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석구 “자신과 대화하라, 답이 보일지니” [쿠키인터뷰]

이은호 2023. 8. 8. 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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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손석구. 넷플릭스

늦깎이 배우 지망생은 다도를 즐겼다. 일이 없는 날엔 어르신들과 찻집에서 모여 찻잔을 기울이는 게 그의 일과였다. 하루는 찻집 사장이 그에게 논어를 배워보라 권했다. 고대 중국 철학가인 공자가 제자들과 나눈 이야기를 엮은 책이다. 30대 초반 청년은 그 안에서 자신만의 연기론을 길어 올렸다. “나 자신과 솔직하게 대화하라, 그 안에 답이 있다. 연기도 결국 그런 과정이더라고요.” 7일 서울 역삼동 한 카페에서 만난 배우 손석구가 들려준 얘기다.

손석구는 독특한 이력을 가진 배우다. 중학생 때 미국으로 건너가 다큐멘터리 연출을 공부하다가 자이툰 부대로 자원입대했다. 전역 후엔 농구선수가 되겠다며 캐나다로 넘어갔다. 그가 배우로 정식 데뷔한 건 33세였던 2016년. 손석구는 “30대 초반에 바닥을 찍었다. 그런 칠흑을 겪고 나니 생존본능이 날카로워진 것 같다”며 “사회나 가족, 주변 사람들이 내게 갖는 기대와 그로 인한 무게감을 벗어나면서부터 나도 달라졌다. 지금은 바닥에 있어도 괜찮다고 느낀다. 나락으로 떨어지길 두려워하기보단 즐기면서 일한다”고 돌아봤다.

넷플릭스 ‘D.P.’ 시리즈 속 임지섭(손석구)은 자책을 변화의 계기로 삼았다는 점에서 손석구와 닮았다. 권위를 앞세워 잇속을 챙기던 임지섭은 조석봉(조현철) 사건을 겪으며 책임감을 아는 인물로 변한다. “시즌1에서 조석봉이 (극단선택을 하며) 쏜 총탄 소리에 임지섭이 뒤를 돌아본다. 그게 후회의 시작”이라는 게 손석구의 해석이다. 엘리트 군인의 탈바꿈은 마냥 매끄럽진 않다. 지뢰 폭발 사건을 재조사하러 최전방 감시초소로 향한 그는 신아휘(최현욱)와 대치하다가 “흑화”한다.

‘D.P.’ 시즌2 속 손석구. 넷플릭스

“10화(시즌2 4화)는 임지섭의 심정이 다면적으로 표현돼 재밌어요. 이전과 달라지고 싶지만 상황은 내 뜻과 다르게 전개되고, 그 안에서 스스로 실망하고…. 하지만 때론 좌절이 변화의 원동력이 되기도 하죠. 임지섭도 그랬고요. 촬영 당시엔 조명과 세트에서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함께 연기한 배우 최현욱과 앙상블도 좋았고요. 얼마 전에도 그 친구를 만나 다른 작품을 또 같이 해보잔 이야기를 나눴어요.”

자신의 나락을 마주한 임지섭은 한동안 종적을 감추다가 군 인권센터가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소송에서 다시 모습을 드러낸다. 그는 증인석에 서서 묻는다. “그들은 무엇을 지키기 위해 군인이 됐습니까.” 목소리는 떨리고 눈동자는 흔들린다. 손석구는 “구자운(지진희)의 말을 법으로 생각하던 임지섭이 처음으로 자기 소신을 얘기하는 장면이다. 임지섭은 두렵고 흔들리고 불안했을 것”이라고 봤다. 후사보다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 손석구는 “‘뭐라도 해야 하지 않겠냐’는 작품 주제에 공감했다. 안준호(정해인)의 마지막 처절한 사투를 보며 우리에게도 저런 모습이 필요하다고, 우리가 서로에게 불씨가 돼야 한다고 느꼈다”고 말했다.

세상일에 정신을 빼앗겨 갈팡질팡하지 않는 나이. 올해 불혹을 맞은 손석구는 “삶 속에서 최대한 배움을 얻으려 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JTBC ‘나의 해방일지’와 영화 ‘범죄도시2’(감독 이상용)를 연달아 흥행시킨 그는 “그사이 내 삶은 무척 단조로워졌다. 집과 촬영장, 집과 공연장을 오가는 일상의 반복”이라고 돌아봤다. 이런 일상이 싫진 않다. 오히려 “과거의 내가 원했던 삶”이라고 했다. 손석구는 “커리어는 내가 원하는 대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나의 해방일지’가 제 배우 인생에 변곡점이 될 거라 예상하지도 못했다”며 “작품을 만드는 사람이 얼마나 진솔하고 솔직한지가 내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배우마다 다 다른 연기를 하잖아요. 그게 곧 나만의 연기고 좋은 연기라고 생각해요. 결국 모든 배우가 자기 나름대로 좋은 연기를 하니 ‘좋은’이란 수식을 붙일 필요도 없겠죠. 저는 솔직한 게 좋아요. (나 자신에게) 많이 물어봐라. 그게 제 모토입니다.”

이은호 기자 wild37@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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