잼버리 외국 부모들 '꼭지 돌아버리게' 한 장면

이계홍 2023. 8. 8. 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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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만금 잼버리 사태 발단은 개영식... 아이들 쓰러지는데 VIP 참석 무슨 의미

[이계홍 기자]

지난 1일부터 12일까지 열리는 2023 새만금 세계스카우트 잼버리(제25회)가 파행이다. 폭염에, 물것에, 시설 부족에, 부패한 음식에, 엉터리 프로그램 진행에 참가 아이들이 무방비 상태로 지쳐 쓰러져버린 새만금 세계잼버리. 이들은 결국 8일 철수해 수도권으로 이동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주 월드컵경기장에서 폐영식 겸 열리는 K팝 축제도 서울 상암경기장으로 변경됐다. 

서로 네 탓만 하고, 갈라치기에 지역 분열까지 획책하는 못된 습성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대회가 끝나면 이에 대한 대대적인 수사를 할지도 모른다. 그것으로 대회 실패의 희생양으로 삼을 것이다. 그래서 검찰 수사가 나라를 뒤흔들 것이다. 

해외에서부터 난리가 난 이유
  
 '2023 새만금 제25회 세계스카우트잼버리' 개영식에 참석한 윤석열 대통령이 환영사를 하기 위해 나가고 있다. 2023.8.3
ⓒ 대통령실 제공
 

그러나 문제의 근본부터 살펴보자. 이번 사고의 발단은 개영식 때 일어났다. 3일 VIP(윤석열 대통령)가 참석하면서 경호가 강화되고, 각국에서 온 참가 청소년들이 소지품 검사로 몇 시간씩 폭염 아래서 대기하다가 탈진해 쓰러지는 사태가 벌어지고, 이런 고통을 자국 부모에게 호소하고, 자국 부모들이 자국 정부에 항의하고, 이것이 해외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되면서 터져나왔다.

[관련기사]

[단독] "대통령 왔다고..." 잼버리 초중고 공연팀 폭염 속 '8시간 악몽' 
(https://omn.kr/252u1).
[단독] 3시간 걸었는데 못 들어간 잼버리 개막식... "대통령 와서 가방 검사하다가"
(https://omn.kr/252a3)

해외 청소년들은 VIP 행사 참석에 몇시간씩 대기하는 상황들이 낯설고 황당해서 부모에게 하소연했을 것이다. 해외 언론이 난리 치기까지 국내 언론은 대통령의 잼버리 참가 세리머니에만 집중했다.  

VIP 의전한다고 수 시간째 땡볕에 아이들을 노출시키자 소방 당국이 일시 행사중단을 요청했다고 한다. 그런데 강행되었다. 물론 중단은 어려웠을 것이다. 하지만 상황이 위급하다면 시간 단축 등 충분히 후속 대책을 고려했을 법하다.

모든 행사는 특정 일인을 위한 것이 아니라 참여한 사람 중심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날의 주빈은 어디까지나 해외 및 국내 어린 학생들이다. 결국 무리한 행사 강행에 고통받는 아이들이 자국 부모들에게 고통을 호소하면서 해외에서부터 난리가 나버렸다.  

아이들이 이처럼 긴 시간 폭염에 노출되었던 것은 경호팀이 일일이 소지품 검사를 했기 때문이다. 대기 과정에서 아이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며 가다 서다를 반복했다. 지친 아이들이 결국 탈진해 쓰러졌다. 행사의 주체가 이렇게 쓰러져가는데 VIP 참석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지난 2일 세계스카우트 잼버리 개영식(개막식)에 참석한 학생들 중 일부가 더위에 지쳐 쓰러져 있다.
ⓒ 제보
 
결국 권위주의적 행태를 낯설어한 천진난만하고 자유분방하게 자란 아이들이 본국 부모들에게 이런 사실을 알리다 보니 학부모들이 '꼭지가 돌아버린' 것이다. 그들은 우리 문화와는 완전히 다르다. 따라서 우리는 사태의 진실을 보다 명확하게 인식해야 한다.  

사실 우리나라 청소년들도 마찬가지지만 요즘은 세계 어느 나라나 한 가족 한 아이라는 가족문화가 정착됐다. 옛날 너댓 명씩 자식을 낳은 상황과는 완전히 다르다. 자식이 하나뿐인데, 금이야 옥이야 키운 그 아이가 외국에 나가서 환경 열악한 곳에서 VIP 행사에 동원돼 수 시간씩 대기하다가 쓰러졌다면 본인이 고통받는 것보다 더 울분이 솟구쳤을 것이다.

주최 측은 이 점을 간과했다. 어리다고 무시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도 안 되지만, 그들의 뒤에는 이런 부모가 있고, 국가가 있다는 것을 망각한 것이다.

관심 두지 않고 방치했거나 무능했거나
 
▲ 떠날 준비하는 미국 대원들 6일 2023 새만금 세계스카우트잼버리 야영장에서 조기 철수를 선언한 미국 대원과 지도자들이 짐을 꾸리고 있다.
ⓒ 연합뉴스
 
다음으로 준비 부족이다. 박근혜 정부 때 세계잼버리 유치에 성공하고, 문재인 정부 5년을 거쳐 윤석열 정부가 대회를 치렀다. 대회는 6~7년 전에 유치했더라도 대회 1~2년 전 집중적으로 준비에 박차를 가한다. 예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전정부 탓이라고 집권 여당이 비판하고 있다. 이것은 대회 실패의 책임회피에 물타기의 전형이다. 남 탓으로 쟁점화하고, 여기에 기울어진 언론이 가세하도록 유도해 공방전으로 몰고 가려는 수법이 보인다. 하지만 디테일을 채워줄 대회 준비기간이 16개월이면 충분하다. 다만 의지의 문제일 뿐이었다. 그래서 남 탓으로 돌린다고 해봐야 수긍할 국민은 없을 것이다. 

