다. 양액 재배를 하는 오이들이 물에 잠기는 피해를 입었다. 병이 돌기 전에 제거하고 다시 심어야 한다.
ⓒ 오창경
 
오이는 무릎 높이의 파이프 거치대에 올린 스티로폼 재배기에서 양액으로 재배되는 시설이었다. 연동 하우스에 빗물이 양액 베드인 파이프 거치대까지 올라와 차는 바람에 오이 모종이 심어진 스티로폼들이 뒤집혀버린 피해였다. 오이 재배로만 1년에 억대 매출을 올렸다는 젊은 농부의 하우스였다. 일주일 후에는 수확이 예정된 오이들이었단다.

애지중지 키웠을 오이 농장에 누런 흙탕물이 차오르고 스티로폼 재배기가 뒤집히는 참담한 광경을 맨 정신으로는 보지 못했을 것 같았다. 농장주에게 위로의 말을 건네기도 어색했다. 재난을 당한 지 일주일이 지나 있었고 그동안 수없이 들었을 위로의 언어들보다 몸 사리지 않는 봉사 정신과 연동 하우스 안을 정리해주는 일이 더 실질적이며 시급했다.

한낮 폭염으로 인해 봉사활동은 새벽에 시작해 오전에 끝내야 했다. 다들 마음이 바빴다. 일이란 마무리를 해야 마음이 개운한 법이다. 오이 넝쿨은 가시가 많고 억셌다. 집게를 빼는 작업은 어렵지는 않았지만 작업하기엔 운신의 폭이 좁았다. 양액 베드가 촘촘히 설치되어 있었고 그에 따른 설치물들이 많았다.

편리하게 작업을 하기 위해서는 복잡한 기구들을 만들어야 했고 그것들은 편리함과 동시에 조금만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사고의 원인이 되었다. 설치된 파이프들은 수시로 무릎에 걸렸다. 잡초매트가 깔린 바닥은 빗물이 남아있어 미끄러웠고 발에 걸리는 것도 많았다.

돌아보니 현장 도처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다. 자원봉사를 하러 좋은 뜻으로 왔다가 다치는 일만큼 큰 민폐는 없을 것이다. 현장의 환경을 파악하고 익숙해지는 것이 우선이었다. 농장주는 자원봉사단의 안전까지 챙길 마음의 여유가 없을 것이고 봉사단 단장도 작업 환경이 낯설긴 마찬가지였다.
 
▲ 농로에 걸터 앉아 먹는 자원봉사자들의 점심.  자원봉사자들의 점심과 잠깐의 휴식
ⓒ 오창경
 
"오이 줄기의 가시 조심하세요. 오이는 맛이 순한데 저 어린 오이 좀 보세요, 가시 덩어리에요. 어릴수록 살아남기 위한 방어기제가 철벽이네요. 넝쿨은 또 어떻고요. (그런데) 그런 넝쿨을 우리가 뽑아내야 하네요. "

주의를 잘 기울이지 않으면 오이 가시한테도 상처를 입기도 한다. 자원봉사는 자발적으로 대가 없이 순수하게 재난을 당한 사람들을 돕는 일이다. 긍휼한 마음 자세만 갖추고 재난 현장에 오기 때문에 작업 환경을 잘 모른다. 자원봉사자들은 2차 피해의 위험에 가장 많이 노출된 집단이기도 하다.

속속 도착하는 봉사자들의 손길이 지나가자, 단동 하우스 5동을 합친 넓이의 연동 하우스의 오이 모종이 빠르게 뽑혀 쌓였다. 최신 시설답게 오이를 수확하는 카트에 뽑힌 모종들을 실어내면 포클레인이 밀어서 하우스 바깥으로 가져갔다. 오이를 재배하기 위해 있었던 장비들은 오이를 제거하는 데에도 요긴하게 쓰였다.

장비가 있어도 봉사자들이 없었으면 손도 대지 못할 일들이었다. 사람의 손길은 무서웠다. 스티로폼 재배기를 양액베드에 다시 설치하는 일까지 사흘에 걸쳐 우리 단체와 부여군 특전사, 외부 자원봉사단들의 손길로 오이 시설하우스 농가의 수해 복구를 마쳤다. 오래전부터 두레 노동으로 농사를 면면히 이어왔던 유전자가 자원봉사라는 이름으로 발현되는 것 같았다. 자원봉사는 대가가 있는 노동은 아니어도, 한꺼번에 많은 인력이 투입되는 덕에 성과가 바로 나타난다.

