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국가신용등급 하락, 12년 전과 달리 충격파 미풍… 왜?
지난 1일 세계 3대 신용평가사 피치가 미국의 국가신용등급을 AAA에서 AA+로 하향 조정했다. 2011년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가 국가신용등급을 AAA에서 AA+로 낮춘 지 12년 만인데, 그때와 지금의 국제 금융시장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는 평가가 나온다. 당시 주가 급락 사태가 재현될 것이라는 우려와 달리 현재까지는 생각보다 파장이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이 꼽는 이유는 여러 가지다. 일단 2011년과 지금의 국제 경제 상황이 다르다. 당시 경험에서 얻은 학습효과가 일정 부분 작용했다. 미국 국채를 대체할 안전자산이 현실적으로 보이지 않는다는 점도 한몫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냥 안심하기는 아직 이르다는 지적이 나온다. 언제라도 국내외 금융시장의 불안 심리를 자극할 수 있는 요인이기 때문이다. 단기적으로는 환율 변동성과 미국의 통화 긴축 사이클 불확실성을 한층 끌어올렸다는 평가도 나온다.
피치는 미국 국가신용등급 강등 배경으로 불어나고 있는 재정적자와 ‘통치 침식(erosion of governance)’을 지목했다. 통치 침식은 미국 정치권에서 주기적으로 연방 정부 부채한도 증액 문제를 둘러싸고 갈등을 벌이면서 일상적인 정부 지출까지 제약을 받았다는 의미다. 피치는 미 국채가 극도로 안전하다는 국제 투자자들의 믿음도 약화시켰다고 지적했다.
앞서 피치는 지난 5월 미국 정부가 디폴트(채무불이행)를 모면하더라도 국가신용등급이 강등될 수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이미 어느정도 예상됐던 악재였던 셈이다.
다만 국가신용등급이 강등된 지 약 일주일이 지난 7일 현재까지 국제 금융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생각보다 제한적이다. 물론 이번 강등 발표 이후 처음으로 열린 지난 2일 다우지수(-0.98%)·S&P500지수(-1.38%)·나스닥지수(-2.17%)는 일제히 하락했지만, 그 폭은 크지 않았다. 2% 안팎의 하락세를 보였던 한국·일본·홍콩 등 아시아 증시도 다음날에는 하락폭이 1%대 안팎으로 줄었다.
반면 12년 전 미국에 대한 S&P의 첫 국가신용등급 강등 결정 여파는 지금까지도 회자된다. 2011년 8월 5일 금요일 장 마감 후에 강등 발표가 나간 뒤 첫 거래일인 8월 8일, S&P500지수는 7% 가까이 급락했다.
전문가들은 최근 경제 상황이 2011년과 다르다는 점에서 차별성을 찾고 있다. 당시에는 2008년 촉발된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가 채 가시지 않은 시기였고, 또 스페인·그리스 등 유로존의 부채 위기가 절정에 달했던 시점이었다. 반면 지금은 글로벌 경기가 하반기들어 회복세로 돌아선 상황이다.
일종의 학습 효과로 내성이 생겼다는 분석도 있다. 도이치뱅크의 짐 리드 전략가는 “12년 전 S&P의 국가신용등급 강등으로 인해 투자자들은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채권 시장이 더 이상 순수 AAA가 아닌 것에 적응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현실적으로 안전자산으로서 미 국채를 대체할 만한 자산이 아직 없다는 점도 여파를 제한적으로 만드는 요인이다.
다만 단기적으로 환율 변동성과 미국의 통화 긴축 사이클 불확실성이 커진 점 등은 여전한 불안 요인이다. 실제 미국 국가신용등급 하향 조정 직후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통화 가치는 일제히 약세를 보였다. 안전자산에 대한 선호가 두드러지며 외국인 투자자들이 강달러를 좇는다면 환율 변동성은 더 커질 수 있다.
다만 미국 금리 인상 사이클이 마무리 국면으로 들어가면서 달러화 약세 흐름이 이어지고 있고, 하반기 무역수지 흑자·수출 개선 등 원화 강세 요인은 환율 하향 안정화 전망에 힘을 싣고 있다. 김승혁 NH선물 연구원은 “3분기에는 원·달러 환율이 1280~1300원 박스권에서 횡보하다가 4분기 점차 하락하는 흐름을 보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편으로는 미국의 추가 긴축 우려를 더 자극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긴축 우려가 다시 고개를 들게 된다면 증시는 다시 하락할 가능성이 크다. 다만 오히려 이번 강등에 따른 자금조달 비용 증가로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긴축 기조 중단의 재료가 될 수 있다는 분석도 존재한다.
미국의 국가신용등급 복귀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S&P는 12년 전 강등한 미국 국가신용등급을 아직도 상향 조정하지 않고 유지 중이다. 한국도 외환위기 발발 전 국가신용등급으로 돌아오는 데 무려 16년이나 걸렸다.
그만큼 장기적인 관점에서 미국의 국가신용등급 강등이 세계 경제에 미칠 파장은 예측하기 힘들다. 피치의 경고가 ‘회색 코뿔소’ 상황과 비슷하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이유다. 회색 코뿔소는 지속적인 경고로 인해 사회가 인지하고 충분히 예상할 수 있지만 쉽게 간과하는 위험 요인을 뜻하는 경제 용어다.
미국의 국가 채무 부담이 갈수록 악화하고 있는 점은 자명하지만, 단기간에 관련 재정정책이 개선될 가능성은 요원해 보인다. 정치권의 조정 능력이 사라지고 위험이 현실화하는 순간 국제 금융시장이 요동칠 것은 한순간이라는 이야기다.
신재희 기자 jsh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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