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공제 확대 놓고 '갈팡질팡' 민주당, 솔직해져라

최기원 2023. 8. 7.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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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장] 앞에서는 '부자감세', 뒤에서는 '밀실합의'... 불평등 해소 의지 과연 있었나?

[최기원 기자]

 왜 민주당은 불평등 문제를 제대로 다루지 못하는가?
ⓒ 픽사베이
 
윤석열 정부의 결혼시 증여공제 1억 원 신설에 대한 더불어민주당의 입장은 아리송하기 그지없다. 

정부의 세법개정안이 나오자마자 이재명 대표는 "전형적인 초부자감세"라며 원칙적 반대의 입장을 밝혔고 이소영 원내대변인도 "맹목적인 부의 대물림 수단"이라며 비판적인 견해를 분명히 했지만, 다른 민주당 의원들의 생각은 다른 것 같다. 

김한규 원내대변인은 이재명 대표가 발언한 다음날인 8월 1일 원내대책회의 후 "당 공식 입장이 아직 없다"고 전했다. "기획재정위원회에서는 이게(세수결손 문제) 해결되면 세법개정안에 대해 전향적으로 볼 수 있다는 입장이 좀 더 많은 것 같다"며 "정부안에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기재위 민주당 의원들은 결혼시 증여세 기본공제액을 7000만 원으로 상향하고, 출산을 하면 그 때 1억 원 추가 공제를 하면 어떻겠느냐는 아이디어를 검토한 것으로 알려졌다. 즉 출산 조건을 붙여 여당보다 더 많은 1억 7000만 원까지 증여공제액을 확대하자는 제안이다. 

민주당의 '참혹한' 불평등 해소 실적

부의 대물림을 목청 높여 비난하면서도, 상위 10%에 혜택을 집중시키는 증여공제확대를 찬성하고 한술 더 떠 액수도 늘리자는 주장으로 기울고 있는 이 상황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이런 일은 전혀 새삼스럽지 않다. 민주당에게 '부자감세 반대', '불평등 해소' 같은 말은 정치인의 수사나 공약집의 내용 채우기, 위원회 자리 만들기 용도로 활용될 뿐 현실에서 제대로 구현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아래 그림은 <세계불평등보고서 2022> 한국편에 수록된 그래프다. 빨간 선은 상위 10%, 파란 선은 하위 50%가 전체 소득에서 가져가는 비율이다. 격차가 벌어지는 양상이 뚜렷하다. 1980년 전체 소득의 33%를 점유하던 상위 10%는 2021년 46%를 가져간다. 반면 1980년 23%를 점유하던 하위 50%는 2021년 15%밖에 가져가지 못하게 됐다. 정권과 관계없이 양극화 추이는 바뀌지 않았다.
   
 1980-2021 상위 10%와 하위 50% 소득점유율 추이 <세계불평등보고서 2022>
ⓒ World Inequality Lab
 
심지어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 민주당 집권기에 이 추세는 가속화됐다. 크게 외환위기의 후폭풍과 세계화(globalization)의 대가라고 볼 수도 있겠다. 그러나 김대중·노무현 정부가 여기에 호응해 재벌대기업의 가치사슬에서의 독주를 제어하지 못하고, 금융 및 자산시장의 고삐를 풀어놓고, 노동유연화로 정규직·비정규직의 이중노동시장을 정착시킨 여파를 빼놓고 이 추세를 설명할 수는 없다.

문재인 정부는 어땠나? 역시 유의미한 변화를 만들지 못했다. 그나마 최저임금 인상으로 저소득 노동계층의 소득인상에서는 가시적 성과를 보였으나, 코로나를 기점으로 완전히 꺾였고, 평균인상률로 보면 박근혜 정부보다도 저조했다.  

국세청 통합소득 100분위 자료를 분석해 보면, 결과적으로 박근혜 정부 시기보다도 소득불평등이 소폭 심화된 것으로 나타난다. 최저임금 인상 드라이브와 고소득층과 대기업의 조세부담을 높였던 코로나 이전 실적은 그나마 박근혜 정부를 상회했으나, 코로나 시기 극심한 소득·자산 양극화가 이전의 실적을 완전히 상쇄시켰다. 민주당은 코로나 위기를 성공적으로 대처했다고 자평했지만, 소득격차의 측면에서는 대단히 불충분했고 많은 국민들에게 상흔을 남겼던 것이다. 

문재인 정부 청와대는 기재부의 반대 속에서 국민의 피해를 회복할 만한 과감한 재정지출을 끝내 결단하지 못했다. 거액의 초과세수를 만들어 차기 정부가 출범해서야 자영업자 손실보상을 가능하도록 한 실책에 대해서는 이미 '문재인 정부의 검찰총장' 윤석열이 국민의힘 후보로 대통령으로 당선됨으로써 충분히 응징당했다. 

