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멍 숭숭' 간첩죄 손질 시급한데…법사위 소위서 표류 [70년 된 간첩죄, 이제는 바꾸자 ①]

정도원 2023. 8. 8. 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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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국'을 위한 간첩 행위만 처벌하도록 돼있는 현행 형법상의 간첩죄 대상을 동맹국·우방국을 포함한 '외국'으로 확대하자는 형법 개정안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따라서 동맹국인 미국은 물론 우방국인 영국·프랑스·독일·이탈리아·캐나다·일본, 심지어 가상적국인 중국까지도 간첩죄의 대상에 포함되지 않으며, 이들 국가에 군사상의 기밀은 물론 산업기밀을 누설해도 간첩죄로는 처벌할 수 없는 게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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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3년 제정 이후 한 번도 안 바뀌어
대상은 오로지 '적국' 북한에 한정돼
다른 외국의 간첩행위는 처벌 불가능
개정안 발의됐지만 법사위 소위 계류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법안심사소위 회의 모습 ⓒ뉴시스

'적국'을 위한 간첩 행위만 처벌하도록 돼있는 현행 형법상의 간첩죄 대상을 동맹국·우방국을 포함한 '외국'으로 확대하자는 형법 개정안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우방국 사이에서도 군사기밀과 산업기밀을 둘러싸고 정보전이 치열한 국제 정세를 고려해 8월 임시국회, 늦어도 정기국회 중에 개정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크다.

형법 제98조 간첩죄는 1항에서 '적국'을 위해 간첩하거나 '적국의 간첩'을 방조한 자는 사형·무기 또는 7년 이상의 징역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2항에서는 '군사상의 기밀'을 '적국'에 누설한 자도 전항의 형과 같다고 규정했다.

이 조항은 1953년 형법 제정 이후 70년째 한 차례도 개정되지 않았다. 현행 형법은 1953년 9월 18일 제정됐다. 7월 27일 정전협정이 체결된지 불과 한달여 뒤의 일이다. 전쟁으로 온통 폐허가 된 우리나라에는 '군사상의 기밀' 외에는 가치 있는 '산업상의 기밀'이랄 게 전혀 존재하지 않았다. '적국' 외에는 우리나라를 간첩할 필요성을 느끼는 세력이 전혀 없었다.

형법상의 '적국'이란 오로지 북한 뿐이다. 물론 북한은 헌법 제3조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 전부를 영토로 하는 대한민국의 영역 일부를 참절하고 있는 자칭 국가, 반(反)국가단체에 불과해 '나라(國)'라 할 수 없으나 간첩죄의 적용에 있어서만큼은 나라에 준해 '적국'으로 취급된다는 게 대법원의 판례다.

대법원은 1983년 3월 22일 이른바 '조총련 간부 간첩 사건'에서 "북한괴뢰집단은 우리 헌법상 반국가적인 불법단체로서 국가로 볼 수 없으나, 간첩죄의 적용에 있어서는 이를 국가에 준하여 취급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따라서 동맹국인 미국은 물론 우방국인 영국·프랑스·독일·이탈리아·캐나다·일본, 심지어 가상적국인 중국까지도 간첩죄의 대상에 포함되지 않으며, 이들 국가에 군사상의 기밀은 물론 산업기밀을 누설해도 간첩죄로는 처벌할 수 없는 게 현실이다.

이같은 현실은 정전협정 이후 70년간 우리 경제가 급속히 성장해 동맹국·우방국에도 가치 있는 '산업기밀'이 우리나라에 다수 존재하며, 특히 국제정세의 변화에 따라 '산업기밀' 자체가 중요한 안보 가치를 지니게 된 상황에 맞지 않는다는 비판이 많았다.

이에 조수진 국민의힘 의원 등은 형법상 간첩죄 개정안을 지난 2월에 대표발의했다. '적국'에 국한했던 간첩죄의 대상을 '적국·외국·외국인·외국인의 단체'로 확대하고, 간첩행위의 개념을 국가기밀을 '탐지·수집·누설·전달·중계'하는 행위로 명료하게 다듬었다.

형법 개정안은 법사위 법안심사소위에서 논의되고 있다. 개정의 필요성에는 여야 의원들 사이에서 대체로 공감대가 형성된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법원행정처의 신중론에 막혀 소위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법원행정처는 "군사기밀보호법 등 현행 (특별)법으로도 기밀유출범을 처리할 수 있다" "군사기밀보호법의 형량이 간첩죄 개정안보다 낮아 법체계 검토가 필요하다" "동맹국의 간첩과 적국의 간첩을 일률적으로 같은 법정형으로 처벌하는 게 타당한지 검토가 필요하다"는 등의 주장을 펴고 있다.

이에 대해 정점식 국민의힘 의원은 "미국 대상 간첩죄는 징역 7년 이상, 일본은 징역 10년 이상, 이런 식으로 규정할 수는 없다"며 "결국 법원이 양형으로 결정해야 할 문제"라는 입장이다. 홍익표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국가 간의) 친소 관계에 따라 형량 차이를 둬야 한다는 주장은 법적 형평성에 맞지 않다"며 "그것은 판사의 재량이지, 법에 명문화 시키는 것은 말이 안된다"고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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