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과 이름 매칭 못시키는 것… 뇌가 가진 치명적 단점?

최훈 한림대 심리학과 교수 2023. 8. 8. 0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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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훈의 이것도 심리학
사진=클립아트코리아 제공
“어, 그러니깐, 그러니깐, 나훈아 선배님!” “땡! 조용필 선배님입니다.” 모처럼 튼 TV 속 예능 프로그램에서 ‘인물퀴즈’라는 코너가 진행 중이었다. 제작진이 보여준 사진 속 인물이 누구인지 맞추는 게임. 가수인 출연자는 자신의 대선배인 조용필의 얼굴을 보고 나훈아라고 말해버렸다. 출연자들의 앞에 있던 음식은 사라지고, 업계 대선배의 얼굴을 알아보지 못한 출연자는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선배님! 죄송합니다!”를 반복해서 말하고 있다.

사람의 얼굴을 보고 누구인지 이름을 맞추는 일은 인간 사회 활동의 기본이다. 하지만 예능 프로그램에 ‘인물퀴즈’란 코너가 있을 만큼, 쉬운 일은 아니다. 물론 80억명이 넘는 세계의 모든 사람을 알 수도 없고, 또 미국 대통령이나 2022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처럼 내 인생과 별로 관련 없는 사람의 얼굴을 굳이 내 기억 속에 저장할 필요를 느끼진 못할 테니, 이런 경우는 예외로 하자. 하지만 위에서 언급했던 가수인 출연자에게 조용필처럼 내가 분명히 알고 있는 사람, 내 기억 속에 소중하게 저장되어 있는 사람조차도 그들의 얼굴을 보고 이름을 맞히는 것이 쉽지만은 않다.

얼굴을 보고 이름을 외치는 ‘인물퀴즈’의 문제를 풀 때, 우리 뇌에서는 크게 ‘얼굴 재인(facial recognition)’과 ‘명명하기(naming)’라는 두 종류의 처리 과정이 동반된다. 얼굴 재인은 지금 내가 보고 있는 얼굴이 내 머릿속 얼굴 데이터베이스에 있는 얼굴인지 아닌지를 확인하는 것이다. 얼굴 재인을 담당하는 뇌 영역은 하측두피질(inferior temporal cortext)에 위치한 방추형 얼굴 영역(Fusiform Face Area, FFA)이다. 특히, 이 FFA라는 영역은 다른 사물에는 반응하지 않고, 오직 얼굴에만 선택적으로 반응하는 얼굴의 ‘스페셜리스트’라고 할 수 있다. FFA에 이상이 생기면 안면실인증(prosopagnosia)이라는 증상이 발생하게 되는데, 이 경우 모든 사물을 보고 인식하는 데는 문제가 없으나, 사람의 얼굴을 보고 누구인지 변별하는 능력이 없어지게 된다.

정상적인 FFA를 가지고 있다고 해도, 인간의 기억이란 유한한 것이어서 한 번 봤던 모든 사람의 얼굴을 머릿속 얼굴 데이터베이스에 추가할 수는 없다. 따라서 나에게 의미 있는 사람들의 얼굴만으로 데이터베이스가 구축되는데, 사람에 따라서 1000개부터 많으면 1만개의 얼굴이 포함될 수 있다고 한다. 사람에 따라 10배 정도의 차이가 난다는 것은 사람의 얼굴을 기억하는 능력에도 개인차가 심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우리 주변에서는 얼굴을 유난히 잘 기억하는 사람도, 얼굴을 여간해서는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도 존재하는 것이다.

여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일단 지금 보고 있는 얼굴이 얼굴 데이터베이스에 포함되어 있는 얼굴로 확인되면, 이제 그 사람의 이름을 명명하는 과정이 뒤따라야 한다. 문제는 명명은 FFA가 아닌 다른 뇌 영역에서 일어나는 독립적인, 즉 얼굴 재인과는 전혀 별개 처리과정이라는 것이다. 이렇듯 얼굴 재인과 명명하기가 서로 상관없는 처리 과정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예시가 설단현상(Tip of the tongue)이다. 어느 사람의 얼굴 사진을 보고 그 사람이 누구인지 알겠고 그 사람과 함께 밥을 먹고 운동을 한 기억까지 나는데, 그 사람의 이름이 생각날 듯 나지 않을 듯 괴롭히는 현상을 말한다. 얼굴 재인은 성공했지만, 명명하기에 실패한 사례가 된다.

설단현상은 얼굴재인과 명명하기가 독립적인 처리과정이라는 걸 알려줌과 동시에 얼굴과 이름을 연결 짓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보여준다. 얼굴재인이 되면 그 얼굴의 주인공과 관련된 정보들이 활성화돼 내 머릿속에 떠오르게 된다. 그래서 그 사람의 성격, 나와 겪었던 에피소드 등의 기억들이 생각난다. 그런데 그 와중에 이름은 떠오르지 않는다. 그만큼 얼굴과 이름은 연관성이 약하기 때문이다. 내 이름은 최훈이다. ‘훈’이라는 이름의 한자 뜻은 ‘분홍색’이다. 내 이름에는 분홍색과 같은 꽃길만 걸었으면 좋겠다는 부모님의 희망사항은 반영되고 있을 뿐, 막상 나와 연관성을 찾기는 힘들다. 그러니 내 얼굴을 보고 내 이름을 떠올리기는 쉽지 않은 일이 된다. 그래서 인물퀴즈는 어렵다.

사람의 얼굴과 이름은 한 사람의 신원을 나타내주는 대표적인 정보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 인사할 때 얼굴을 보이며 이름을 나눈다. 비즈니스 미팅에서 처음 만날 때 아무리 존경하는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얼굴을 땅에 처박고 인사하지 않는다. 대신 얼굴을 보이며 이름이 박힌 명함을 상대 쪽으로 돌려 인사하는 것도 내 얼굴과 이름을 상대에게 적극적으로 어필하려 함이다. 하지만 나를 대표하는 그 두 정보, 얼굴과 이름이 자동으로 연결되지 않는다는 것이 우리 뇌가 가지고 있는 치명적 단점이다. 그래서 내 얼굴에 이름을 연결시키려는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우리는 가끔 내 이름을 기억 못하는 친구나 파트너들을 보며 서운함을 느낀다. 하지만 그럴 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서운함이라는 감정이 아닌, 노력이다. 내 얼굴과 이름을 연결시켜 상대의 기억 속에 강렬하게 입력시키는 노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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