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원경의 이코노믹스] 노후선박 교체와 친환경 수요…한국 조선 새 기회 만났다
조선업 빅사이클 전망
그렇다 해도 지금의 한국 조선업 경기를 ‘빅 사이클’의 초기로 보는 것은 무방하지 않을까 한다. 시장에서는 교체 수요와 환경규제의 영향으로 앞으로 10년간 한국 조선업계가 일감을 충분히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조선 선가는 상당한 수준에 올라 있고, 공급자 우위에 있다. 비용만 크게 상승하지 않는다면 매출과 영업이익 신장이 가능하다. 구체적으로 아래와 같은 상황이 빅 사이클 여건을 조성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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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둔화·고금리가 발목 잡지만
조선사들 3년치 이상 일감 확보
앞으로 10년 ‘빅 사이클’ 위해선
인력난 해결에 범정부 지원 절실
노사 화합·기술 초격차도 필수
」
한국 조선업 빅 사이클 초기 단계
첫째, 노후 선박 교체 사이클에 들어서고 있다는 점이다. 선박 교체 시기를 25년 정도로 볼 때 현재 건조량의 50~70%는 2000년대 발주된 선박의 교체 물량이다. 2025~26년부터는 본격적으로 선박 교체 사이클이 시작된다. 하지만 우리나라를 포함해 전 세계적으로 건조시설과 인력이 부족하다. 2008년 1020개까지 늘어났던 글로벌 조선사 수는 2022년 382개로 감소했다. 그 사이 인력도 줄었다. 새로운 선박 건조 가격은 올라갈 수밖에 없다. 신규 건조 선박 가격을 평균 지수화한 수치인 ‘클락슨 신조선가지수(New building Price Index)’는 꾸준히 상승해 지난해 수준을 능가했다. 신조선가가 오른 이유에는 조선사들이 호황을 일시적으로 생각해 생산능력을 늘리지 않은 것도 한몫했다.
둘째, 패러다임 시프트다. 전 세계적인 2050 탄소 중립에 따라 강화된 환경규제로 친환경 선박으로의 교체 수요가 꾸준하다는 점이다. 국제해운 분야는 유엔 기후변화협약에 따른 국가별 온실가스 감축 목표(NDC)에 포함되지 않는다. 대신 UN 산하 국제해사기구(IMO)에서 탄소 감축 목표와 이행방안을 따로 정하고 있어 이를 지켜야 한다. 현재 IMO의 온실가스 감축 목표는 2030년까지 2008년 대비 40%를 개선하고, 205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 총량을 절반으로 줄이는 것이다.
친환경 선박은 액화천연가스(LNG), 메탄올, 수소, 암모니아, 액화석유가스(LPG), 전기(배터리) 등을 연료로 하는 선박이다. 올해 들어 시황 악화로 컨테이너선 발주 물량은 많이 감소했다지만, 발주 여력이 있는 선사는 친환경 전환을 위한 선박 투자를 지속하고 있는 상황이다.
현재 선박에서 가장 주목받는 연료는 LNG다. LNG는 석유매장량의 700배 이상으로 매장량이 풍부하다. 다른 화석연료에 비해 황산화물을 배출하지 않고, 미립자 물질과 질소 산화물의 양은 미미한 수준이어서 오염물질 배출량을 20~30% 감축할 수 있다. 수요가 폭증하면서 LNG선의 선가는 상승세를 지속해 사상 처음으로 2억6000만 달러 선을 돌파했다. 전 세계에서 발주하는 LNG선의 대부분을 한국이 수주하고 있다. 올해 상반기 LNG선 시장에서 한국은 88% 점유율을 기록할 정도로 압도적 지배력을 보인다.
수익 높은 LNG선, 한국 점유율 88%
셋째, 수주잔고와 실적 지표 차원에서 수익성이 나아지고 있다. 클락슨리서치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누계 수주 실적으로 보면 중국이 428척·1043만CGT(표준선 환산톤수, 59%)로 가장 많다. 한국은 114척·516만CGT(29%)로 2위였다. 지난해 연간 점유율 37%에 비해선 줄었다.
야드별로 보면 수주잔량(일감)은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 HD현대중공업 울산조선소, 한화오션 거제사업장이 세계 1~3위를 차지한다. 중국의 점유율 확대와 한국의 축소는 LNG선 발주 비중 감소, 벌크선 발주 비중 확대라는 시장 변화에 따른 것이다. LNG선이 전체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전년 동기 31.7%에서 올해 상반기 14.7%로 축소된 게 한국 조선의 점유율 하락 원인이다.