결론을 말해보자. 새만금 빈 들판에 6개월 전부터라도 제대로 준비를 했으면 간단히 끝났을 문제다. 배수 시설 제대로 갖추고, 벌레 퇴치를 위한 방역에 신경 쓰고, 폭염에 대비한 야영 텐트군을 별도로 넉넉히 설치해 그 안에서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휴식을 취하게 했으면 해결됐을 문제다. 뙤약볕을 가리기 위해 텐트 위에 피서용 차광막을 하나 더 올리면 된다. 이는 야외 공장이나 농장에서 흔히 쓰는 방법이다.  

새만금 시설 설치는 건물 철거하고 도로 철거하는 도시개발 개념과 다르다. 빈 들판에 주최 측이 상상력을 집어넣어서 시설을 앉힐 수 있는 빈 도화지와 같다. 물웅덩이, 물것 문제가 나왔지만 배수 시설을 제대로 갖추고, 수시로 방역하면 해결될 문제였다. 난공사란 없었다. 관심을 두지 않고 방치했거나 무능했거나, 이것의 결합이 이런 사태를 초래했다고 본다. 

지난해 5월부터 국회에서 야당 국회의원들이 새만금 잼버리 준비 부족에 대한 질타가 쏟아졌다. 대회를 방치한 듯한 태도를 지적하고, 시설 보완을 위한 조기 예산 집행을 장관을 불러 따졌다. 예산집행권은 여성가족부에 있다. 행사 주관 부처인 여성가족부 장관은 차질 없이 준비하고 있다고 보고했다. 그의 보고대로 그때부터 차질 없이 잼버리를 준비했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었을 사안이다. 

이때 야당 의원은 "행사를 제대로 치르지 못하면 '역사적 평가'를 받을 것"이라고까지 경고했다. 불행히도 그 발언은 지금 적중되고 말았다. 이후에도 여러 의원들이 잼버리 준비 소홀을 따지고, 대책을 세우라고 촉구했지만, 결과적으로 방치했다. 무능만을 드러냈다. 

이 점 지자체 또한 문제라는 것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중앙정부의 지원만을 바랄 것이 아니라 지자체는 지자체대로 발벗고 나서 준비를 했어야 했다. 중앙정부 못지않게 타성에 젖어 안이하게 대처하다 보니 이런 결과를 자초했다. 

'여가부 폐지'에만 신경쓴 장관이 대회 진행의 주체라니
 
▲ 발표하는 김현숙 여가부 장관 2023 새만금 세계스카우트 잼버리가 열리고 있는 7일 김현숙 여성가족부 장관이 전북 새만금 잼버리장내 프레스센터에서 브리핑하고 있다.
ⓒ 연합뉴스
 
2023 새만금 잼버리의 주최자는 여성가족부, 행정안전부, 문화체육관광부, 세계잼버리본부, 전라북도 5개 기관이다. 그중 청소년 정책을 총괄하는 여성가족부가 대회 진행의 주체다. 여성가족부가 주도적으로 각 부처가 일을 하도록 역할 분담을 시켜줘야 하는데, 콘트롤타워가 사실상 부재했다.

윤석열 정부 집권 초기 여가부 폐지를 들고 나와 주도적 역할을 수행할 수 없는 구조가 되었다. 구성원들은 사기가 떨어져 일할 능력이 없었을 것이다. 곧 없어질 부서에서 무슨 일을 하겠나 하는 패배주의가 만연했을 것이다. 잼버리 준비를 꼼꼼하게 체크하고 챙겨야 할 주관 부처 수장인 여성가족부 장관이 취임 이후 여가부 폐지에만 신경썼던 것을 우리는 기억한다. 대회까지 1년여를 남겨두고 주관 부처가 사라질 수 있다는 위기의식이 두 손 놓고 갈팡질팡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 

다시 정리해보자. 청소년정책을 총괄하는 여가부를 비롯해 행안부, 문체부, 전라북도, 보이스카웃연맹 등 5개 기관 주최 측이 머리를 맞대고 최소한 6개월 전부터라도 준비해 나갔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었을 대회다. 새만금은 빈 땅이어서 무슨 건물 철거하고 민원 문제 해결하는 시간끌기 이유도 없었다. 대회를 잘 치르겠다는 인식만 가졌으면 이런 참사는 얼마든지 막고, 세계의 아이들에게 더 많은 추억을 안겨주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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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이계홍 작가는 동국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동아일보>와 <문화일보>, <서울신문>에서 문화부.체육부 기자, 문화부 차장, 여론독자부 차장, 문화부장, 체육부장, 특집부장, 사회부장, 논설위원, 수석편집부국장, 통일문제연구소 소장, <세종포스트> 주필 등을 지냈다. 지난 1974년 <월간문학> 신인상(소설부문)을 수상하며 문단에 등단했다. <틈만 나면 자살하는 남자>, <비켜 앉은 남자>, <밑천>, <초록빛 파도>, <늦은 저녁>, <서올 노마드>, <행군-어느 민족주의자를 위한 변명>, <깃발>, <장만> 등의 소설(집)를 펴냈다. '장군이 된 이등병' 최갑석 장군과 채명신 전 주월한국군사령관 전기 등을 쓰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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