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담한 죽음이 왜 '뉴스거리'인가
[최은경]
▲ 최근 살인 예고 및 이상 동기 흉기 난동 사건이 다수 발생하자 경찰당국은 특별치안활동을 벌이겠다고 선포했다. |
ⓒ 연합뉴스TV |
시절이 하 수상하다. 서울 신림역에 이어 경기도 성남시 서현역 인근에서 '무차별 칼부림' 사건이 일어났다. 범인이 마트에서 칼을 사는 모습, 인터넷에서 지나던 행인을 이유도 없이 갑자기 찌르며 상해를 입히는 모습 등 악몽 같았을 시간과 장면을 언론은 상세하게 전달하고 있고, 소셜미디어는 열심히 퍼 나르고 있다. 평일 낮 아무 곳에서 언제라도 무차별 살인 사건이 벌어질 수 있다는 공포가 전국을 뒤덮었다.
서울 서초구 한 초등학교 교사가 학교에서 사망했다. 교내에서 교사가 극단적 선택을 한 원인은 아직 조사 중이라고 하지만, 이미 추락한 교권과 정신적 물리적 위협을 느낀 교사들의 간절한 호소를 무시한 결과와 무관하지 않다고 보는 시민들의 추모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하지만 언론은 교사를 죽고 싶게 만들 만큼 괴롭힌 학부모, 교사를 폭행·피습하는 제자들을 악마화시키며 학교를 참담한 폭력이 난무하는 사건 현장 정도로 다룬다.
대전 대덕구 한 고등학교에서는 한 남성이 수업을 마치고 나온 교사를 화장실까지 따라가 흉기로 찔렀다. 언론은 검거된 용의자를 사제지간으로 추정하며 허술한 학교 출입 제도를 비판한다. 경찰이 흉악한 가해자의 신상을 공개해야 할지 고민할 동안 언론엔 끔찍한 범죄자 심리를 분석하는 전문가 목소리로 차고 넘친다.
2016년 서울 서초구 강남역 남녀공용 화장실에서 여성이 흉기에 찔려 살해된 사건 때도 지금과 상황은 다르지 않았다. 언론은 끔찍한 살인 현장의 공간과 시간을 지나칠 정도로 상세하게 묘사했고, 무고한 피해자의 죽음을 애도하는 물결이 이어지자 '강남역 살인 사건'을 젠더 갈등으로 부추겼다.
폭염으로 뉴스에서 사라져 버린 폭우 피해자들과 청주시 오송읍 궁평2지하차도 참사는 어떠한가. 장마철 폭우가 예고됐음에도 버스가 침수됐고 사망자와 실종자가 대거 발생했다. 해당 지방자치단체는 서로 책임을 회피했으며, 관할 경찰 대응에도 문제가 있었다는 뻔한 비판이 반복됐다. 대통령과 정치인의 현장 시찰 장면은 데자뷔 같다. 언론은 책임자 비판, 책임자의 익숙한 약속, 눈물 가득한 희생자 사연을 폭우처럼 쏟아냈다. 누군가의 죽음을 가치 있게 보도하기보다 '뉴스거리' 정도로 쉽게 재생산해내는 언론이 더 많았다.
우리 언론에는 '언론윤리헌장'과 '보도준칙'이 있다. 자살, 인권, 국가안보, 성범죄, 감염병 재난, 아동학대, 선거여론조사, 혐오표현 등 보도·제작에서 실천해야 할 강령과 준칙이 마련돼 있다. 많은 현업단체와 언론사들이 시청률, 구독률 경쟁으로 뉴스를 지독하고 위험한 상품으로 내몰았던 시절을 반성하며 독자와 시청자에게 하는 약속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 약속은 이번에도 잘 지켜지지 못했다.
용의자의 신상, 살인 현장의 생생한 묘사와 살해 도구, 살인 과정, 잔인한 살인의 순간이 어떤 가치가 있는 뉴스인가. 황망한 죽음을 맞이한 부모와 형제, 친구, 연인 그리고 이웃이 될 수 있는 시민들이 슬픔을 가누기도 전에 수도꼭지처럼 틀면 나오는 살인과 끔찍한 죽음에 관한 뉴스 경쟁을 언제까지 지켜봐야 하는지도 묻고 싶다.
언론은 깊고 큰 타인의 슬픔으로 주목을 끄는 보도를 뉴스라 우기며 죽음을 자극적인 뉴스 소재로 이용하는 '보도 관행'이란 유혹을 버리지 못한다. 이것이 비윤리적이고 비도덕적인 악습이란 인식조차 하지 못하는 상황은 더 절망적이다. 뉴스거리 정도로 치부하고 무감각하게 감정 없이 다뤄도 되는 가벼운 죽음은 없다. 시민을 대신해 권력을 감시하고 비판할 권리를 가진 언론이 시민들에게 횡포를 부리는 상황이 안타까울 뿐이다.
살인, 자살, 참사로 인한 죽음을 피해자 중심에서 생각한다면 뉴스는 달라질 수 있다. 보도준칙에 길고 상세하게 쓰여 있는 "지양하고 자제해야 한다"는 조항을 가슴에 새긴다면 언론인의 말과 글이 변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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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최은경(한신대 교수·민주언론시민연합 이사)입니다. 이 글은 민주언론시민연합 홈페이지(www.ccdm.or.kr), 미디어오늘, 슬로우뉴스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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