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맞고, 머리 찧고... 그래도 이 여행 소중했던 이유
[박영숙 기자]
▲ 몽골초원의 양떼 몽골여행에서 자주 만나는 양과 염소떼 |
ⓒ 장재화 |
공정여행이란 개념이 있다. 환경을 파괴하지 않는 여행, 지역에 도움이 되는 여행, 윤리적 소비 여행, 여행지의 사람과 문화를 존중하는 여행. 고마움을 표현하는 여행. 현지인과 관계를 맺는 여행 등을 통상 뜻한다.
잼버리 국제대회로 나라 안팎에서 걱정과 안타까움이 줄을 잇는 가운데, 지난 7월 말 내가 참가했던 공정여행에 대해 소개할까 한다. 교사들이 주축을 이룬 여행이다. 여행사를 통하지 않고 비행기 티켓팅부터 현지 숙소 예약까지 직접 한다. 참가 경비의 10% 정도를 갹출하여 이주노동희망센터에 기부한다.
7월 23일~8월 1일까지, 우리 부부가 참여한 함께 몽골 여행에서는 참가자가 총 40명이었다. 전체를 꾸리고 진행하는 2명의 참가비와 운영비를 제외하고 무려 760만원 정도의 기부금을 해당처에 기부할 수 있다고 한다. 코로나 시기를 제외하고 1년에 두세 번 여행을 실행해왔음을 감안하면 훨씬 더 많은 금액을 기부했을 것이다. 그 단체의 이름은 베캄 원정대다.
베트남-캄보디아 여행 때 '기부금을 모아 베트남에 학교를 짓자'고 결의한 데서 이름을 딴 베캄 원정대의 여행 스타일은 고행(苦行) 수준이다. 육지 이동을 고집하기 때문에 웬만한 거리는 대부분 육로로 다닌다. 여행국가에 따라서 차이는 있지만 하루 10~20km 걷기는 보통이고, 땅덩어리가 넓은 나라에서는 지역 이동을 버스나 철도에 의존한다.
후줄근한 숙소도 베캄 원정대의 한 특징이다. 전문 가이드가 함께 하지 않기 때문에 단순히 인솔자만 있을 뿐이다. 사전 조사를 조금 더 치밀하게 했다는 것밖에 인솔자와 참가자 사이에 큰 차이가 없다. 물론 해당국가를 여러 번 방문했을 경우에는 사정이 조금 낫다.
2003년부터 이 단체의 활동이 시작되었다고 하니 어언 20년이 됐다. 싱가폴-말레이지아-태국 여행을 필두로 하여 베트남-캄보디아, 터키, 중부유럽, 바이칼-몽골 등 횟수와 규모가 점점 커졌다. 처음엔 교사만이 대상이었는데, 회가 거듭될수록 참가자의 폭이 넓어졌다. 교사의 식구나 부모형제, 지인들까지 신청할 수 있다.
2006년에 현재의 직함인 베캄 원정대라는 명칭을 쓰면서 2007년 캄보디아 시엠립 지역에 6000달러를 기부하고, 이후 배트남 지역 학교 설립을 위해 기금 적립을 하다가 2012년부터 이주노동희망센터로 기부처를 옮겼다. 이주노동희망센터의 사업중 하나에 학교건립프로젝트가 들어있기 때문이었다.
▲ 김영국 선생님 베캄원정대의 태국여행에서 툭툭이를 탄 김영국 선생님 |
ⓒ 김영국 |
이 여행을 처음 기획한 것은 당시 전교조 후생복지사업부장이었던 김영국선생님에 의해서였다. 전교조 복지사업의 일환으로 해외문화탐방을 기획했다고 한다. 그 직책을 떠난 다음에도 선생님은 이 사업을 진행하셨다. 특히 선생님이 퇴직을 하신 다음부터는 학기 중에도 진행되었다. 성수기가 아닌 때의 가성비는 더욱 높았다고.
▲ 우박 버스가 가려는 길 앞에 우박이 내려서 전진이 힘들었던 곳 |
ⓒ 장재화 |
이번에 필자가 참여한 몽골문화탐방은 7월 23일 새벽에 출발, 8월1일 이른 새벽에 인천공항에 도착하는 8박 11일의 일정이었다. 한밤중에 비행기를 타고 날아가 몽골의 징기즈칸 공항에 도착 후, 낡은 관광버스를 타고 고비사막을 향해 남서쪽으로 달렸다. 관광버스를 타자마자 몽골 가이더가 "안전벨트를 하세요" 하며 자리를 살펴주었는데, 아무리 찾아도 벨트의 반대편 고리가 없었다. 나만 그러한 게 아니었다.
