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 아빠’ 떠난 빈 자리 이 사람들이 채웠다
“내 아빠는 어디 갔어?” 배나엘(3)양이 엄마 손유연(34) 사모를 바라보며 천진난만한 얼굴로 물었다. 난감한 듯 머리를 긁적이던 손 사모는 “하나님이 아빠를 너무 사랑하셔서 조금 일찍 데려가셨어. 지금 하늘나라에 계셔”하고 미리 생각해 둔 대답을 딸에게 전했다. 배양의 아버지 배용호 학익감리교회 목사가 위암으로 세상을 떠난 지 10달이 지났다. 손 사모는 “아이가 올해 어린이집을 다니기 시작하면서 부쩍 아빠에 관해 묻기 시작했다”며 “지금은 아빠의 부재를 정확하게 인지하지 못하지만 갈수록 커질 빈자리를 생각하면 막막할 때가 있다”고 토로했다.
기독교대한감리회(감독회장 이철 목사)에서는 배양처럼 목사 아버지를 떠나보낸 후 남겨진 가족을 돕기 위한 사랑의 장학 사업을 지난 2002년부터 21년째 이어가고 있다. 2023년 하반기 장학금 수여식이 8일 서울 중구 감리회 본부교회에서 열렸다. 올해 장학금은 총 41명에게 전달됐다. 대학원생 2명 대학생 14명 고등학생 11명 중학생 4명 초등학교 6명을 비롯해 배양을 포함한 미취학 아동도 4명이나 있었다. 손 사모는 “처음 남편이 떠나고 슬픔이 말할 수 없이 컸다”며 “예자회 모임에 나가보니 비슷한 처지의 사모들이 있더라. 혼자가 아니라는 생각에 큰 위로가 됐다”고 말했다. 손 사모는 “사랑의 장학금은 대학 때까지 성적이나 여타 까다로운 조건 없이 혜택을 주기 때문에 더 든든하다”며 “받은 사랑에 힘입어 나엘이를 잘 키울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장학 사업은 남편을 먼저 떠나보낸 기감 사모들의 모임인 예수자랑사모선교회(예자회·회장 배영선)가 십시일반의 정신으로 시작했다. 사모들이 직접 만든 된장을 팔아 장학금을 마련했다. 그러다 2009년 목회자유가족자녀돕기운동본부(회장 김진호 목사)가 사업을 이어받았다. 이때부터 교단 산하 교회들의 후원이 늘었고 장학금 규모도 커졌다. 14년간 장학금을 받은 학생만 895명(중복 포함)에 달한다. 금액으로는 12억원가량이다. 기감 25대 감독회장을 지낸 김진호(84·도봉교회 원로) 목사가 운동을 주도하고 있다. 예자회는 장학생 선발 등 실무를 지원한다.
장학금 전달식은 상반기와 하반기 2차례 열린다. 올해는 물가 상승에 맞춰 장학금을 소액 증액했다. 대학원생과 대학생 200만원 고등학생 100만원 중학생 70만원 초등학생과 미취학아동 50만원이다. 이번 전달식에서만 총 5080만원을 집행했다.
모든 학생과 악수하며 장학금을 전달한 김 목사는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아버지를 먼저 데려가셨지만 아버지가 속한 감리교회가 여러분을 위해 기도하고 후원하고 있다”며 “외로울 때마다 이 점을 기억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김 목사는 “하나님께서 건강을 주셨기에 이런 의미 있는 일을 할 수 있었다”며 “하나님께서 부르실 때까지 이 일 할 것”이라고 계획을 밝혔다.
대학생 최혜린(26)씨는 학생 대표로 감사 편지를 낭독했다. 최 씨는 “20년 전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2년 전 버팀목이던 어머니까지 암으로 돌아가셨다. 긴 시간 방황하기도 했다”며 “심리적으로 위축됐던 때에 예자회 사모님들이 기도하고 있다며 응원과 도움을 주셨다. 그 덕에 어려움 극복할 수 있었고 학업에도 복귀했다”고 전했다. 최씨는 “아픈 엄마를 돌보며 간호사에 대한 꿈을 꾸게 됐다”며 “간호사가 되어 아픈 사람들을 돕고 교단 어른들의 사랑에 보답하는 자녀가 되고 싶다”고 바람을 전했다.
배영선 예자회 회장은 “처음에는 아버지 없는 모습을 보이기 싫다며 오기 싫어하던 아이들도 진실한 사랑에 마음을 연다. 만날 날을 기다린다”며 “장학금 전달식은 아이들에게 다시 한번 아버지를 생각하는 시간이자 아버지처럼 사랑을 주는 어른들을 만나는 시간”이라고 소개했다.
태동화 기감 선교국 총무는 “이 모임은 감리교회의 자랑”이라며 “우리 자녀들이 잘 자라서 좋은 지도자가 되길 바란다. 그때 받은 사랑을 보답하며 세상에 본을 보이길 기대한다”고 격려했다.
글·사진=손동준 기자 sdj@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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