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에 폐지 수거하는 부부, 보고 있기 불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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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순심 기자]
폭염이 계속되고 있다. 눈을 뜨자마자 공기가 뜨거워 현재 온도를 확인한다. 이른 시간인데도 27도, 오늘도 힘들겠다고 생각하며 일찌감치 날씨에 대한 기대를 접고 정신을 수습한다. 숫자에 연연하는 순간 몸을 꼼짝도 할 수 없는 무기력한 하루가 되고 만다. 마음이 몸을 지배하지 않도록 아직은 괜찮다, 가만히 버티면 오늘도 무사히 잘 지나갈 거다, 주문을 건다.
무더위에도 하루 한두 번의 외출은 특별한 약속이 없어도 필수 일과다. 간단히 장을 보러 나가거나 더위를 피하고 책도 볼 겸해서 서점에 들르거나, 혹은 매일 채워야 하는 걸음 수를 위해 목적지를 특정하지 않고 도 닦는 심정으로 동네를 크게 한 바퀴 돈다.
돌아오는 길엔 딱히 볼 일이 없어도 슬그머니 대형 마트에도 들르고 은행에도 들른다. 이렇게라도 에어컨 바람을 맞지 않으면 뜨거운 아스팔트에 몸이 흐물흐물 녹을 것 같은 날씨다.
▲ 땡볕이 내리쬐는 주차장 구석, 빈 박스가 무질서하게 내던져진 공간에서 일하는 부부 |
ⓒ elements.envato |
무시로 나서는 거리에서 거의 매일 폐지 리어카를 마주친다. 정확하게는 폐지를 모으는 부부와 마주친다. 부부라는 것은 이들이 폐지를 수거하는 것을 오래 지켜보고 알게 된 정보다.
나와 무관했던 어떤 대상에게 마음을 쓰게 되는 것에 반드시 특별한 만남이나 상황이 전제되는 것은 아니다. 대체로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차지하는 폐지 수거 시장에서 다소 젊은 축에 드는 50대의 부부가 눈에 띈 것에 특별한 사연은 없다. 겨울엔 추위와 눈길이 신경 쓰이더니 지금은 폭염이 신경 쓰인다.
특히나 요즘의 날씨는 모든 육체 노동자를 위협한다. 비 오듯 흐르는 땀과 탈수기에 돌린 수건처럼 말라비틀어지고 새까만 손은 왠지 불안해 보였다. 잔뜩 쌓은 폐지를 실은 리어카는 작은 둔덕도 올라가지 못해 휘청거렸고 밀려 내려가 무슨 사고가 날 것만 같은 상황을 자주 연출했다.
가장 무시무시한 곳은 부부가 오래 일하는 장소다. 땡볕이 내리쬐는 주차장 구석, 빈 박스가 무질서하게 내던져진 공간이다. 부부의 폐지 리어카가 고정 주차되는 곳이자 여기저기서 모은 박스가 모이는 현장이다.
공간이나 폐지에 대해서는 건물주나 상점의 양해가 있었겠지만, 그늘 하나 없는 그곳은 아침부터 따갑게 내리쬐는 햇살에 회색 벽돌은 아침부터 뜨겁다. 사방에서 뿜어 나오는 뜨거운 열기가 부부의 온몸을 달군다. 그곳에서 부부는 리어카에 폐지를 쌓는다.
부부의 폐지는 내가 사는 아파트 단지 내 자전거 도롯가 화단 옆에도 적당히 쌓여 있다. 중간 야적장이며 부부가 잠시 휴식을 취하는 곳이다. 쌓인 폐지에 대해서는 다행인지 인근 주민들의 민원은 없는 것 같다. 만족스럽지는 않아도 그곳엔 큰 나무가 많아 그늘을 만들고 의자도 놓여 있다. 지친 몸과 땀을 식히기에 아쉬운 대로 적당하다.
▲ 폭염 대책 법제화를 촉구하는 건설노조원들이 2일 오전 용산 대통령실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시원한 폭염법 촉구’ 얼음물 붓기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
ⓒ 권우성 |
한낮을 피하는 것 같은 할머니들과 달리 부부는 요령 없이 일하는 것 같다. 그래서 그들이 흘리는 땀은 더 고단하고 짠하다. 부부의 성실한 노동의 결실은 산처럼 쌓인 파지로 돌아오겠지만 누구나 알고 있는 것처럼 작다고 하기도 민망한 수입일 것이다. 부부는 사실 온몸으로, 표정을 알 수 없는 굳은 표정으로 사람들의 시선을 단호히 거부하는 듯 보인다.
