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박영수 요청으로 최재경에게 특검 임명 부탁... 윤석열과 팀짰지" [조성식의 통찰]

조성식 2023. 8. 7. 1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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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만배 녹취록과 박영수-최재경-윤석열의 특별한 인연... 최재경 "김만배 주장, 사실과 달라"

[조성식 기자]

 대장동 민간개발업자의 청탁을 들어주는 대가로 거액을 수수한 혐의를 받는 박영수 전 특별검사가 3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기 위해 출석하고 있다.
ⓒ 유성호
박영수 전 특별검사(특검)가 구속되자 검찰 고위직을 지낸 법조인이 탄식하듯 말했다. "인생무상이여~." 특수통 대부인 박 전 특검의 몰락은 검찰 흑역사의 한 장을 기록할 만한 일대 사건이다. 그만큼 그가 법조계에 남긴 발자국이 크기 때문이다.

박 전 특검은 특유의 친화력으로 재직 중은 물론이고 퇴직 후에도 검찰 조직에 큰 영향을 끼쳤다. "영수파 두목"이라는 별명이 말해주듯 따르는 후배검사가 많았다. 이른바 '박영수 사단'에는 채동욱 전 검찰총장, 최재경 전 청와대 민정수석, 윤석열 대통령 등 당대 내로라할 만한 특수통 검사가 포진했다.

기자들과도 좋은 관계를 유지해 언론계에 남긴 흔적도 크다. 그는 기자들에게 밥 사고 술 사고 정보 주는 데 인색하지 않았다. 정치권 인맥도 화려했다. 청와대 사정비서관(김대중 정부),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장(노무현 정부) 등 요직을 지내고, 국정농단(박근혜 정부)이라는 역사적 사건의 특검을 맡게 된 데는 그런 배경이 있다.

박영수 특검의 탄생은 윤석열 대통령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 윤 대통령이 특검 수사팀장을 지냈기 때문이다. 박근혜 정부에서 국가정보원 여론조작 사건(댓글 사건)을 수사하다 좌천돼 지방 한직을 돌던 윤석열 검사에게 특검 합류는 재기의 발판이자 출세의 디딤돌이었다.

그 점에서 박 전 특검은 윤 대통령 탄생의 산파라 할 만하다. 그가 윤 대통령을 수사팀장으로 발탁하지 않았다면, 차장검사급이 문재인 정부의 첫 서울중앙지검장이라는 파격 인사의 주인공이 되는 일도 없었을 테고, 뒷날 검찰총장에 이어 대통령에 오르는 일도 없었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당시 박영수 변호사가 제1야당인 더불어민주당 추천 후보인 조승식 변호사를 제치고 특검으로 임명된 데는 박지원 국민의당 비상대책위원장의 강력한 추천이 영향을 끼쳤다는 것이 정설이다. 정치권과 청와대에서 "통제가 안 되는 인물"이라며 조 변호사를 껄끄럽게 여긴 점도 중요한 이유였다.

이와 관련해 대장동 민간사업체인 화천대유 대주주이자 머니투데이 법조팀장 출신인 김만배씨의 주장이 눈길을 끈다. 김씨는 2021년 9월 15일 신학림 전 전국언론노조 위원장과 나눈 대화에서 박 변호사가 특검으로 임명되는 데 자신의 역할이 있었다고 주장했다. 자신이 박 변호사의 요청으로 최재경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을 만나 그를 특검에 임명해달라고 부탁했다는 것이다.

김만배 "박영수 특검 임명, 최재경에게 부탁했다"
 
 2017년 3월 6일 당시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대치동 특검사무실에서 90일간의 수사결과를 발표한 후 자리를 떠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이 대화에서 김씨는 박 전 특검에게서 들은 얘기라면서 박영수-윤석열의 사전 교감설을 제기했다. 즉 박 변호사가 특검에 임명되기 전에 이미 두 사람 간 특검 참여에 대한 합의가 있었다는 것이다. 심지어 윤 검사에 대한 청와대의 우려를 의식해 박 변호사가 윤 검사로부터 자신의 지시를 잘 따르겠다는 다짐까지 받아뒀다고 주장했다.

2016년 11월 중순 국회를 통과한 특검법안은 여야 합의로 추천하는 관례와 달리 제1야당인 더불어민주당과 제2야당인 국민의당이 합의해 2명을 추천하면 대통령이 그중 한 명을 임명하도록 했다. '촛불 여론'에 눌린 새누리당이 특검 추천권을 포기했기 때문이다.