▲ 몽골 게르 몽골의 이동주택인 게르는 사막여행자에게 숙박업소가 되기도 한다. 게르에도 5성급이 있다. |
ⓒ 김영숙 |
가난한 나라 여행을 하면서 돌발적인 상황을 무수히 경험한 적이 있는 나였지만 몽골 고비사막의 다이나믹한 상황은 상상을 초월했다. 며칠이 지난 다음, 일행 분들이 말씀하셨다. "폐차 직전의 그런 고물버스가 아니고는 몽골 고비사막에서 수지를 맞출 수 있는 관광버스가 없었을 거다."
그만큼 길은 험했고, 갑자기 비나 우박이 쏟아지고 길이 끊어지는 등 기상이나 도로 상황은 예측할 수가 없었다. 내가 겪었던 삶의 고비가 무의식 속에서 불쑥 솟아올라 현실에 오버랩되는 현상이 줄을 이었다.
나이를 먹으면서 나름 '마스터'했다고 자부했던 삶의 과제나 주제들도, 살다보면 언제 그랬냐는 듯 날 것으로 내 속을 헤집어놓고는 했다. 그만큼 몽골의 너른 평원은 내 삶 전체를 응축해서 재체험하게 하고, 또 나를 지평선 깊은 곳에 접지(接地)시켜 주었다.
모든 상황은 항상 유동적이었다. 40명이 넘는 대인원이 움직이고, 통신이 원활하지 않은 만큼 일정은 수시로 변했다. 점심 먹을 단체 식당이 갑자기 바뀌기도 했고, 길이 끊겨서 다른 길을 찾아야 하기도 했고, 버스 기사가 몽골 천막인 게르 숙소를 못 찾아서 헤매기도 했다. 밤 10시가 넘어 도착한 숙소에서 버너와 코펠을 꺼내서 식사 준비를 한 적도 있었다. 가변적인 모든 상황에 '예스'로 받아들이는 것 외엔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 고비사막의 별무리 몽골텐드 게르 위로 은하수의 향연이 밤하늘을 수놓고 있다. |
ⓒ 홍의숙 |
그럼에도 지평선까지 밤하늘을 뒤덮은 별무리는 잊을 수 없는 밤을 선사했다. 잠이 깨면 보이는 지평선과 함께 하루를 시작하고, 지평선으로 넘어가는 달을 보며 잠드는 일은 새로운 공간 개념을 열어 주었다.
내가 가지고 있던 공간의 경계가 사라졌다. 디지털 시대로 바뀌어가는 현 시대에, 공간이 없어지고 시간만이 남은 일상을 살면서 더욱 강화된 강박관념 역시 무너지는 느낌이었다. 생각해보니 내가 하는 일들은 오직 내가 원해서 할 뿐, 반드시 해야만 할 무언가는 없었던 것이다.
▲ 몽골 고비사막의 모래언덕 모래썰매를 탔던 고비사막의 모래언덕 |
ⓒ 장재화 |
낙타털 곰팡내가 진동함에도 게르 안까지 별이 가득 했던 어떤 게르, 끊임없이 새로워지는 지평선의 신기루를 보며 우산을 가리개 삼아 평원에서 볼일을 봤던 일, 양고기 냄새 때문에 힘들 거라는 예상을 뒤엎고 부드러운 양고기를 끼니마다 먹었던 일. 양고기를 끼니마다 먹으면서도 초원에서 한가로이 풀을 뜯는 양떼엔 환호성을 지르는 게 어색하지 않았던 일도 기억이 난다.
한편, 길가에서 염소를 만났던 건 또 어떤가.
▲ 몽골양떼와 염소떼 양과 염소가 사이좋게 풀을 뜯고 물을 마심며 함께 어울려 다닌다. |
ⓒ 박영숙 |
"양은 눈이 안 좋아서 4m 이상을 못 봐요. 염소는 눈이 밝아요. 그래서 양은 염소를 따라다녀요. 맛있는 풀이 있는 데를 아니까요."
동글동글한 몽골 가이더 슈레가 해준 말이다. 둘의 아름다운 공생이다. 베캄원정대도 공정여행이라는 아름다운 공생을 근 20년 가까이 계속해 왔다. 저개발국에 학교를 짓기 위해 이주노동희망센터의 주요 후원자 역할을 해온 것이다. 이제 이 아름다운 공생도 제1막을 내리려고 한다. 제2막은 어디서 어떤 모습으로 다시 탄생할지 기대가 된다.
"(베캄원정대는) 해외여행이 낯설고 막막했던 시대에 시작했지요. 지금은 아니잖아요. 마음만 먹으면 국내 여행하듯 쉽고 편하게 해외여행을 할 수 있어요. 이제 베캄원정대의 시대적 소명도 거의 끝났다고 생각해요."
몽골탐방 인솔자이면서 베캄원정대의 주축인 김영훈 선생님이 하신 말씀이다.
▲ 차강소브라가의 일몰 지평선 위로 해가 지는 모습 |
ⓒ 김영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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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필자의 블로그에도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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