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포커스]엇나가는 美의 '中없는' 전기차 드라이브…스텝 꼬이는 IRA
美중심 배터리 공급망 구축
中광물 패권 허물기 나섰지만
글로벌 핵심 광물 패권 쥔 中
우회로 통해 IRA 무력화
美 노골적 중국 배제에
중국은 광물 자원 무기화 맞불
기업들, 전기차 보급 늘리려면
중국 의존도 올라갈 수밖에
성과 치중한 자가당착 비판
美행정부도 법안 한계 인정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의 핵심 경제 정책인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이 시행 1년을 맞았다. 전기차 전환에 강력하게 드라이브를 걸어 온 바이든 대통령은 IRA를 통해 자국 중심의 글로벌 배터리 공급망 재편에 착수했다. 전 세계 배터리 공급망을 장악한 중국을 철저히 고립시켜 중국의 광물 패권을 허물겠다는 전략이지만, 막대한 보조금을 쏟아붓는 정책만으로 중국에 위협을 가하기엔 역부족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이 같은 노골적인 중국 배제가 되레 중국의 ‘자원 무기화’만 자극해 자국과 동맹국 기업에 대한 보복 등 ‘부메랑’으로 돌아올 것이란 비판도 커지고 있다.
‘전기차 늘리고, 中 의존도 줄인다’?…스텝 꼬이는 IRA
IRA는 전기차 분야에서 북미 내 생산·조립 확대를 유도하는 한편 배터리에서 중국산 광물 의존도를 낮추는 것을 목표로 한다. 배터리의 핵심 광물과 부품의 일정 수준 이상을 북미나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맺은 나라에서 가져와야 보조금을 지급한다. 중국 등 우려 국가에서 추출·제조된 광물을 사용하면 보조금 지급 대상에서 제외된다. 표면적으로는 법안명과 같이 인플레이션에서 주요 부분을 차지하는 에너지 자립과 기후변화 대처를 내세웠지만, 사실상 과녁은 중국에 두고 있다. 급부상하는 중국의 전기차와 배터리 시장을 누르는 한편 미국의 제조업을 부흥시키면서 반도체에 이어 배터리 산업 패권 경쟁에서도 확실한 우위를 점하겠다는 계산이다.
하지만 IRA 시행 이후 미국의 스텝은 점점 꼬여가고 있다. 미국은 올 4월엔 2032년까지 자국에서 판매되는 모든 신차 가운데 전기차 비중을 67%까지 늘리도록 하는 새로운 탄소 배출 규제안을 내놨다. 2027년부터 단계적으로 총판매 차량의 배출 가스 한도를 제한해 기업이 연간 생산하는 자동차의 평균 연비를 규제하고 이를 충족하지 못할 경우 과징금을 물도록 규제했다. 2021년 취임 당시 공언했던 ‘2030년까지 전기차 비중을 50%까지 끌어올리겠다’는 공약을 대폭 강화한 것이다.
방향은 맞다. 문제는 속도다. 전기차 보급을 급격하게 늘리면 현재 배터리 소재 시장을 독과점하는 중국에 대한 의존도 역시 급속히 올라갈 수밖에 없다. 하지만 미국은 정작 중국산 핵심 광물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전기차 보급 확대를 최대 역점 사업으로 추진해 온 바이든 행정부를 놓고 일각에서 ‘엇박자 정책’을 내놓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전 세계 광물 패권 쥔 中…우회로 통해 IRA 무력화
중국은 일찍이 일대일로(一帶一路·육상 및 해상 실크로드)를 통해 아프리카·남미 등 진출할 수 있는 거의 모든 핵심 광물 시장에 진출해 리튬·코발트·니켈 등 배터리 핵심 광물의 채굴부터 제련·가공 전 분야 공급망을 틀어쥐고 있다. 리튬의 경우 아르헨티나·호주·멕시코·아일랜드 등 전 세계 곳곳의 주요 광산업체를 인수하거나 지분을 확보하는 방식으로 영향력을 확대해왔다. 아프리카 콩고에 있는 코발트 광산도 대부분 중국 정부나 중국 기업 소유다. 망간 제련 산업에서 중국의 점유율은 95%에 달하고, 코발트(73%), 흑연(70%), 리튬(67%), 니켈(63%) 등도 중국이 시장을 지배하고 있다.
기술력으로도 미국은 중국에 한참 뒤처져 있다. 미국은 핵심 광물 공급망 확보에 필수적인 광물 처리 능력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 공급망 구축을 위해 관련 시설(정제소)을 건설하고, 숙련된 기술자를 양성하는 데만 2~5년, 혹은 그 이상이 걸릴 것으로 추산된다. 신규 광산을 개발, 채굴에 착수하기까지는 최소 20년이 걸리는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IRA는 향후 10년간 단계적으로 시행 기준을 높여 매년 더욱 까다로운 규제를 적용할 방침이다. 미 전략국제연구소(CSIS)의 수석 고문인 스콧 케네디는 "중국과 직·간접적으로 어떤 형태로든 협력하지 않고는 누구도 전기차 산업에서 성공할 수 없다"고 말했다.
