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무량판은 속죄양인가?
화가 나고 불안하다. 건설 공사에서 과거의 실수를 잊어버리고 같은 실수가 반복되고 있어서다. 보가 없이 기둥만으로 슬래브를 받치는 무량판 구조가 붕괴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설계와 재료 공급, 설치 과정에서 콘크리트 강도가 떨어진 데다 전단보강근이 누락된 것이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설계부터 시공에 걸쳐 품질 확보에 필요한 검증 작업이 철저하게 이뤄지지 못한 탓이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품질과 인력 관리를 소홀히 하는 등 주택의 공공성과 공정성을 유지하지 못한 책임이 크다.
고층아파트의 기본적인 뼈대인 콘크리트 재료와 구조의 품질 저하는 근본적으로 기술자와 자재 부족에 기인한다. 건설 현장은 노동력이 이미 고령화돼 있고 주요 인력이 외국인 노동자로 대체됐다. 건축 설계 및 구조 설계 분야도 고급 인력이 부족한 건 마찬가지다. 건설공사는 산업재해율이 가장 높은 분야다. 청장년층 사이에서 건설기술자는 인기가 없고 따라서 고급 인력을 모으기가 쉽지 않다. 게다가 민간 건설사는 기술자보다는 주로 경영 위주 인력으로 채워져 수주와 영업에 몰입하고 있다.
주택가격 상승으로 야기된 경제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데만 초점을 맞춘 섣부른 정책으로 인해 공동주택건설에 사용하는 콘크리트의 수요와 공급의 불균형이 발생한 것도 품질 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이유다. 우리나라 시멘트는 품질이 좋다고 볼 수는 없는데 콘크리트 강도를 좌우하는 모래와 자갈마저 부족하다. 환경부가 권장하는 건설폐기물을 활용한 재생골재도 철저한 품질 관리가 선행되지 않으면 강도 저하를 초래한다.
LH는 공공성을 앞세워 주택건설 대상지역 토지를 수용하고 상하수도와 도로, 전력·통신 등 필수적인 인프라 공사를 통해 주거단지를 조성한다. 조성된 택지는 건설시행사에 매각하기도 하고 주택공급 발주처로서 양질의 공동주택건설을 위해 입찰을 통해 민간시공업체를 결정한다. 주요 건설자재인 콘크리트는 건설공사 지역의 레미콘업체를 통해 관급자재로 공급한다. 공사를 맡은 민간시공사는 필요한 공사를 다시 재하청을 주는 방식으로 전체 공사를 진행한다. 이러한 건설공사는 발주처와 시공사 간에 체결한 계약서 도면과 시방서에 근거하여야 하며 재료 및 시공 품질 관리는 단계별로 감리자의 감독을 통해 진행된다. 토지조성, 계약, 건설과정 모두 공공성과 경제성 그리고 주거자의 주거성이 확보돼야 사업이 원활하게 진행될 수 있다.
사업 추진 주체는 아파트 건설프로젝트에 참여하는 업체를 선정하고 관리할 때 최종 수요자와 같은 마음이 돼 공공성과 공정성을 확보해야 한다. 기술력과 경제성이 최고인 업체와 자재를 공정하게 골라야 할 의무를 외면하면 그 틈을 부정 거래가 파고들게 된다. 건설은 특히 기술력을 우선시해야 하는데 전관예우와 같은 인적네트워크가 앞서면 우리가 비난하는 3류 정치판과 하나도 다르지 않다. 건설기술 인력은 우리 몸의 근육질과 같아서 지속적으로 기술수준을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 기술력 유지를 소홀히 하면 서류 뭉치만 많이 쌓이고 현장의 건설재료와 뼈대는 허약해질 수밖에 없다.
국토교통부 장관의 엄중한 지시 이후 무량판 구조가 부실시공의 주범으로 지목되는 것 같아 안타깝다. 문제가 된 지하주차장만이 아니라 내력벽이 지탱해 안전한 주거동 거실의 기둥까지도 보강철근 설치 여부를 조사한다고 전국이 들썩이게 생겼다. 무량판 구조 자체는 죄가 없다. 정치적으로 해결하려고 덤비면 또 다른 문제가 생긴다. 건설업계의 비리는 그것대로 실체를 밝혀 엄단해야겠지만 부실시공을 낳는 구조적인 문제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주택정책에 따른 인적·물적 자원 수급체계를 점검해야 한다. 콘크리트 등 자재와 기술 인력의 품질을 높이지 않고는 부실시공의 악순환을 막기 어렵다.
홍성걸 서울대 건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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