그런 이유로 섣부른 편견을 경계한다. 누가 뭐래도 그들은 성실하고 근면한 노동자다. 언젠가 보았던 기사에서처럼, 환경을 위한 '폐지 수거 어르신들의 눈부신 활약'(https://omn.kr/1ym36)으로도 생각한다.
관련 기사의 내용은 러블리페이퍼(Lovere paper)라는 폐지 재활용 업체의 미담이었고, 업체에서는 근처의 고물상보다 3배 높은 1kg당 300원에 어르신이 수거한 폐지를 매입하고 미술용 '캔버스'를 만들어 판매한다고 했다. 인상적인 기사여서 눈길이 갔고 그런 업체가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을 가졌었다.
폐지수거인 설문조사(한겨레 S 특집, 2023-01-28, 갈 곳 잃은 폐지수거 노인의 하루)에 따르면 그들의 일평균 노동시간은 평균 7.8시간이고 하루 평균 105kg(약 6,300원)을 수거한다. 일할 수 있는 것을 행복으로 여기며 소일이나 운동으로 생각하고 폐지를 수거하는 분들도 있다지만, 대부분 생계를 기대고 있고 대부분 고령의 취약계층이나 소외계층이다.
그러나 지금 당장은 노동시간이나 돈의 문제를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생계를 위해 매일 나서야 하는 그들에게 요즘의 폭염은 재앙이다. 생계형 환경 노동자로서 그들에게 최소한의 국가적 돌봄이 필요한 순간이다. 적어도 사람들의 불편한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언제든 쉴 수 있는 접근성 좋은 무더위 쉼터 같은 것이 있었으면 좋겠다.
▲ 아침부터 일부 지역에 폭염경보가 발효된 28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열린 기준중위소득 현실화 기자회견에서 참가자들이 더운 날씨에 모자를 벗거나 땀을 닦고 있다 |
ⓒ 연합뉴스 |
홀로 사시는 어르신들을 위한 무더위 쉼터가 현재 운영되고 있다고 알고 있다. 우리 지역을 검색해 보니 모두 54곳이 무더위 쉼터로 지정되어 있다. 대체로 아파트 단지의 모든 경로당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렇지만 아파트 경로당은 단지 내 깊숙한 공간에 있어 아는 사람이 아니면 찾기도 힘들뿐더러 파지를 줍는 분들이 편하게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은 아닌 것 같다.
그들이 일하는 노동 현장과의 접근성도 전혀 없다. 상가나 대로변에 접해 있어 그나마 접근성이 있는 공공도서관이나 주민지원센터, 대형 교회 건물 등이 적합해 보였지만 그것들은 무더위 쉼터와는 무관했다(물론 지역에 따라 무더위 쉼터인 곳도 있다).
'각자도생(各自圖生 제각기 살아나갈 방도를 꾀함)'의 시대라고 회자되고 있다. 정말 우리는 각자 알아서 살아내야 하는 걸까? 이러한 시대에 홈리스 월드컵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드림>의 대사가 떠오른다. '누구나 살면서 울타리 밖으로 내몰리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폭염은 폐지 수거하는 분들에게는 재난과 다름없다. 재난의 상황이 아니더라도 각자도생이라는 말은 사람들의 마음도 불안하게 하는 비상 경고 같다. 더구나 취약계층에게는 말할 것도 없을 것이다. 살아내고자 최선을 다하는 그들의 성실한 노동을 위해서라도, 그들의 소중한 울타리를 지키기 위한 방법은 정말 없는 것일까.
이태원 참사에 이어 청주 오송 지하차도 참사, 최근 세계 잼버리 대회의 엉성한 운영 문제까지, 재난의 상황은 오늘도 진행 중이다. 많은 참사를 겪으며 깨달은 한 가지는 큰 사고는 항상 작은 것에서부터 시작된다는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주변의 작은 것들에 대한 세심한 손길이 큰 사고를 막을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들의 진한 노동만큼이나 진정성 있는 대책이 마련되기를 바라는 것은 지금의 정부에게는 지나친 기대인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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