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인 80% “이미 10년전 일본에 추월 당해”
한·일 축구 벌어지는 격차②
“한국 축구가 일본에 추월 당한 건 10년도 넘었습니다. 오래 전부터 내용과 결과 모두 지고 있었으니까요.”
현역 시절 한일전에서 2골을 기록한 최순호(61) 수원FC 단장은 냉정하게 현실을 진단했다. 한국 축구는 최근 일본에 5연속 0-3 참패를 당했다. 1954년 이후 A대표팀간 역대 전적에서 한국이 43승19무19패로 앞서지만, 최근 전적만 보면 완전히 역전 당한 모양새다.
어쩌다 이렇게 된 걸까. 중앙일보가 한일전에 선수 또는 지도자로 참여한 축구인 30명을 선정해 질문을 던졌다. 80%에 달하는 24명이 “일본에 추월 당했다”고 인정했다. 일본 J리그에서 뛰었던 홍명보(54) 울산 감독은 “일본은 ‘세계를 향해 간다. 그 전에 한국을 넘어야 한다’고 입버릇처럼 말해왔다. 반면 우리는 어쩌다 한 번 이기는 한일전으로 여러 문제점을 봉합했다”고 했다. 박성화(68) 전 올림픽대표팀 감독은 “서로 다른 연령대 대표팀이 5연속 0-3 패배를 당한 건 심각한 위험 신호”라고 우려했다.
양국 격차가 벌어진 가장 큰 이유로 절반에 가까운 14명(46%)이 저변 차이를 꼽았다. 등록 선수는 한국(11만6000명)이 일본(82만6000명)의 1/8 수준에 불과하다. 한국의 유소년 축구팀이 채 1000개가 되지 않는 것과 달리 일본은 1만5000개에 달한다. 익명을 요청한 축구인은 “1만 명 중에 11명을 뽑는 것보다 100만 명 중에서 뽑는 게 좋은 선수가 나올 확률이 높다. ‘퀄리티(질)’는 ‘퀀티티(양)’ 안에 숨어있다”고 했다. 안효연(45) 동국대 감독은 “우리나라도 이강인(파리생제르맹), 배준호(대전) 같은 걸출한 선수가 이따금씩 나오지만, 일본에는 배준호에 살짝 못 미치더라도 비슷한 스타일의 선수가 10명쯤 있다고 보면 된다”고 했다.
축구인 8명(28%)은 승리와 결과만 강조하는 한국식 지도 방식을 지적했다. 신연호(59) 고려대 감독은 “유소년 선수들에게 기본과 기술을 충실히 가르쳐야 하지만, 지도자들 입장에선 성적을 외면하기 힘든 게 현실”이라고 했다. 이어 “그동안 차범근, 박지성, 손흥민, 김민재, 이강인 같은 돌연변이 천재들이 나와준 덕분에 버틴 것”이라고 했다.
시대가 바뀌며 한일전을 대하는 태도도 달라졌다. 김학범(63) 전 올림픽대표팀 감독은 “과거엔 일대일에서 일본 선수에게 볼을 뺏기면 악착같이 따라가 되찾아왔다. 요즘엔 멀뚱 멀뚱 서있는 선수들도 보인다. 오히려 일본이 전략적으로 어린 시절부터 근성을 강조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설문에 응한 축구인 중 24명은 패배를 추가하더라도 일본과의 최정예 맞대결 기회를 늘려야 한다고 조언했다. 한 축구인은 “(한일전을 회피하는 건) 큰 병이 나올까 두려워 건강 검진을 피하는 꼴이다. 일본이라는 라이벌을 통해 우리의 현재 위치를 확인할 수 있다는 건 혜택에 가깝다”고 했다.
송지훈·박린 기자 song.jih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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