우리 조선사는 벌크선이나 탱커 같은 저부가가치 선박은 수주하지 않고 이윤율이 높은 LNG선을 거의 독점적으로 수주하고 있다. 프랑스 해운 조사기관 알파라이너에 따르면 글로벌 컨테이너선 발주에서 LNG와 메탄올 추진선 등 친환경 선박이 차지하는 비중이 40%가 넘는다. 중국의 경우 국영조선소인 후둥중화조선이 유일하게 LNG선을 건조할 수 있다. 그러나 과거 수차례 고장과 폐선 사고를 일으켜 선주들 사이에서 악명이 높아 경쟁력에서 한국 조선사와 차이가 있다.
그렇다고 해서 자만은 금물이다. 중국은 2분기에 발주된 메탄올 추진 9000TEU(1TEU는 20피트 컨테이너 1개)급 이상 대형 컨테이너선 12척 전량을 수주했다. 프랑스 선사 CMA-CGM과 덴마크 선사 머스크의 발주분을 독식한 것이다. 메탄올 추진선 분야에선 HD한국조선해양이 선두주자다.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의 중국 방문 이후 CMA-CGM이 메탄올 및 LNG 연료추진 대형선을 대거 중국에 발주했다는 점은 눈여겨볼 대목이다. 기술력에서 우위를 점하지 못한 중국 조선사들이 저가 수주로 입지를 구축했다는 시각이 있긴 하지만, 중국의 추격이 예사롭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우리 조선사들이 고부가가치 선박 수주에 집중해 수익률을 개선하려는 시도는 타당성이 있다. 2021년 상반기까지 이뤄졌던 저선가 수주분이 올해 중 대부분 소진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한국조선해양을 비롯해 삼성중공업, 한화오션 등 조선 3사의 수익성이 개선돼 영업흑자 전환이 확실시된다.
조선 현장 올해 부족 인력만 1만4000명
그러나 ‘빅 사이클’을 맞는 한국 조선산업이 맞닥뜨린 과제도 적지 않다. 우선, 전 세계 조선사들이 겪고 있는 인력난에서 한국도 자유롭지 않다. 지난 몇 년간 극심한 불황 와중에 조선 인력들이 대거 이탈했다. 한국조선해양플랜트협회에 따르면 2014년 20여 만명에 달했던 조선업 근로자 수는 작년 말 9만여 명 수준으로 급감했다. 수주 증가와 일감 확대로 정부가 예상하는 올해 인력 추가 필요 규모만 1만4000여 명에 이른다. 정부는 외국인력 도입제도 개선 등을 통해 상반기에 5500여 명을 확보했다고 밝혔으나, 아직도 산업현장의 인력난은 심각하다. 지난해 조선업계의 선박 건조량이 전년 대비 25.7% 감소한 데 이어 올해 상반기 4.7% 증가에 그친 것도 생산현장의 인력 부족 문제가 한 원인일 것으로 추정된다.
일손이 부족한 상황에서 외국인 근로자 확대는 불가피하다. 이를 위해선 우선 산업통상자원부와 법무부 등 범정부 차원의 지원이 절실하다. 또 조선사는 외국인 근로자의 생산성을 높일 수 있도록 작업역량 향상을 위한 교육과정 개설, 좋은 정주 여건 조성 등을 위해 관계부처 및 지자체와 긴밀한 소통을 해나가야 한다. 중장기적으로 내국인 생산 인력 양성을 위한 민관의 노력도 체계적으로 진행돼야 한다.
둘째, 수익성의 지속적 개선을 위한 비용 상승 요인의 관리다. 이를 위해선 노사 상생을 도모하면서 노사 관계를 안정시키는 것이 필수적이다. 노사의 극한대립이 되풀이되면 납기를 맞출 수 없게 되고 막대한 손실로 이어지게 된다. 안정적인 원자재 가격과 공급도 중요하다. 철강사와 조선업의 상생 협력 강화 방안에 정부가 유연한 리더십을 발휘할 필요가 있다.
셋째, 기술 초격차의 유지다. 지속적으로 한국 조선과 해운업이 세계를 선도하기 위해선 친환경 선박 건조 역량이 중요할 수밖에 없다. 해상 탄소 중립은 LNG선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당분간 노후선의 LNG선 교체 수요가 일정 수준 유지되겠지만, 1만척 이상인 벌크선과 탱커 시장에서 향후 친환경 선박 교체 수요가 일어나는 상황에 대비해야 한다. 이 시장을 잡아야 빅 사이클이 계속 유지될 수 있다. 2024~2025년 암모니아 엔진 개발이 수요 확대의 새로운 계기가 될 수 있다. 암모니아 엔진의 상용화는 온실가스 배출량을 제로로 할 수 있어 선주들의 기대감이 높기 때문이다. LNG선에서 입증한 세계 최고 수준의 친환경 선박 건조 기술을 한층 고도화하는 것이야말로 후발 추격자들을 따돌릴 수 있는 비책이다.
조원경 UNIST 교수·글로벌 산학협력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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