애초 정치권에서 특검 후보로 거론된 사람은 이정희 전 통합진보당 대표, 채동욱 전 검찰총장, 이석수 전 청와대 특별감찰관, 윤석열 대전고검 검사 등이었다. 하나같이 박근혜 정부에서 '수난'을 당한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이들은 정치적 부담과 결격사유 등으로 사전 검토 과정에서 자의반 타의반으로 후보군에서 탈락했다. 최종적으로 대검 중수부장 출신 박영수 변호사와 대검 형사부장을 지낸 조승식 변호사가 추천됐다. 조 변호사는 조폭들 사이에서 "해방 이후 최고 악질 검사"라는 평을 들었던 강력수사의 대부였다.

박 변호사가 특검으로 임명된 데는 정치적 역학관계가 작용했다는 분석이 유력하다. 검찰 재직 시 강골 검사로 신망이 높았던 조 변호사에 대해서는 민주당 내에서도 기대와 우려가 엇갈렸다. 정치적 색깔 없이 원칙대로 수사한다는 평이 장점이자 단점으로 작용한 셈이다. 그에 비해 박 변호사는 친화력과 유연성, 특수부 경력 등이 장점으로 꼽혔다. 김대중/노무현 정부에서 요직을 지낸 점도 민주당을 안심시켰다.

민주당은 이른 시일 내에 특검을 발족하기 위해 국민의당과 타협할 필요가 있었다. 조 변호사를 민주당 몫으로 추천하기는 했지만 그다지 적극적이지 않았던 이유다.

박지원과 박영수 두 사람은 김대중 정부 때부터 각별한 친분을 이어온 것으로 알려졌다. 뒷날 조 변호사는 내게 "언론 보도를 통해 (특검 후보 추천을) 알았을 뿐 민주당에서 어떠한 연락도 받은 바 없다"고 털어놓았다.

김만배씨의 특검 관련 주장은 주관적이고 상식적이지 않다. '대장동 녹취록'에서도 드러났듯이 김씨 특유의 허세나 허풍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가 박영수 전 특검, 최재경 전 민정수석과 가까운 사이였던 게 사실이고, 두 사람 다 이른바 '50억 클럽' 명단에 포함됐다는 점에서 진위를 가려볼 필요는 있을 듯싶다.

전국언론노조위원장을 지낸 신학림씨와 김씨는 언론계 선후배 사이다. 한때 같은 언론사에 몸담으며 가깝게 지냈던 두 사람은 그날 1시간 12분 동안 대화를 나눴다. 두 사람의 대화 내용 중 일부는 제20대 대통령선거일을 사흘 앞둔 2022년 3월 6일 <뉴스타파> 보도를 통해 공개됐다. <뉴스타파>에서 신씨를 인터뷰하면서 녹취록과 음성파일을 공개하는 형식이었다.

주된 화제는 대장동 사건이었고, <뉴스타파> 보도도 여기에 초점을 맞췄다. 특검 임명과 관련된 내용은 이번에 <오마이뉴스>에서 처음 공개하는 것이다. 다음은 녹취록에서 해당 부분만 발췌한 내용이다. 괄호 안 글은 신씨가 문맥상 의미를 감안해 보충한 것이다.

녹취록 "윤석열이 자기(박영수) 지시 잘 따르겠다고 약속을 했대"

김만배(이하 김): (박)영수 형이 왜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특검(특별검사) 됐는지 알려줄까? 아니 여기다 안 적고... 왜, 우리 고문이야. 맨날 출근해. 할 일이 없어서...
신학림(이하 신): 제주도 사람 아니야?

김: 응. 할 일이 없어서. 왜냐하면 이제 끈 떨어졌는데 영수 형을 누가 찾아가냐고, 형. 변협 회장도 떨어지고 칼도 맞았는데. 맨날 (사무실) 오는데, 하루는 "만배야, 형 특검 좀 해야 되겠다. 너 가서 (최)재경이한테 가서 얘기해 가지고 형 특검 좀 시켜줘라!"
신: 최재경(민정수석)이?
김: 응.
신: 최재경이?
김: 의형제거든 나랑.

(사적인 내용이라 중략)

김: 그런데 이제 재경이 형이랑 금방 또 통화했어.
신: 최병렬 집안 아니야?
김: 그래서 형(최재경)이 어디 있녜?(있냐고?). 그래서, 난 지금 신학림 위원장 만나려고 기다리고 있다고.
신: 금방 그랬단 말이야?
김: 아이 그럼.