"여긴 천국이네, 저긴 변기 냄새가 나유" 
 
▲ 오이 줄기를 걷어내고 스티로품 재배기를 바로 놓는 봉사자들 수확하지 못한 오이 모종을 걷어낸 것도 마음이 아프지만 시설물들도 다시 설치하는 비용도 만만치 않다.
ⓒ 오창경
 
"얼라, 여기 오이 하우스는 천국이네.  수박 하우스는 바닥이 질어서 걸음을 떼기도 어렵지, 수박 썩는 냄새 맡아봤슈? 옛날 재래식 변소 냄새는 저리 가라예유. 우리 몸에도 많이 배었을규."

수박 하우스를 치우고 오이 하우스까지 지원하러 온 봉사자들의 몸에서는 정말로 악취가 풍겼다.

누가 시켜서 하는 일이 아니기 때문에, 봉사자들은 일사분란하게 움직이지는 못했어도 각자 맡은 곳에서 열심히 움직였다. 졸지에 당한 천재지변 앞에서 망연자실해 있을 피해 농민에 대해 공감하는 마음이 시킨 일이었기 때문이다.

오이 하우스에서 일을 하는 동안 내내 후배의 하우스가 마음에 걸렸다. 올해 처음으로 멜론을 심겠다며 그간의 모든 일들을 내려놓고 멜론 재배에만 전념하던 후배였다. 보름 뒤엔 첫 멜론을 수확해 출하한다고 기대가 컸던 후배였다. 백마강 둑방 바로 아래에 있던 그의 하우스도 극한 호우를 피해가지 못했다.

"폭우에 멜론들을 물 말아 먹은 것도 억울한데, 폭염으로 복구도 힘드니 살맛이 나질 않네요..."
 
▲ 후배의 멜론 하우스 멜론 줄기를 걷어내서 바깥으로 옮기는 작업. 자원봉사자들과 장비가 달려와 주지 않았더라면 첫 멜론 농사에서 시련을 겪은 후배는 다시 농사를 지을 엄두를 내지 못했을 것이라고 했다.
ⓒ 오창경
    
내 후배는 천재지변 앞에서 모든 의욕을 상실한 채 망연하게 하우스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멜론 하우스 바닥은 여전히 질었고 흙탕물을 뒤집어쓴 멜론 줄기에는 주먹만한 멜론들이 달려있었다. 싱그러운 노란 꽃이 피어 있는 멜론 줄기가 처량하기도 하고 철이 없어 보였다. 봉사자들은 상심에 젖어 있는 그를 하우스 구석에 앉혀놓고는, 멜론 줄기를 뽑아내고 밖으로 실어내는 등의 일을 척척 해냈다. 멜론 줄기가 폭염과 만나 부패하기 전에 손을 써야 했다.

오이 하우스에서 작업을 끝낸 봉사자들이 달려들어 사흘 새벽과 아침을 바쳐 후배의 멜론 하우스 침수 피해는 복구했다. 일단 다시 농사를 지을 용기는 낼 수 있게 했지만 마음의 상처와  수치적으로 산출되는 피해에 대해서는 감히 물어볼 수도 없었다. 매번 봉사활동을 할 때마다 피해 당사자들의 마음까지는 보듬어 주지 못한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 더 크다.  

지난달 중순 내린 비로 부여에는 막대한 피해가 발생했다. 부여군 박정현 군수는 7월 말 본인 페이스북에 '수해 발생 이후로 현재 90%가 넘는 수해 복구 실적이 보고되었고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다'고 썼다. 전국 각지에서 부여를 찾아와 준 자원봉사자들에게 고맙다는 말도 전했다. 약 3주가 지난 8월 8일 기준, 폭우 피해 복구는 거의 마무리 단계에 와 있다.
 
▲ 폭염에 지친 자원봉사자들을 찾아 온 얼음 동동 바께스 커피 부여군 의회 송복섭 의원은 부여군 곳곳에서 일하고 있는 자원봉사자들을 위해 바께스에 얼음 커피를 타서 찾아다니는, 자원봉사자들을 위한 커피 배달 봉사를 하고 있다.
ⓒ 오창경
  
부여군이 재난 지역으로 선포됐지만, 농민들을 위한 실질적 보상은 미흡하다고 한다. 이번 수해 피해가 농민들에게 고스란히 부채로 남지 않도록 현실적인 정부 지원이 뒷받침되길 바란다. 자원봉사들이 대가 없는 노동력을 제공하는 것은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도와서 원 상태로 회복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더구나 국가에서 재난을 당한 국민을 돕는 것, 당연한 일이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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