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위기 험악, 윤동주 보도만 나와도 끌려가" 닫힌 中생가 가니

신경진 2023. 8. 8.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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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 찾아간 중국 지린성 옌볜조선족자치주 룽징시의 윤동주 생가의 문에 “내부 수리 중이여서 참관 잠시 중지합니다”라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옌볜=박성훈 특파원

“내부 수리 중이여서 참관 잠시 중지합니다.”
7일 오후 기자가 찾아간 중국 지린성 옌볜(延邊) 조선족자치주 룽징(龍井)의 윤동주 시인의 생가. 자물쇠로 잠긴 대문엔 관람 중단을 알리는 노란색 안내판이 걸려있었다. 서시(序詩)가 새겨져 있는 담 너머로 보이는 생가 앞마당엔 벌써 군데군데 풀이 자라나 있었다. 한동안 아무도 드나들지 않았음을 짐작게 했다.

생가 관리인에게 연락했지만 “문 닫은 지 한 달쯤 된 것 같고 구체적인 이유는 잘 모른다”는 답만 돌아올 뿐이었다. 윤동주 생가 일대는 ‘중국조선족교육제1촌’이란 이름으로 사실상 문화 관광지로 개발돼 있다. 생가 주변에 막걸리 공장, 명동학교, 장수샘 등의 교육·관광 시설이 들어서 있다. 그러나 생가가 문을 닫았다는 소식 때문인지 생가 일대에선 행인을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7일 찾아간 중국 지린성 옌볜조선족자치주 룽징시의 윤동주 생가의 문이 굳게 닫혀 있다. 문옆으로 “중국 조선족 애국시인 윤동주 생가”라고 중국어와 한글로 적힌 비석이 세워져 있다. 옌볜=박성훈 특파원

생가 인근에서 만난 한 주민이 조심스레 저간의 소식을 전했다. 4대째 이곳에 살았다는 조선족 할머니는 “7월 초부터 문을 닫았다”며 “중국과 한국이 모순(갈등)이 있어서 그런 것 같다고들 한다. 한국에서 윤동주를 자기네 나라 사람이라고 해서 그렇다”고 말했다. 실제로 보수 공사를 진행 중이냐고 묻자 “수리하는지는 모르겠다. 생가 관리는 (룽징시) 지방정부 촌부에서 한다”고만 말했다. 불편한 한·중 관계와 윤동주 시인의 국적 논란을 폐쇄 이유로 여기는 듯했다.

중국 당국은 생가 폐쇄 이유로 시설 보수를 내세웠다. 이날 주중 한국 대사관의 고위 관계자는 “윤동주 생가의 잠정 폐쇄는 시설 보수 공사라는 기술적 차원에서 이루어진 것으로 파악 중”이라며 “보수공사로 인해 미개방된 상태라고 중국측이 확인했다”고 말했다. 그는 “중국측이 시설 보수 공사에 따른 것이라고 하는 만큼 관련 조치가 완료되는 대로 재개관할 것으로 보며 주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이날 현재 윤동주 생가 주변에선 보수 공사를 한 흔적은 발견할 수 없었다. 익명을 요구한 현지 관계자는 “요즘 분위기가 험악하다”며 “한국에서 윤동주 보도만 나오면 끌려가서 조사를 받아야 하는 상황”이라고 털어놨다.

윤동주 생가보다 앞서 지난 5월 전후로 폐쇄된 랴오닝성 다롄(大連)시 뤼순(旅順) 감옥 박물관의 안중근 전시실도 최근까지 실제 보수 공사는 이뤄지지 않은 상태였다. 앞서 지난달 30일 뤼순 감옥 박물관을 다녀온 교민은 “특히 10여개 전시실 가운데 안중근·신채호 선생 등 한국 독립투사 전시실만 폐쇄된 상태”라며 "시설 정비나 보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고 전했다. 뤼순 박물관의 위챗 공식 계정에도 보수나 폐쇄를 알리는 안내문은 전혀 찾을 수 없었다.

윤동주 생가는 지난 1900년대 초 동간도 최대의 한인촌이었던 룽징 명동촌에 자리하고 있다. 1917년 12월 이곳에서 태어난 윤동주는 독립운동가의 요람이던 소학교 명동학교에서 사촌이자 수필가 송몽규 등과 수학하며 15세까지 살았다.

1981년 허물어졌던 생가는 1994년 8월 순국 50주년을 한 해 앞두고 사단법인 해외한민족연구소의 지원으로 복원됐다. 당시 복원에 대해 중국 포털인 바이두 백과는 “중국과 외국 우호 인사의 도움으로 세웠다”고 한국의 지원 사실을 인정했다.

중국은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로 한·중 관계가 악화하던 지난 2017년 3월에도 안중근 의사의 의거 현장인 하얼빈 역사에 세워진 안중근 기념관을 폐쇄하고 조선민족예술관의 옛 부지로 갑작스럽게 이전했던 적 있다. 당시에는 이전 3년 뒤인 2019년 하얼빈 역사 신축이 끝난 뒤 의거 현장으로 복원됐다.

룽징=박성훈 특파원 park.seongh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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