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을 호리는 이야기꾼, 제이디 차의 개인전 #요즘전시
코오롱 문화예술 나눔공간 ‘스페이스K’가 여름을 맞이해 우리를 호리는 동물을 화폭에 그려낸 제이디 차의 국내 첫 개인전을 선보인다.
'차'라는 국적을 쉽사리 유추하기 힘든 성을 앞세워 런던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작가는 조각, 그림, 빛, 소리, 퍼포먼스 장르를 아우르며 시각적 경험을 수놓아 왔다. 한국계 이민 2세대 캐나다인으로 겪어온 경험을 바탕으로 혼종의 정체성, 타자성을 탐구하고, 생태학, 공상 과학, 고대 종교 등 분야에서 영감을 받아 작업해오고 있다. 〈구미호 혹은 우리를 호리는 것들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열리는 이번 전시는 한국 문화와 설화에서 얻은 소재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풀어낸 작품 33점을 소개한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해태를 탄 마고할미와 한국 전통 누비 기법을 활용해 색상이 돋보이는 보자기 작업 두 점이 마치 미지의 세계를 지키는 수문장처럼 자리하고 있다. 사방 프레임으로 제작하기도 했다. 그 너머로 다채로운 색채로 꾸며진 미로 구조물에는 한국 전통 샤머니즘에 대한 관심을 신비롭게 풀어낸 작가의 그림들이 곳곳에 자리하고 있다. 위에서 관람객을 조용히 응시하는 작은 꼭두 조각들의 그림자는 우리를 또 다른 차원으로 이끄는 듯하다. 신화적 상상력 뒤에 현대 사회에 대한 통렬한 풍자를 더한 제이다 차의 작업에는 시각예술가와의 긴밀한 협업도 큰 몫을 한다. 2006년부터 작가와 함께한 베니토 메이어 바예호는 미로 공간, 사당 혹은 제단과 같이 지어진 구조물, 조각보 색면이 연상되는 카펫 등 전시 디자인 및 설치에 이르기까지 성공적인 협업을 이어 나간다.
텍스타일의 활용은 수년에 걸쳐 제이다 차의 작품 세계에서 중요한 축으로 자리 잡아 왔는데, 2019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그녀의 퍼포먼스 〈Grandmother Mago〉를 처음 만난 디올의 아티스틱 디렉터 마리아 그라치아 치우리에게도 영감을 주었다. 런던 화이트채플 갤러리에서 지난 4월 30일 막을 내린 〈Zadie Xa: House Gods, Animal Guides and Five Ways 2 Forgiveness〉 개인전은 이러한 조우 덕분에 디올이라는 든든한 스폰서를 얻기도 하였다.
작가는 한국 전통 설화의 구미호, 마고할미, 바리공주 캐릭터와 여성이 주도해 온 한국 전통 샤머니즘에 대한 관심을 기묘하고 아름다운 색채를 담아, 회화와 조각, 설치 등으로 풀어낸다. 한국의 민속 신화에서 모티프를 삼아, 아름답지만 부정적인 존재로 인식되는 ‘구미호’를 수호자 혹은 지혜로운 할머니의 모습으로 선보여 과거 서구나 점령국들에 의해 지워지고 억압된 이야기들을 재조명해온 스토리텔링 형식의 작품세계를 이어 전개해 나간다.
현실에서는 크게 위협적이지 않은 갈매기, 까마귀, 여우, 더불어 자신이 키우는 반려견과 쏙 빼닮은 동물 등을 위풍당당한 모습의 숭배 대상으로 탈바꿈시킨다. 제이디 차는 작품에서 나이든 여성을 우주 만물을 지어낸 창조신(마고할미) 혹은 인간의 탄생에 관여하는 존재(삼신할미)로 그려 마녀나 노파같이 부정적인 존재나 무기력하고 소외된 인물이 아닌 지혜와 통찰을 겸비한 신으로 묘사한다. 서사의 형식을 빌려 작가는 익숙한 이미지를 뒤집고 뒤섞으며 우회적으로 인간에 대한 정의, 지식, 믿음, 편견에 관한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한다.
한편, 주변 녹지와 어우러지는 건축가 조민석의 곡선미를 담은 건축물과 열린 공간은 자칫 삭막할 수 있는 격자 도시개발사업의 결과물인 마곡지구 풍경 속 오아시스와 같다. 스페이스K에서 멀지 않은 곳에는 안도 다다오 설계로 2022년 10월 이전 개관한 LG아트센터 서울이 들어서 마곡문화허브를 조성하고 있어 건축 투어를 계획해보아도 좋겠다. 마곡까지 찾아가는 길이 멀다고 느껴진다면, 공항철도 이용도 고려해보자. 서울역을 출발해 마곡나루역까지 19분만이면 당도하니 말이다.
장소 스페이스K 서울
일시 2023. 7. 13 - 2023. 10.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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