중국 기업들은 이미 우회로를 통해 IRA를 무력화하고 있다. 중국 1위 배터리 기업 CATL은 미국 포드자동차와 손잡고 지난 2월 미국에 합작공장을 설립했다. 형식적으로는 합작회사지만 포드가 지분을 100% 보유하고 CATL의 기술협력을 받는 방식으로 IRA 규제를 피했다. 또 다른 중국 배터리 기업인 궈시안도 독일 폭스바겐과의 협력 방식으로 중국 국적을 감추고 미국에 진출, 미시간주에 배터리 부품 공장을 짓고 있다.
이에 더해 미국 전기차 업체들의 가격 인하 경쟁이 저가형 배터리 경쟁으로 이어지면서 저가형 중국 배터리에 대한 미국 내 수요는 앞으로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뉴욕타임스(NYT)는 "현재 미국 내 전기차 업체들이 선호하는 저가형 배터리 리튬인산철(LFP) 배터리를 양산할 수 있는 기술력을 가진 기업은 전혀 없다"며 "LFP 배터리에 대한 미국 내 수요가 증가하면서 앞으로 포드·CATL과 같은 IRA를 무력화하는 동맹 구축 전선은 더욱 확대될 수밖에 없을 것"으로 전망했다.
美정부도 법체계 오류 자인
미국은 주요 7개국(G7) 국가들과 연합전선을 구축해 중국에 편중된 핵심 광물 수입 의존도를 낮추는 작업을 시작했다. 핵심 광물에 대한 특정 국가의 수입 비중 상한선을 정하거나 자원 보유국에 공동 투자하는 방안도 논의되고 있다. 앞서 지난 5월 일본 히로시마에서 열린 G7 정상회의에서도 회원국은 이 같은 내용에 합의하고 공동성명에서 핵심 광물 공급원을 어떻게 다양화할지 국제에너지기구(IEA)의 제안을 요구한다고 명기했다. IEA는 현재 의존도를 낮출 핵심 광물을 추려 올해 안에 구체적인 리스크와 제안을 내놓는다는 계획이다.
특정국에 편중된 광물 의존도 축소는 필요하지만 미국이 중국 배제를 지나치게 노골화하면서, 중국은 광물 자원 무기화로 반격에 나섰다. 앞서 중국은 미국의 대중 제재에 대한 보복 조치로 지난달 초 갈륨과 게르마늄에 대한 수출 통제를 발표했다.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에 따르면 중국은 반도체, 태양광 패널, 레이저 장비 등에 다양하게 사용되는 이들 광물의 전 세계 생산의 80%(2020년 말 기준) 이상을 틀어쥐고 있다. 미국의 대중 수입 의존도는 53~54%에 달한다.
워싱턴에 본사를 둔 올브라이트 스톤브리지그룹의 중국 담당 수석 부사장인 폴 트리올로는 이 같은 중국의 조치가 다른 광물로도 확대될 수 있음을 지적하며 "이번 조치는 중국이 향후 미국과의 대화에서 더 많은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바이든 ‘업적 만들기’ 비판도…"빠른 정책 전환 필요해"
바이든 행정부도 이 같은 IRA 법체계의 오류를 자인했다. 재닛 옐런 미 재무부 장관은 최근 월스트리트저널(WSJ)과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전기차 보급 확대를 원하지만 보다 탄력적인 공급망을 확보하는 것 또한 IRA의 분명한 목표"라며 "때로는 2가지 목표 사이에 긴장 관계가 형성될 수 있다"고 IRA의 한계를 인정하는 발언을 했다. IRA는 바이든 대통령의 2021년 대선 핵심 공약이었던 ‘더 나은 재건(Build Back Better·BBB)’을 기초로 한 것으로, 차기 대선을 의식한 ‘바이든 대통령의 업적 만들기’가 아니냐는 비판도 나온다.
전문가들은 중국의 광물 자원 무기화에 대한 대응은 시급하지만, 보조금 뿌리기나 기업 옥죄기 같은 방식으로는 IRA 목표 달성에 한계가 있다면서 정책의 일부 방향 전환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배터리 공급망을 장악하고 있는 중국 기업을 배제하기만 하는 전략은 미국의 전기차 전환 속도를 늦추기만 할 것"이라며 법안을 전략적으로 수정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조유진 기자 tin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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