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보릿고개]자동차세 개편 '만지작'…친환경차 확대 시동 꺼질라

우수연 2023. 8. 8.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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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下) 국내 자동차세 개편 방향·영향은
국내 자동차 업계, 가격 기준 개편엔 동의
친환경차 추가 과세 유예·면제 주장
10년 넘게 끌어온 자동차세 개편
뜨거운 찬반양론…합의점 못찾아 제자리

편집자주 - 글로벌 전기차 판매량이 전체 완성차의 10%를 넘어서면서 각국 정부가 보조금과 세제 지원 등 친환경차 관련 혜택을 줄이고 있다. 정부 지원 축소로 자동차 업계는 전기차 시장에서 보릿고개를 넘고 있다. 업체들은 그동안 정부 보조금을 활용한 전기차 저변 확대까지는 성공했지만, 수익성 확보까진 도달하지 못했다. 대부분 업체가 전기차를 팔아서 이익을 내지 못한다. 획기적인 기술 발전으로 ‘반값 전기차’가 나오기 전까진 전기차로 돈을 벌기는 쉽지 않다. 본지는 친환경차 보급 확대 정체기에 돌입한 전기차 시장 현 상황을 살펴보고 글로벌 정책 변화와 대응을 소개한다.

전기차 충전.

정부가 배기량 중심 자동차세 개편 움직임을 보이면서 국내 자동차 업계는 개편 방향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업계는 엔진 기술의 발전, 친환경차 보급 확대에 따른 현행 자동차세 개편 자체에는 동의하지만 자칫 전기차 보급 확대에 찬물을 끼얹지는 않을까 우려한다.

8일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지난 2일 국내 완성차 업계 관계자들은 자동차세 개편안 관련 회의를 열고 업계 대응을 논의했다. 이 자리에서 업계는 가격 기준 자동차세 부과에 대해선 대체로 동의했으나 친환경차 보급 측면에선 별도 기준이 필요하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최근 전기차 판매량 증가세가 둔화되는 가운데 정부 보조금도 줄었다. 여기에 친환경차 자동차세까지 늘면 전기차 판매는 추가로 위축될 가능성이 있다. 업계는 이를 우려해 가격뿐만 아니라 탄소배출량 같은 다른 기준도 함께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친환경차 자동차세 부과 확대를 유예하고 감면이나 면세 기간을 늘려야 한다는 입장이다.

10년 넘게 끌어온 자동차세 개편…합의점 못 찾아 여전히 제자리

지난 1일 대통령실은 배기량 중심의 자동차 재산 기준 개선방안에 대해 3주간 국민참여토론을 실시한다고 밝혔다. 현행 자동차세는 배기량을 기준으로 영업용·비영업용을 구분해 세금을 매긴다. 또한 차령(車齡)이 많을수록 감액되며 전기차와 수소전기차는 정액 10만원을 부과한다.

자동차세 개편은 어제오늘 나온 얘기는 아니다. 2010년부터 꾸준히 개편 필요성이 제기돼왔고 현재 국회에 계류된 관련 법안만 3건 이상이다. 전기·수소차 보급이 늘면서 자동차세 제도 손질에 대한 필요성은 모두 인정한다. 하지만 구체적인 방안과의 합의점을 찾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독소 조항도 개편의 걸림돌이다. 2011년 통과된 한미 FTA 비준안에는 '대한민국이 차종별 세율 차이를 확대하기 위해 배기량 기준에 기초한 새로운 조세를 택하거나 기존의 조세를 수정할 수 없다'는 내용이 담겼다. 배기량이 큰 미국차가 한국 시장에서 불리해질 수 있다는 생각에 미국 측에서 끼워 넣은 조항이다.

업계 관계자는 "한미 FTA가 체결될 당시에는 자동차세를 개편할 수 없다는 이 조항이 미국에 이익으로 작용했겠지만 이제는 시장 상황이 달라지면서 미국 입장도 달라졌을 수 있다"며 "우리가 합의된 구체적인 안을 먼저 만들어야 미국과의 재협상도 시도해볼 수 있다"고 말했다.