(사적인 내용이라 중략)

김: 나랑은 더 되게 친해, 옛날부터. 그랬더니 응, 저 최재경한테 얘기 좀 해서...
신: 그러면 최재경이가 청와대 있을 때?
김: 청와대에 있을 때. 그래서 내가... 그런데, (박)영수 형이 이러는 거야. 내가 석열이...
신: 아이 참, 나하고도 연결될 뻔... (웃음)

김: 그런데 (박)영수 형이 이러는 거야. 내가 (윤)석열이 뎃고(데리고) 재순이랑 특검 해서... (내가) "형(박영수), 대통령(박근혜)이랑 재경이 형이 석열이 형 (특검) 한다면 좋아하냐, 안 하지? 형 끝 아니지? 나중에 공수처장이나 해! 특검 할 생각 하지 말고." (박영수가) "아니야, 나 특검한대. 명예회복을 (윤)석열이 시켜주고."
신: 특검하는 것 자체가 명예회복이 되는 거라고 생각한 거야, 박영수는.
김: 응. 그리고 (박영수가) 윤석열도 (특검팀에 소속) 시켜주겠대. 그래서 내가 "형, 석열이 형 하면 안 되지!" 그러니까 자기가 잘 통제하고 자기한테 와서 자기 지시 잘 따르겠다고 약속을 했대.

신: 윤석열이가 박영수한테?
김: 음음. 여기서...
신: 박영수는 미리 그걸 알고 (특검) 팀을 짠 거구먼!
김: 짰지! 왜냐하면 내가 대통령하고도 가깝고, 재경이 형이 거기 있다는 걸 (박영수가) 알았으니까...
신: 응.

김: 응. 그래서 "그러면 대통령은 어떻게 할 건데?" 그러니까, (박영수가) "잘 수사해서 국민들한테 잘 설득할 수 있게" 이렇게 하겠대. 그래서 (내가) 재경이 형 찾아가서 "형, 영수 형이 찾아왔는데 특검 하고 싶대. 그런데 어차피 누구 시켜야 되는데, 우리가 잘 아는 사람을 시키는 건 나쁘지 않잖아?" 그러니까 (최재경이) "박(영수) 부장님이야 그렇지 옛날에 우리가 모셨으니까!" (내가) "그런데 형, 잘 생각해! 내가 볼 때 배신할 거 같애" 이렇게 얘기를 했지.
신: 최재경이한테?
김: 응. 그래서. 특검 얘기가 없을 때야, 응. 그래서 이제 (내가 최재경한테) "이제 대통령을 설득해서 야당 안을 무조건 받자, 그래야지 공정하게 갈 수 있으니까!" 그래서 박영수가 (특검이) 된 거지!

(녹취록에 언급된 '재순이'는 노무현 정부 때 청와대 사정비서관을 지낸 이재순 변호사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박영수-최재경-윤석열의 친분
 
 2011년 10월 4일 오후 서초동 대검찰청에서 열린 국회 법사위 국정감사에서 한상대 검찰총장이 'BBK 사건' 관련 질의에 답변을 하는 가운데, 2007년 대선 당시 'BBK 사건' 수사지휘 검사였던 최재경 중앙수사부장(가운데 뒷편)이 이 장면을 지켜보고 있다.
ⓒ 권우성
 
박 전 특검과 최 전 수석, 윤 대통령의 친분은 널리 알려져 있다. 사적으로도 가깝지만, 공적인 인연도 각별하다. 2006년 현대자동차 비자금 사건을 함께 수사했던 게 대표적 사례다. 검찰에서 수사, 그것도 언론 주목을 받는 대형수사를 같이한 인연은 동지적 관계로 이어질뿐더러 향후 인사에도 영향을 끼친다.

당시 의정부지검 고양지청에 근무하던 윤석열 검사는 대검 중수부 요청으로 현대차 비자금 수사팀에 합류했다. 당시 중수부장이 박영수 검사장, 주임검사가 최재경 중수1과장이고, 수사를 조율하고 언론을 상대하는 수사기획관이 채동욱 검사였다. 수사팀은 정몽구 회장을 구속하며 언론의 화려한 조명을 받았다. 변방에 머물던 윤 검사는 이 수사가 끝난 뒤 검찰연구관에 임명돼 중앙무대인 대검으로 진출한다.

