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저없이 총 쏴도 부족하다"…'거리의 악마' 맞선 일본의 방법 [흉기 든 외톨이②]

김민중, 장서윤 2023. 8. 8.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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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 오전 묻지마 흉기난동 사건이 발생한 경기 성남시 분당구 서현역 인근 사고 현장에 숨진 A씨(60대·여)를 추모하는 물품들이 놓여져 있다. 지난 3일 오후 성남시 분당구 서현역 일대에서 묻지마 흉기 난동 사건이 발생해 13명이 다쳤고 1명이 사망판정을 받았다. 뉴스1


흉기를 든 외톨이들 ②


“고3 때 친구들과 사이가 나빠지면서 왕따를 당하고, 여자 애들이랑만 어울렸습니다. 성인이 되고는 사건 발생 전까지도 부모님과 연을 끊고 혼자 지냈어요.”

2012년 이른바 ‘여의도 흉기난동 사건’을 벌인 김모(사건 당시 30세)씨는 2013년 8월 수감 중이던 안양교도소에서 이런 얘기를 털어놨다. 당시 대검찰청 정책연구용역 보고서
「묻지마 범죄자 심층면접을 통한 실증적 원인 분석 및 대응방안 연구」

를 수행하던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 연구팀과 만난 자리에서였다. 김씨는 2012년 8월 전 직장동료 2명과 행인 2명 등 4명에게 흉기를 휘둘러 상처를 낸 혐의로 기소돼 징역 14년형을 선고받았다. 연구팀은 “김씨가 사회적 단절과 경제적 고립에서 오는 불만을 속으로 눌러오다가 한 번에 폭발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정근영 디자이너

10년 전 연구에서도 무차별 흉기난동 가해자는 김씨 같은 ‘고독한 외톨이’가 가장 많았다. 연구팀은 교정시설에 수감 중이던 무차별 살상 범죄자 18명을 만나 성장배경과 가족·이성관계, 학교·직장생활, 전과, 정신건강 상태 등을 파악했다. 이를 통해 범죄자들을 3가지(외톨이·반사회성·정신장애)로 구분했는데, 외톨이 유형이 10명(56%)으로 가장 많았다. 비행 전력이나 전과는 없는 경우가 많았지만, 홀로 고립된 생활을 장시간 해오다가 사소한 사건을 계기로 억눌려 있던 폭력성이 드러난 경우가 대다수였다.

2023년, 서현역·신림역 인근에서 흉기살해 사건이 잇따르고 보고서가 재조명을 받자 이 교수는 “10년이 지난 지금도 보고서 분석은 유효하다”며 “보고서를 낸 이후 특별한 후속 연구가 없고, 실효성 있는 정책으로도 이어지지 않아 아쉽다”고 말했다.


총기·테이저건, 사법입원제…사후 대책에 집중


4일 오후 서울역 대합실에 설치된 TV에서 윤희근 경찰청장의 흉기난동 관련 대국민 담화 발표가 생중계되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는 뒤늦게 대책을 쏟아내고 있다. 대부분 형사·사법제도에 의지하는 사후적 강경책 위주다. 윤희근 경찰청장은 지난 4일 대국민담화에서 “총기와 테이저건 등 물리력 사용을 주저하지 않고 경찰관에 대한 면책규정을 적극 적용하겠다”고 밝혔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도 7일 “긴박한 상황에서의 물리력 행사에 대해 정당방위 등 위법성 조각사유를 적극적으로 검토하라”며 지원사격에 나섰다. 법무부는 지난 4일 ▶가석방 없는 종신형 신설 ▶사법입원제(법관의 결정으로 중증 정신질환자를 강제입원 시키는 제도) 검토 카드도 꺼냈다.

“2012년 여의도 흉기 난동 사건 때부터 보면 10년 이상을 허송세월한 것”(윤정숙 형사법무정책연구원 실장)이란 탄식이 나오긴 하지만, 전문가들은 대책의 효과가 일정부분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사후적 고강도 대책은 잠재적인 범죄자들에게 경고를 함으로써 추가적인 범죄를 막는 효과가 크다”(임준태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이유다. 최항섭 국민대 사회학과 교수는 “뒤늦게라도 테러에 대응하는 수준으로 범죄 대응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일부 정책은 실행 과정에서의 한계가 뚜렷할 거란 우려도 제기된다. 총기 사용의 경우 범인에 의한 민·형사 소송 리스크 때문에 일선 경찰관이 실행하기 어려울 거란 반응이 적지 않다. 2008년 2월 대법원은 흉기를 든 범인을 총기를 쏴 숨지게 한 경찰관에 대해 정당방위를 인정하면서도, 민사상 손해배상 책임은 있다고 판단했다. 경찰청 관계자는 “결국 수천만~·수억원을 물어줘야 하는데 누가 선뜻 물리력을 쓰겠나”라고 말했다. 사법입원제 역시 2017년 강제입원을 까다롭게 한 정신건강복지법 개정 이후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법관 수(3000명)가 제도를 시행 중인 독일(2만3000명) 등 일부국가에 비해 현저히 적고 정신보건 분야에 대한 판사들의 전문성도 전무하다는 점도 걸림돌로 거론된다.


“외톨이 숫자 줄이는 근본대책도 병행해야”


정근영 디자이너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선 예방적 대안이 함께 마련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고독한 외톨이의 숫자를 줄이는 근본대책이 병행돼야 한다”(김윤태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주장이다. 실제 일본 정부는 무차별 살상을 뜻하는 ‘도오리마(通り魔, 거리의 악마)’ 범죄가 2008년 역대 최다인 14건을 기록한 뒤, 각종 대책을 쏟아냈다. 한국처럼 사후적 강경책도 있었지만, ‘소년의 건전 육성과 고립된 젊은이의 사회참가 촉진’ 등 외톨이 관련 대책도 함께 포함했다. 2013년부터는 ‘히키코모리(引き籠もり, 은둔형 외톨이) 대책 추진 사업’을 통해 지역지원센터에서 상담도 지원하고 있다.

그럼에도 일본이 무차별 살상의 공포에서 완전히 벗어난 건 아니다. 일본 내각부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기준 일본의 히키코모리는 15~64세 인구의 2% 남짓인 146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지난 7월에도 오사카 간사이 공항을 향하던 전철 안에서 30대 남성이 무차별 흉기 난동을 벌여 3명이 다치는 일이 벌어졌다. 일본 히키코모리 문제를 연구해온 김광희 협성대 경영학과 교수는 “일본이 외톨이 대책을 펼친 덕분에 그나마 현재 수준으로 관련 범죄를 관리하고 것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국무조정실의 ‘2022 청년 삶 실태조사’에 따르면 국내 ‘은둔 청년’은 약 24만명으로 추산된다. 취업 어려움(35%)이 가장 큰 원인으로 분석됐다. 일본을 반면교사 삼아 더 적극적인 외톨이 감소책을 펼쳐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외톨이들의 사회적 접점을 늘리는데 주력했던 일본과 달리 ①경제적(교육·취업) ②사회적(오프라인 소셜인프라 구축) 접근법을 동시에 취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윤태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정신질환이라든지 우울증을 궁극적인 원인으로 보는 것은 표층 논리“라며 “정신질환을 만들어내는 가족·사회 구조적 요인을 해결해야 한다”며 투트랙 접근법을 강조했다. 이윤호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명예교수는 “1차적으로 경제·복지 등 구조적 관점의 대책이 필요하다”며 “그럼에도 일어나는 범죄에 대해선 강력하게 처벌하는 통합적 시스템이 작동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민중·장서윤 기자 kim.minjoong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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