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보 아주 좋다' 해병 1사단장 물에 장병 투입 거듭 지시"

김도균 2023. 8. 8. 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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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보도 "구명조끼도 없이 예정에 없던 수색에 동원"... 국방부, 해병대 수사단장 보직해임

[김도균 기자]

 19일 오전 경북 예천군 호명면서 수색하던 해병대 장병 1명이 급류에 휩쓸려 실종된 가운데 해병대 특수수색대가 실종 지점에서 수색에 나서고 있다. 2023.7.19
ⓒ 연합뉴스
 
지난 7월 경북 예천에서 집중 호우 실종자를 수색하다 급류에 휘말려 순직한 고 채수근 해병대 상병 사건과 관련, 해병대 1사단장의 부당한 지시 때문에 해병대원들이 구명조끼도 없이 예정에 없던 수색에 동원된 것으로 드러났다고 MBC가 7일 보도했다.

MBC에 따르면 집중 호우로 경북 지역에 산사태가 잇따랐던 지난 7월 15일 해병대 1사단장 주관으로 지휘관 회의가 소집됐다. 회의에서는 해병대원의 복구 현장 투입이 논의됐는데, 해병대 수사단 조사 결과 이때까지만 해도 실종자 수색은 거론되지 않았다.

이 때문에 해병대원들은 안전 장비 없이 장화와 포대 자루, 삽과 곡괭이만 챙기고 현장에 투입됐는데 해병대 1사단장은 대원들이 떠나기 직전에야 "실종자 수색도 과업에 포함된다"고 말했고, 대대장 이하 지휘관들은 숙영지에 도착하고 나서야 "실종자를 수색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장화 신으면 안 된다고 말렸지만...

이후 7월 18일 현장을 찾은 해병대 1사단장은 더 나아가 '물속에 장병들을 투입시키라'는 취지의 지시를 거듭 내렸다.

또 해병대 1사단장은 물속에서 탐침봉만 들고 작업 중인 해병대원들의 사진 보도를 보고 "적극적인 홍보가 아주 좋다"고만 독려한 것으로 확인됐다.

사단장이 다녀간 직후 11포병대대장은 포병대대장 회의를 주관하면서 '우리는 내일 허리까지 들어간다'고 발표했다.

이 회의에 참석했던 7포병대대장은 직후 휘하에 있는 중대장들을 소집해 직접 그림을 그려가며 장병들을 물속에 들여보내라고 지시했다. 한 간부가 "장화를 신고 물에 들어가면 안 된다. 군화를 신겨야 한다"고 건의하자 7포병대대장은 "지금 분위기 모르냐. 정신 차려라. 지금 복장 통일을 하라고 (위에서) 난리다"라고 말했다.

결국 이같은 간부들의 회의를 통해 지시를 하달받은 채수근 상병은 다음 날인 19일 장화를 신고 수중 수색 작업에 투입됐다가 급류에 휘말려 숨진 채 발견됐다.

해병대 수사단은 채수근 상병이 장화를 신지만 않았어도 혼자 물장구를 쳐 물속에서 빠져나왔을 가능성이 컸다고 결론 내렸다.

해병대 수사단은 또 해병대 1사단장이 "작전의 주요 임무가 실종자 수색이라는 것을 공지하지 않아 장비를 준비하지 못하게 했고, 무리하게 수색을 요구하며 안전에 대해선 어떠한 언급도 없이 복장 통일과 철저한 브리핑만 지시했다"고 결론 냈다고 MBC는 전했다.
 
 22일 경북 포항 해병대 1사단 체육관인 '김대식관'에서 열린 고 채수근 상병 영결식에서 해병대원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채 상병은 지난 19일 오전 9시께 예천 내성천에서 실종자를 수색하던 중 급류에 휩쓸려 숨졌다. 2023.7.22
ⓒ 연합뉴스
 
국방부, 해병대 수사단장 '집단항명 수괴' 혐의로 입건 

한편 해병대 수사단은 해병대 1사단장 등 지휘부와 현장 지휘관 등 8명에게 과실치사 혐의가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확인됐다.

국회 국방위원회 야당 간사인 더불어민주당 김병주 의원실에 따르면 채 상병 사건을 수사한 해병대 수사단은 지난 7월 해병대 1사단장 등 지휘부와 현장 지휘관 등 8명 모두 과실치사 혐의가 명백하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이런 내용을 담은 수사 결과 보고서를 승인했던 이종섭 국방부 장관이 하루 만에 이를 번복해 이른바 '윗선 개입' 의혹이 불거지고 있다.

해병대 수사단은 지난 7월 30일 이 장관에게 책임자 범위와 각각의 혐의 사실이 담긴 수사 결과 보고서를 보고했고 결재를 받았다. 여기에는 채 상병이 소속된 1사단장을 비롯해 지휘 계통에 있는 총 8명의 과실치사 혐의가 적시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내용은 대통령실까지 보고된 것으로 전해졌다.

해병대는 7월 31일 이런 내용을 국방부 기자단에 브리핑할 계획이었지만, 갑자기 이 장관이 해병대 측에 수사 결과 이첩을 보류할 것을 지시하고 국외 출장을 떠났다. 브리핑 역시 취소됐다. 이후 지난 1일 국방부 법무관리관실이 수사 결과 자료에서 모든 혐의 사실을 삭제하라고 지시했다.

하지만 해병대 수사단은 이러한 지시가 직권남용에 해당할 수 있다고 판단해 '해병 1사단장 등에게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가 있다'는 내용으로 지난 2일 사건을 경북경찰청에 이첩했다. 그러자 국방부는 해병대 수사단장 박아무개 대령을 보직 해임한 뒤 '집단항명 수괴' 혐의로 입건했다.

지휘부 책임을 무마하기 위해 '윗선'이 개입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자 전하규 국방부 대변인은 7일 브리핑에서 "특정인 혐의를 특정하지 말고 수사에 대한 사실관계 자료만 넘기는 것이 타당하겠다는 법무관리관실의 건의를 받아들인 것"이라고 주장했다.

지난 2022년 7월 군사법원법이 개정되면서 군인 사망 사건을 비롯해 성범죄, 입대 전 범죄 등 3대 사항에 대해서는 민간 경찰이 수사권을 행사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수사 절차 훈령에 따라 민간 경찰에 사건을 이첩할 때는 인지 경위, 범죄 사실과 함께 범죄 혐의도 적도록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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