이명박 정부 출범 직전 BBK 특검팀에서 활약한 윤 검사는 이후 승승장구했다. 특수부 검사라면 누구나 한 번쯤 맡고 싶어 하는 대검 중수부 과장을 두 차례나 지냈다(2과장, 1과장). 윤 대통령이 주임검사로서 대장동 사업 비리의 씨앗이라는 부산저축은행 비리사건을 수사한 것이 이 무렵이다. 윤 검사가 중수1과장일 때 그의 직속상관인 중수부장이 최재경 검사장이었다.

부산저축은행그룹 회장의 인척인 조우형씨는 정치권 금품 로비에 관여한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게 되자 박영수 변호사를 선임했다. 이때 박 변호사를 조씨에게 소개해준 사람이 바로 검찰 출입기자이던 김만배씨다.

수사팀은 조씨를 참고인으로만 조사하고 기소하지 않았다. 그런데 조씨는 당시 남욱 변호사와 정영학 회계사가 주도한 대장동 사업 민간업체에 1155억 원의 불법 대출을 알선하고 수수료로 10억 원을 챙긴 상태였다. 수사팀은 이를 알았는지 몰랐는지, 조사도 하지 않았다.

조씨는 2015년 수원지검 수사팀에 의해 같은 혐의로 구속 기소됐고, 2년 6개월의 실형이 확정됐다. 그에 따라 2011년 중수부가 봐주기 수사를 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이에 대해 윤 대통령은 "당시 불법대출은 수사 대상이 아니었다"고 반박했다.

김만배씨는 2014년 조씨의 주선으로 대장동 사업에 뛰어들었다. 이듬해 자산관리회사인 화천대유를 설립했는데, 박 변호사를 고문으로 영입했다. 조씨는 화천대유 자회사인 천화동인 6호의 실소유주라는 의혹을 받고 있다.

2012년 7월 '특수통의 꽃'으로 불리는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장을 꿰찬 윤석열 검사는 그해 11월 '검란'에 가담하기도 했다. 당시 한상대 검찰총장과 최재경 중수부장이 중수부 폐지를 놓고 충돌하자 중수부 사수론자인 최 부장 편에 서서 총장을 물러나게 하는 데 한몫한 것이다.

2014년 인천지검장을 끝으로 검찰을 떠난 최재경 변호사가 민정수석에 임명된 것은 2016년 10월 31일. 임명장 수여식은 11월 18일이었다. 최 수석은 그로부터 나흘 뒤인 11월 22일 사표를 냈다. 하루 전인 21일 김현웅 법무부 장관이 사의를 밝힌 걸 감안하면 사실상 동반사표였다.

겉으로는 박근혜 대통령을 최순실씨의 공범으로 확정하고 피의자로 입건한 검찰(특별수사본부) 수사에 책임을 지는 모양새였으나 '검찰총장 해임' 또는 '수사지휘권 발동'을 요구한 대통령에 대한 항명이라는 관측도 있었다. 김 장관 사표는 며칠 만에 수리됐으나 최 수석은 12월 9일에야 사직할 수 있었다. 박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국회를 통과한 직후였다.

정치권에서 국정농단 특검 논의가 이뤄진 것은 최 변호사가 민정수석으로 재직할 때다. 그해 11월 17일 특검법이 국회를 통과하고 30일에 특검이 임명됐기 때문이다.

물론 청와대가 수세에 몰린 터라 국회 뜻을 존중할 수밖에 없었을 테지만, 형식적으로는 대통령의 임명권 행사가 최종 절차였던 만큼 민정수석의 판단이나 조언이 작용했을 거라는 게 상식적 판단이다. 하지만 최 수석이 사의를 표명했던 터라 특검 임명에 별 영향력을 끼치지 못했을 거라는 시각도 있다.

박 특검은 임명된 지 하루 만인 12월 1일, 윤석열 대전고검 검사를 특검 수사팀장에 임명했다. 국정원 댓글 사건 수사와 관련해 국회 국정감사장에서 '외압'을 폭로한 후 징계를 받고 좌천됐던 윤 검사가 '돌아온 장고'가 되는 순간이었다.

현재 삼성전자 법률고문인 최재경 변호사는 김만배씨의 주장에 "그 사람 얘기일 뿐"이라며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김씨와의 친분은 인정했지만, 특검 임명과 관련된 주장은 부인했다. "특검 문제는 청와대로 넘어오기 전 이미 정치권에서 결정된 거나 마찬가지였고, 당시 나는 사표를 냈기에 특검 임명에 관여할 처지가 아니었다"는 취지였다. 김씨와 그 문제로 만난 적이 있냐는 질문에는 웃으면서 "그런 기억이 없다"라고 답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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