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지방시대] 국가철도공단, 폴란드 진출… 유럽 시장 공략 날개 달았다
국가철도공단이 최근 폴란드 신공항(CPK)에서 발주한 카토비체~오스트라바 구간의 고속철도 설계용역을 수주하는데 성공했다. 유럽 정상급 엔지니어링 업체와의 경쟁에서 승리하고 유럽 고속철도 시장에 진출한 첫 사례다. 한국철도의 품질·기술력이 유럽에 비견된다는 것을 세계시장에 증명했다.
불과 20여년 전 유럽에서 철도기술을 수입했던 우리나라는 자체 기술로 고속철도를 만들 만큼 눈부신 기술성장을 이뤄냈다. 이제는 거꾸로 유럽시장을 공략하며 ‘K-철도’의 세계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그 중심에는 다양한 국가 발주처와의 네트워크를 통해 국내 철도산업의 해외 진출을 지원한 철도공단의 숨은 노력이 있었다.
2020년 기준 256조원 규모로 추정되는 세계 철도시장은 앞으로도 꾸준한 성장세를 보일 전망이다. 하지만 금융을 무기로 삼은 대규모 민자사업이 늘어나면서 개별 기업들의 사업 수주는 점차 어려워지는 추세다.
대형 철도사업을 진행 중인 폴란드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폴란드는 현재 중동부 유럽 최대의 허브공항 건설을 위해 신공항과 주요 거점도시를 연결하는 2000㎞ 규모의 고속철도 건설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프랑스·스웨덴 등 세계에서 손꼽히는 엔지니어링 업체, 폴란드 현지 업체 등이 사업 수주를 위해 치열한 각축전을 벌였다.
철도공단은 고속철도 사업관리 경험이 있는 도화엔지니어링과 컨소시엄을 구성, 각 업체와의 경쟁을 물리치고 폴란드 카토비체~체코 오스트라바(96㎞) 구간의 고속철도 설계용역을 수주하는데 성공했다. 이 구간의 사업 규모만 432억원에 달한다. 여기에 폴란드 시에라츠~포즈난(155㎞) 구간 입찰에서도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
철도공단의 ‘한국 고속철도 알리기’ 활동은 사업 수주의 밑거름이 됐다. 지난해 4월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현지 정부와 신공항공사 관계자들을 대상으로 ‘한국·폴란드 고속철도 기술협력 포럼’을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 한국 고속철도의 노반과 궤도, 한국형 열차제어시스템 등 우리나라가 보유한 기술을 중점적으로 홍보했다.
같은 해 6월에는 김한영 철도공단 이사장이 마르친 호라와 폴란드 인프라부 신공항 특명전권대표, 미코와이 빌드 폴란드 신공항 사장 등 현지 방문단 5명을 대전 본사에서 만나 한국 고속철도가 쌓은 경험·노하우를 공유했다. 김한영 이사장은 “2004년 유럽의 고속철도를 도입한 이후 20년만에 다시 고속철도 기술을 유럽에 수출하는 쾌거를 달성했다”며 “이번 사업을 조속히 추진해 폴란드 철도 인프라 건설을 돕겠다”고 말했다.
유럽 진출은 이번이 처음이지만 철도공단의 해외진출 역사는 이미 오래 전 시작됐다. 2005년 중국 수닝~중경을 잇는 수투선의 감리를 수주하며 시작된 해외시장 개척은 세계 곳곳으로 확장되고 있다. 최근 코로나19 여파로 해외진출이 어려웠을 때에도 철도 선진국을 제치고 각지에서 사업을 따냈다.
코로나19 팬데믹이 한창이던 2021년 중미경제통합은행이 발주한 ‘엘살바도르 태평양철도 개발 지원사업’을 수주했다. 화물·여객 수송을 위한 태평양철도 네트워크의 실행 가능성을 평가하는 사업으로, 철도공단은 국내기업인 수성엔지니어링·동명기술공단·평화엔지니어링과 함께 21개월간 공동으로 기술조사를 수행했다.
같은 해 9월에는 몽골 철도공사가 발주한 425억원 규모의 ‘몽골 타반톨고이~준바얀 신호통신시스템 구축 사업’을 수주하며 최초로 몽골 철도시장에 진출하기도 했다. 몽골 최대 광산인 타반톨고이 광산의 석탄수송을 위해 총 연장 415㎞의 단선철도를 건설하는 사업이다. 철도공단은 벽산파워와 함께 철도 신호 및 통신 시스템 설계·시공·시운전 등을 진행하고 있다. 이 사업을 통해 국내 중소기업 17곳이 만든 철도 자재와 부품 21종이 몽골에 수출되기도 했다.
지난해에는 모로코 철도청에서 발주한 98억원 규모의 ‘모로코 고속철도 3공구(누아서~마라케시)’의 기본 및 실시설계 사업 수주에도 성공했다. 공단이 아프리카에서 수주한 최초의 고속철도 사업으로 한국의 기술력을 세계에 알린 계기였다.
철도공단의 해외시장 진출은 단순히 ‘해외진출에 성공했다’는 성과만을 남기는 것이 아니다. 국내 민간기업도 해외 진출에 탄력을 받으며 함께 성장할 수 있어서다.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발주한 경전철 연장선 건설공사가 대표적이다. 3200억원 규모인 이 사업은 자카르타 벨로드롬~망가라이(6.3㎞) 구간에 교량과 5개의 역사를 건설하는 사업이다. 다양한 사업으로 기술력을 입증한 철도공단과 국내 기업들이 이 사업의 입찰 참여를 추진하고 있다. 그동안 철도기술 교류, 초청연수 등으로 인도네시아와의 협력을 다져 온 철도공단은 지난 2월 삼진일렉스·대아티아이·LG CNS와 ‘팀 코리아’를 구성해 현지 마케팅에 주력하고 있다.
몽골의 경우 2021년 수주한 타반톨고이~준바얀 구간의 신호·통신 시스템 구축사업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 올해 88억원 규모의 신호소 설치사업이 추가 진행될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한국기업의 진출 가능성이 더욱 높아졌다.
중동과 아프리카 시장 진출도 현재 진행형이다. 지난해 모로코를 통해 처음으로 아프리카 시장에 진출했다면, 올해는 유럽 글로벌 기업이 독점한 이집트 철도시장에 국내기업이 진출할 수 있도록 집중할 계획이다. 김한영 이사장은 “앞으로도 철도공단의 수익보다 민간기업의 해외시장 진출, 국내 철도산업의 성장에 가치를 두고 해외사업을 추진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대전=전희진 기자 heej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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