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속 100㎞로 아우디 박았다…제네시스의 '쇼킹 광고'

강기헌, 김수민 2023. 8. 8.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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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네시스 명운 건 승부수

■ 현대차 연구

「 2008년 제네시스 광고는 파격 그 자체였습니다. 제네시스와 아우디 A8을 시속 100㎞로 정면충돌시켰죠. 독일 명차들에 대한 정면승부 선언. 제네시스는 ‘섬세한 차’입니다. ‘모기가 남긴 바늘 자국’이라도 있으면 퇴짜 놓을 정도로 까다롭게 시트를 고르고 첨단소재를 개발합니다. 전 세계 누적 판매량 100만 대를 바라보는 제네시스 탄생 비화를 소개합니다.

지난달 11일 경기도 화성시 현대트랜시스 본사에선 미발표된 신차에 장착될 시트 테스트가 한창이었다. 영하 40도에서 영상 80도를 오가는 극한 기후 조건을 만들어두고, 시트를 비틀고 흔드는 과정에서 나오는 소음을 측정 중이었다. 김동기 시트검증실장은 “시험을 통과하는 기준은 45㏈(일반적인 사무실 소음) 이하인데 제네시스 시트는 기준을 더 높여서 평가한다”고 소개했다.

박경민 기자

제네시스와 같은 플래그십 자동차는 시트가 시작이자 끝이다. 아름답고 편안하며 안전해야 한다(삼합·三合). 서승우 시트본부장과 고명희 시트설계실장의 설명이다. “제네시스 시트에 쓰는 가죽은 ‘모기가 남긴 바늘 자국’이라도 있으면 퇴짜 놓을 정도로 까다롭게 고르고 있어요.”

이런 기술 투자와 지극 정성 덕분일까. 제네시스의 질주가 이어지고 있다. 지난 5월 기준 전 세계 누적 판매량은 94만6046대로, 조만간 100만 대를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이젠 닛산 인피니티, 혼다 아큐라, 재규어 등을 뛰어넘었다.

박경민 기자

시작은 순탄치 않았다. 1989년 무렵 이충구 전 현대차 사장은 이렇게 기억했다. “1989년 미국 시카고 모터쇼에서 렉서스를 처음 봤을 때 큰 충격을 받았다. 서너 달 지나 겨우 한 대를 구해 남양연구소에 가져왔다. 엔진이 돌아가는지 모를 정도로 조용하더라. 현대차 내부에서 ‘럭셔리 브랜드를 만들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는데, 여건은 좋지 않았다.”

경기도 화성시 현대트랜시스 연구동에서 이인호 시트선행연구실장(왼쪽부터)과 고명희 시트설계실장, 서승우 시트본부장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세 사람은 올해 레드닷 디자인 어워드 디자인 콘셉트 분야에서 폐가죽으로 만든 실과 재생 페트 원사를 결합한 원단으로 만든 시트를 선보여 본상을 받았다. 우상조 기자

보다 진지하게 고민한 건 기아자동차(현 기아) 인수(1999년)와 현대그룹 계열 분리(2000년) 이후다. 특히 2000년대 초부터 BMW와 벤츠 등 유럽 차의 ‘공습’이 시작되면서 ‘안방’을 내줄 위기가 닥치자 현대차는 보다 구체적으로 접근하게 된다. 2003년 ‘프로젝트 BH’에 시동을 걸었다. 자동차 업계엔 “현대차가 ‘벤츠 헌터(Benz Hunter)’ 조직을 만들었다”는 우스갯소리가 돌았지만, 현대차는 4년간 개발비로 5000억원을 투입했다. 별도 전담 개발팀을 구성했고 설계 때부터 디자이너가 참여했다. 애초부터 제네시스만의 DNA를 갖추도록 유도한 것이다. 미쓰비시자동차와 공동 개발해 출시한 1·2세대 그랜저와 이를 기반으로 한 다이너스티, 1세대 에쿠스와는 접근 방식이 달랐다.

박경민 기자

2008년 제네시스 BH를 출시했다. TV 광고는 파격 그 자체였다. ‘독일 명차와 시속 100㎞ 실차 정면충돌 테스트’라는 문구를 앞세운 영상에는 제네시스 BH와 아우디 A8의 충돌 장면을 담았다. 독일 차와 정면 승부를 피하지 않겠다는 의미다. 당시 개발에 참여한 현대차 출신 디자이너는 “디자인에 포르쉐 흔적이 남아 있어 완전한 독립이라고 보기는 어려웠다”고 말했다. 국내에선 20만 대 넘게 팔렸다.

현대차는 ‘또 다른 한 방’을 준비했다. 이탈리아의 명품 브랜드 프라다와 손잡고 ‘제네시스 프라다’를 2011년 5월 국내에 선보였다. 차량에 제네시스 프라다 로고와 차량 고유번호가 새겨진 시리얼 넘버 플레이트를 부착했다. 하지만 1200대 한정 판매였는데도 연말까지 300대 판매에 그쳤다. 김필수 대림대 미래자동차학부 교수는 “대중적인 현대차의 브랜드 이미지를 제네시스 프라다가 넘어서지 못한 사례”라고 평가했다.

박경민 기자

럭셔리 태스크포스(TF)가 꾸려졌다. 당시 부회장이던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던진 화두는 ‘제네시스다움이란 무엇인가’와 ‘럭셔리란 무엇인가’였다. 당시 TF에 참가했던 한 디자이너는 “3~6개월 이상 장기 출장을 보내줬다. 유럽에서 럭셔리 브랜드가 어떻게 소비되고, 어떤 관점에 영향을 받는지 원점에서 검토해 보자는 것”이었다고 회고했다. 그 결과로 현대차는 2015년 11월 제네시스 브랜드 독립을 발표했다.

미국에서 제네시스는 고공행진 중이다. 유럽에선 그렇지 못하다. 구상 홍익대 산업디자인과 교수는 “한 세기가 넘는 역사를 지난 유럽 차 브랜드와 비교해 깊지 않은 역사성은 제네시스 브랜드의 가장 큰 약점”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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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 “테슬라가 게임체인저? NO!” 스탠퍼드는 현대차 지목했다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181213

③ “설계한 놈들이 조립해 봐라” 도요타 이길 정몽구 승부수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179401

④ 10년뒤 현대차 설계하는 곳, 그곳엔 ‘자동차’가 없었다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175901

강기헌·김수민 기자 emck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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