그런데도 이재명 대표는 '저학력·저소득층에 국민의힘 지지자가 많은 안타까운 현실인데, 언론 환경 때문이다'라며 엉뚱한 곳을 지목한다. 저학력·저소득층 다수가 민주당을 찍지 않을 이유는 언론이 아니라 불평등 해소의 의지도 실력도 없는 민주당 자신에게 있는 것이다.

민주당의 '양두구육' 조세정치

왜 민주당은 불평등 문제를 제대로 다루지 못하는가? 복잡다단한 사정이 있겠지만, 내가 생각하는 대략의 배경은 이렇다. 과거에는 민주화의 유산과 지역주의에 의지해 양당제의 한 축을 지배해 왔기에 불평등 문제가 민주당 내부에서 쟁점이 될 이유가 없었다. 

2010년대 이후에는 수도권 정당화가 진행되면서 수도권, 특히 소득과 자산가치의 등락에 민감한 서울 중산층의 이해에 깊이 종속된 영향이 크다. 그랬기에 진보적 조세정책의 최대치는 적용인원이 제한적인 소득세 최고구간을 신설하고 법인세 최고세율을 상승시키는 수준에 머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종부세도 끊임없이 후퇴를 거듭해 이제는 1주택자 과세는 극히 미미해졌다. 

민주당 정치인들이 '부자감세'라는 말을 놔두고 '초부자감세'라는 말을 의식적으로 사용하는 이유다. 여론주도층인 수도권 중산층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으면서 타깃을 대기업과 고액자산가에게 한정지을 수밖에 없는 속사정과 관련이 깊다.

나는 동의하지 않지만, 불평등 문제가 중요하지 않다고 여기는 정치집단이 존재하지 않을 이유는 없다. 가장 노골적으로 이를 표현하는 정치인으로는 이준석 국민의힘 전 대표가 있고, 국민의힘 구성원 대부분은 성장을 위해서는 불평등은 기꺼이 감내해야 한다는 전제에 수긍하는 것으로 보인다. 바닥만 끌어올릴 수 있다면 불평등은 충분히 용인될 수 있다는, 롤즈를 변용한 것으로 보이는 견해도 눈에 띄는 흐름으로 나타나고 있다. 사회경제적 격차를 어쩔 수 없는 것으로 간주하는 것은 자유주의적 사고방식의 한 갈래로서 이미 전세계적으로 충분한 지분이 있는 정견이다. 그러니 불평등 해소는 우리의 우선순위가 아니라 표명하면서 대놓고 감세를 밀어붙인다면 정치철학적 논쟁의 대상일 수는 있으되 모양새가 이상하지는 않다. 

그러나 앞에서는 불평등과 맞서겠다면서 부자감세라며 윤석열정부 감세를 비난하고 뒤에서는 수십조원 규모의 소득세 감세법안을 턱턱 내놓는가 하면, 과반을 점한 원내 1당이면서도 지난해 증세법안은 단 하나도 통과시키지 못한 채 자당의 감세법안 107건을 정부여당안과 함께 통과시키는 것은 기괴하다고밖에 말할 수 없다. 삼성과 하이닉스 중심으로 5년간 13조원을 감면해줄 국가전략기술 세액공제도 한술 더 떠 업종확대까지 제안한 게 민주당이다. 그래놓고 추경호 부총리를 불러다가 부자감세 때문에 세수결손이 심각하다며 대책을 내놓으라고 호통을 친다. 

더불어민주당은 이제 선택하라

양머리를 내걸어 뭔가 해볼 것처럼 허장성세를 부리다가 결정적 순간에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슬그머니 개고기를 팔아 놓고, 개고기 파는 옆집에게는 양고기를 왜 안 파느냐고 힐난하는 정치가 바로 민주당의 조세정치다. 

결혼공제 확대를 놓고 보여주는 민주당의 갈지자 걸음으로 추정컨대 올해 윤석열 정부 세법개정안의 향배 역시 충분히 예견 가능하다. 민주당은 초부자감세 등의 수사를 동원해 격렬히 윤석열정부의 세법개정안을 비난하겠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 '소소위'와 원내대표급 밀실회담에 들어가서는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정부안에 다 합의해 줄 가능성이 크다. 한두 번의 엇갈림은 '의지의 패배'로 이해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그러한 '의지의 패배'가 여러 차례 반복된다면, 그것 자체가 민주당의 본질적 속성인 것이다. 

더불어민주당에 권한다. 부자감세에 합의해준 과거를 반성하고 감세철회 싸움에 나서거나, 아니면 불평등 해소의 지향을 포기하고 '부자감세' 비판을 그만두는 것 중에서 선택해야 한다. 적어도 국민을 속이지는 말아야 할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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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국회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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