軍, 예산 44억 날아갈까봐…'엉터리 방탄헬멧' 급히 사들였다
장병의 생명과 직결된 ‘방탄헬멧’ 수십억 원치를 계약하며 허위 품질결과서를 작성하는 등 군의 방탄 물자 부실 관리 실태가 또다시 감사원 감사에서 적발됐다. 군은 해상 상륙 작전을 담당하는 해병대원의 방탄복 구매요구서에 해수방수 능력 기준도 마련하지 않았다. 감사원은 이같은 내용이 포함된 ‘방탄물품 획득사업 추진실태’ 점검 결과를 8일 발표했다. 지난 5월 발표된 ‘장병 복무여건 개선 추진실태’ 감사에서 성능미달 방탄복 5만벌이 군에 보급됐다는 감사 결과가 나온 지 석 달 만이다.
감사원에 따르면 육군본부와 방위사업청은 2021년 12월 노후 헬멧 교체의 시급성과 예산 불용 방지를 이유로 ‘선납품·후검사’ 조건으로 43억 원의 경량방탄 헬멧 구매 계약을 완료했다. 감사원에 따르면 당시 ‘선납품·후검사’ 요건인 북핵 위협 등 긴급 안보 상황이 충족되지 않았지만, 방사청은 육군의 요구를 그대로 승인해줬다. 감사원 관계자는 “2021년 내에 납품이 되지 않으면 관련 예산 44억원이 모두 불용되는 상황이었다”고 말했다. 촉박한 기한 내에 계약을 체결하니 납품 뒤 헬멧 부자재 불량품 수천 개가 속출했다. 방탄 헬멧 전량이 육군에 납품된 건 2021년 12월이었지만, 불량 문제로 실제 산하 부대 보급된 건 이듬해 10월이었다.
선납품을 받은 것도 규정 위반이었지만 ‘후검사’는 더 부실했다. 감사원에 따르면 육군군수사령부(군수사)는 2022년 1월부터 같은 해 3월까지 경량방탄헬멧의 완제품 품질검사를 수행하며 ‘충격 흡수력(함몰깊이)’ 측정값을 확인하지 못했다. 당시 군수사는 미국 방탄시험기관(NTS)과 국내 연구소에 품질 검사를 의뢰했지만, 헬멧에 부착된 벨크로를 제거하지 않는 등 성능시험을 잘못 의뢰했고 “충격 흡수력 중 함몰깊이 측정이 불가능하다”는 답을 들었다.
그런데도 감사원에 따르면 업무 담당자 A씨는 재검사를 의뢰하지 않은 채 구매계약평가시 제출된 시제품의 측정값을 완제품 측정값으로 품질 결과서에 허위 입력한 뒤 ‘적합’ 판정을 내렸다. A씨는 이 과정에서 납품 업체 관계자에게 문자메시지로 시제품의 충격흡수력 결과를 받았다. 감사 기간 중 감사원이 NTS에 방탄헬멧 완제품의 충격흡수력(함몰깊이)을 재의뢰한 결과 군 요구성능에 미달하는 제품이 발견됐다. 감사원은 허위공문서 작성 혐의로 A씨에 대한 징계(정직)를 요구했다.
감사원은 해군과 해병대 일반 장병에게 보급된 방탄복의 해수방수 기능이 미비하다는 사실도 지적했다. 해상 침투작전을 수행하느라 바닷물에 상시 노출되는 장병들임에도, 군의 방탄복 구매요구서 기준에 ‘해수 방수’ 관련 기준은 없었다. 감사원은 2007년부터 방탄복 해수방수 기준을 마련한 미군의 구매요구서에 맞춰 국내 방탄복에 대한 해수 성능검사를 진행했다. 그 결과 해군·해병대에 보급된 방탄복의 해수침투 저항 성능이 미비한 것으로 드러났다. 또한 감사원이 인용한 영국 경찰청의 연구 자료에 따르면 3시간 이상 해수에 노출된 방탄복의 관통 확률은 70%이상 증가한다고 한다. 고도의 해수 방수 기능이 필수적이란 뜻이다. 감사원은 방탄물자의 소재인 폴리에틸렌이 열에 약하고 쉽게 변형됨에도 군이 방탄물품의 사용 기한을 일반 물자와 같이 9~15년으로 임의 설정해놨다고 지적했다. 감사원이 노후 방탄물자를 무작위로 회수해 확인한 결과 보급된 지 20년 지난 용품이 실제 작전에 활용되는 등 방탄성능이 의심되는 사례도 다수 발견됐다.
박태인 기자 park.tae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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