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6운동권 8·15 반성문…함운경 “우리가 만든 쓰레기 치우자”
1970~80년대 민주화 운동을 주도했던 86 운동권 인사들이 오는 8월 15일 제78주년 광복절을 맞아 “과거의 그릇된 행태를 반성하고 미래 세대에게 새 판을 열어주자”는 취지의 모임 ‘민주화운동 동지회’(가칭)를 발족한다. 운동권 출신이 대규모로 모여 “과거를 반성하고 진영 논리를 타파하자”는 취지의 모임을 꾸리는 건 처음 있는 일이다.
서울대 삼민투 위원장으로 1985년 미국 문화원 점거 농성을 주도했던 함운경씨는 7일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민주화 운동은 1987년 체제 도입으로 그 역할을 마쳤다. 하지만 일부 운동권은 30여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민주화 상징을 독점하며 진영 논리로 나라를 분열시키고 있다”며 “운동권이 만든 ‘쓰레기’는 운동권이 치워야 한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모이기로 했다”고 말했다.
이번에 발족할 모임은 지난달부터 구체화했다고 한다. 함씨를 비롯해서 민청학련 사건(1974년), 부마민주항쟁(1979년) 등으로 구속된 주대환 죽산 조봉암기념사업회 부회장, 1997년 대법원에서 이적단체 판결을 받은 ‘조국통일범민족연합(범민련)’ 남측본부 사무처장 출신 민경우 대안연대 대표 등이 주도적으로 머리를 맞댔다.
이들은 오랫동안 진보 진영에서 활동했으나 최근 일본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문제와 관련한 진보 진영의 비판에 대해 “과학과 괴담의 싸움이자 반일 민족주의와의 싸움이다. 물러설 수 없다”(함운경)며 반대 목소리를 내왔다. 이명박 정부 때 ‘광우병 사태’를 주도한 민경우 대표는 “광우병 시위를 준비할 때 광우병이 팩트가 맞는지를 놓고 회의를 한 적은 한 번도 없었던 것 같다”고 폭로하기도 했다.
최근 일련의 만남을 가지면서 이들은 “적대적 정치를 끝내자”며 함께할 이들을 모으고 있다. ‘결성 제안문’은 주대환 부회장 주도로 작성됐다. 주 부회장은 통화에서 “서로를 향한 증오의 언어가 난무하고 반지성의 진영 정치가 지속되고 있다”며 “가짜뉴스와 괴담이 난무하는 극단의 대결 이면에 이른바 ‘운동권 정치’가 내재된 것 아닌가. 이제는 끝내야 한다”고 했다.
주 부회장에 따르면 결성 제안문엔 “정당 정치와 의회민주주의의 복원을 지지하며 대결과 증오를 부추기는 세력을 축출해야 한다. 이제 민주화운동의 옛 동지는 하나가 아니다. 마음은 젊은 날의 초심 그대로인데 생각이 매일 바뀌고 있는 사람은 오라. 우리 함께 후손을 위해 '설거지'를 하자”고 적혔다. 결성 제안문에 공감해 발기인으로 이름을 올린 이는 7일 기준 50명이 넘었다.
이들은 새로운 미래를 위해 청산해야 할 목표도 세워 모임 발족 후 본격적인 작업에 들어가기로 했다. ▶해방전후사의 인식이 남긴 반(反) 대한민국 역사 인식 ▶민주화운동의 상징 자산 사취(詐取) 및 독점 ▶반미ㆍ반일 프레임에 갇혀 북한의 신정(神政) 체제에 관대한 모습 ▶상대를 타도의 대상으로 보는 독선과 흑백 논리 ▶도덕적 우월감 등이다.
발족식은 1987년 6월 항쟁이 시작된 민주화 운동의 성지 ‘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서울 중구)에서 열릴 예정이다. 발족 전까진 한시적으로 함운경씨가 대표, 민경우 대표가 사무총장을 맡기로 했다. 민경우 대표는 “8월 15일까지 800명을 모으는 게 목표인데, 모임 취지에 공감하는 사람이 많아서 목표를 초과 달성할 것 같다”고 말했다.
김준영 기자 kim.jun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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