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교회 예배 때 왜 성경을 안 갖고 올까?
필자는 지난 7월 18일부터 22일까지 닷새간 미국 켄터키주 루이빌에서 열린 제124차 국제기드온협회 국제대회에 영어·한국어 동시통역사로 참여했다. 85개국 2558명이 참석한 대규모 대회에 한국 대표단 60여명이 참석했다.
국제대회 전 일정은 10개 언어(한국어, 일본어, 프랑스어, 독일어, 이탈리아어, 핀란드어, 스페인어, 포르투갈어, 러시아어, 대만 참석자를 위한 중국어)로 동시통역 됐다. 각 언어당 2명의 동시통역사가 참여해 모두 20명이 통역하는 진풍경을 볼 수 있었다.
국제기드온협회라는 단체가 생소하다면, 호텔에서, 학교에서, 병원에서, 군대에서 둥근 원안에 있는 항아리 위에 횃불 마크가 있는 작은 성경책을 무료로 받은 경험이 있다면 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필자는 닷새 동안의 국제대회 프로그램을 통해 많은 사람의 구원 간증을 통역했다. 자살 직전에 있었던 사람이 서랍 안에 발견한 성경책을 읽으며 예수님을 영접한 이야기, 마약과 범죄로 인생의 밑바닥까지 간 사람이 교도소에서 성경책을 읽고 예수님을 만나서 완전히 변화 받은 이야기, 인도 힌두교 출신의 사람이 성경을 접해 구원을 받고 가족의 여러 박해에도 불구하고 승리한 이야기 등등. 이들은 한결같이 하나님의 말씀은 생사의 갈림길에서 생명을 줬다고 증언하며 성경책을 전달해 준 것을 감사했다.
국제기드온협회 회원들이 개발도상국에서 학생들에게 성경책을 일일이 나눠줬을 때 자신만의 성경책을 갖게 됐다고 기뻐하는 모습, 그리고 그 성경책이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읽은 사람들에 대한 보고를 통역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서 운동력이 있고, 온 열방의 사람들을 구원에 이르게 하는 능력이 있음을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
대회 통역을 무사히 마치고 다시 한국에 돌아와서 예배를 드리는 데 마음이 불편하기 시작했다. 우리나라에서 성경책이 과연 귀한 대접을 받고 있는지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다. 너무 흔해져서 홀대받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하게 됐다.
현재 출석하는 교회에서 주일학교 교사로 섬기고 있어서 점점 더 많은 학생이 예배 때 강대상 벽면 화면에 띄어주는 성경 구절을 보는 편리함에 익숙해져서 성경책을 갖고 오지도 않고 찾아보지도 않는 것을 보게 된다. 하나님의 말씀이 생명의 양식, 진리의 말씀, 지혜의 근원이라고 수없이 선포하고 다음세대에 부지런히 가르치지만, 정작 우리 학생들은 성경책을 가까이하지 않는다는 인상을 받게 된다. 아니, 성경책보다 문제지와 학습지를 더욱 소중하게 여기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물론 요즘 시대에는 휴대전화로 성경 구절을 검색할 수 있고 인터넷 성경을 내려받아서 활용할 수 있으니 굳이 성경책을 갖고 다닐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문명의 이기를 부인하고 싶지 않다. 그런데, 문제는 인터넷 성경을 읽으려면 ‘와이파이’(무선 인터넷)가 돼야 한다는 것이다. 앱으로 내려받은 성경은 휴대전화 충전이 돼 있어야 읽을 수 있다는 것이다. 자유롭게 성경책을 소지하고 언제 어디서나 성경을 읽을 수 있는 복된 국가와 시대에 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성경에 대한 접근성을 인터넷과 휴대전화 여건이 좌우하도록 만드는 상황을 거리낌 없이 받아들인다. 그리고 휴대전화로 성경을 보려다가 다른 메시지를 확인하거나, 다른 정보 검색 등 산만해지는 유혹을 나이가 어릴수록 더욱 받을 것이다. 벽면에 한 구절씩 친절하게 띄어주는 성경 구절은 앞뒤 문맥을 같이 묵상하며 보기 어렵다.
디지털 시대에 웬 아날로그 같은 소리를 하느냐고 반문하는 사람들이 있을지 모르겠다. 디지털이든 아날로그이든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안에 충만하도록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하는 것일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 말씀에 대한 사랑의 증표로 교회 내 다음세대들이 성경책을 생명처럼 소중하게 갖고 다니며 해질 때까지 읽는다면, 이 나라의 미래는 참으로 밝을 것이다. 교회 주일학교 차원에서도 성경책 갖고 다니기 운동을 강화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니 우리 기성세대부터 모범을 보이면 어떨까?
우리 신앙의 선배들이 손때를 묻히면서 성경책을 읽고 페이지마다 은혜받은 구절에 감격의 흔적을 남기며 하나님의 약속을 계속 기억하고자 노력했던 그때가 오늘 왠지 그리워진다.
약력
이화여자대학교 통번역대학원 한영통역학(석사) 졸업
이화여자대학교 통역번역학 박사(논문:설교통역에 대한 조사연구)
국제회의 순차·동시 통역 다수
예배·세미나 동시통역 다수
한동대학교 통역번역대학원 주임교수 역임
정리=임보혁 기자 bosse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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