해외에서는 차량 가격, 탄소배출량, 중량 등 다양한 기준을 섞어 자동차세를 매기고 있다. 또한 친환경차 자동차세 부과를 향후 5년, 길게는 10년까지 면제하거나 내연기관 차량 대비 감면하는 정책을 병행하고 있다.

독일에서는 탄소배출량과 배기량을 함께 과세표준으로 정하고 있으며 영업 용도인 상용차는 중량을 기준으로 세금을 매긴다. 2025년 말까지 등록된 전기·수소전기차는 10년간 세금을 면제한다. 프랑스는 탄소배출량이 기준치를 초과하는 경우에만 자동차세를 매긴다.

일본은 배기량과 최대 적재량에 따라 세금을 매긴다. 일정 연비를 달성한 차량은 중량세나 자동차세를 감면해준다. 이탈리아는 출력과 중량에 따라 과세하며 전기차는 등록 후 5년간 세금을 면제하고 이후에는 내연기관 차량의 25% 수준의 세금을 매긴다.

보유 차량 따라 입장 차이…뜨거운 찬반 논란

자동차세 개편 논의가 어려운 이유는 보유 차종에 따라 입장 차이가 극명하게 갈리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국민들이 다양한 차종·연식의 차량을 보유한 만큼 각자 주장하는 바도 다르다.

우선 개편에 찬성하는 차주들은 자동차세가 재산세 성격을 띠는 만큼 시대의 흐름에 따라 개편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1967년 당시 배기량 기준 과세 방식이 정해질 때는 배기량이 큰 차가 비싼 차였다. 하지만 이제는 배기량이 작고 성능이 좋은 차들이 많이 나오고 있다. 전기차는 아예 배기량이 없다. 이 때문에 1억원 넘는 테슬라 모델X 차주보다 배기량 1600cc 아반떼 차주가 자동차세를 더 내는 아이러니가 발생하는 것이다.

이들은 전기차 보급이 늘면서 달라진 시대의 흐름을 반영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친환경차 차주들은 이미 보조금, 취득세 일부 면제 등 많은 혜택을 누리고 있고 비싼 전기차 구매 여력이 되는 차주들에게 면세 혜택을 주는 것은 엄연한 차별이라고 설명한다. 또한 배기량이 큰 차량 차주들은 이미 유류세로 세금을 많이 내고 있기에 배기량이 크다고 세금을 많이 내라는 논리는 지나치다는 지적도 있다.

반면 개편을 반대하는 입장에서는 배기량만큼 재산, 환경오염 정도 등 복합적인 성격을 고루 반영하는 지표는 없다고 본다. 아직까지는 대형차 보유자가 큰 차를 유지·관리할 수 있는 비용을 감당할 소득이 있다고 볼 수 있다는 설명이다. 또한 한미 FTA 등 외국 조약과 어긋날 가능성도 함께 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당연히 전기차 차주들은 개편에 반대하는 입장이 지배적이다. 전기차 차주들은 이미 차량 가격에 따라 많은 취득세를 냈는데 또 가격 기준으로 자동차세를 매기는 것은 이중과세라고 지적한다. 더군다나 고가의 전기차는 정부 보조금 지원도 받지 않는 상황에서 또 세금을 물리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이들은 자동차세 부과 이유에 환경오염 부담금이 포함돼있다면 당연히 친환경차 차주들이 면제받는 것이 옳다고 본다. 전기차를 사면 각종 혜택을 주겠다는 정부의 정책 방향을 보고 서둘러 전기차를 구매했기에 갑작스러운 세금 정책 변경에 동의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한국자동차모빌리티산업협회(KAMA) 관계자는 "개편 기준 선택도 중요하지만 기준에 따른 세부 설계가 관건"이라며 "의견이 첨예하게 갈리는 사안인 만큼 국민 여론을 파악하고 정부 차원에서 구체적 안을 논의하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우수연 기자 yesi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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