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지 인터뷰] 미담폭격기 이재성, 독일에서 만난 무명 선수들까지 챙기는 이유

김정용 기자 2023. 8. 7.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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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성(마인츠05). 김정용 기자

[풋볼리스트=마인츠(독일)] 김정용 기자= 어느덧 이재성은 독일 해외파들의 좌장이 됐다.


이재성이 처음 독일에 발을 디뎠을 때는 구자철, 박주호 등 선배들이 있었다. 이들은 모두 국내로 복귀하거나 은퇴했다. 현재 독일에서 뛰는 선수 중에는 6년차를 맞은 31세 이재성이 경력이나 나이나 가장 많다.


이재성은 김민재, 정우영 등 대표급 후배들뿐 아니라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선수들까지 살뜰하게 챙긴다. 후배들이 어느 도시로 이동하는지, 자신이 얼마나 이동하면 밥을 사 주고 조언을 해줄 수 있는지, 심지어 아예 아마추어 리그에 있는 선수들까지도 신경 쓰고 있다.


지난 7월 말 독일 마인츠의 메바 아레나에서 이재성을 만나 왜 그렇게 친절하게 사는지 물었다. 메바 아레나는 유서깊은 도시 마인츠 시내가 아니라 서쪽으로 조금 떨어진 밀밭 한가운데에 있었다. 추수가 끝난 밀밭의 누런 모습은 한국 농촌의 논과 다를 바 없는 풍경이었다. 이재성은 "이 경기장까지 오는 분들은 그야말로 축구를 보기 위해 이동하시는 거다. 그들 사이로 구단 버스를 타고 지나갈 때 더 응원받는 기분이 든다"며 자신과 잘 맞는 경기장이라고 말했다.


▲ 독일파의 좌장 이재성입니다


한국 선수와 가장 친숙한 리그는 예나 지금이나 독일 분데스리가다. 이재성은 독일파 선배로서 책임감을 느낀다고 했다. 좋은 경기력과 태도를 보여 후배들의 길을 열어줘야 하고, 서로 선수생활을 도울 수 있는 네트워크도 유지하고 싶다. 바이에른뮌헨 이현주가 마인츠 근처 비스바덴으로 임대 오자 곧바로 연락해 밥을 한 번 먹기로 했다. 이재성은 김민재(바이에른뮌헨), 정우영(슈투트가르트), 이현주뿐 아니라 최경록 등의 이름까지 줄줄 뀄다. 그러면서 더 챙겨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말했다.


심지어 무명 선수들까지도 이재성은 마음이 쓰인다. "제가 홀슈타인킬에, 박이영 선수가 장크트파울리에 있을 때인데요. 함부르크 인근에 4~6부 소속으로서 꿈을 위해 도전하는 친구들이 있거든요. 이영이를 통해 그런 선수들과 밥을 한번 먹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가 있었고 저도 그러고 싶던 차였어요. 그래서 6~8명 정도와 식사자리를 가졌죠. 제가 밥 사주는 것밖에 없었는데 다들 너무 고마워해서 제가 오히려 고마웠던 것 같아요. 사실 독일 다른 지역에도 꿈을 위해 도전하고 있는 선수들이 더 있거든요. 도움이 되고 싶은데 아직 구체적인 방법을 찾지 못했어요."


왜 남들 챙기는 데 시간과 정성을 들이냐고 묻자, 이재성은 "저도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받아요. 그걸 또 다른 사람들에게 주는 것뿐이지. 모든 사람이 도움을 주기도 하고 받기도 하는 존재가 아닐까요"라는 가치관을 밝혔다.


▲ 민재야, 우리가 이길 수도 있단다


서로 챙겨줄 수 있는 거리에 있다는 건, 리그에서 맞대결을 벌일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 점에서 이재성은 독일 최강팀 바이에른 상대로 나름의 자신감을 가질 만하다. 2부 홀슈타인킬에 소속돼 있을 때도 DFB포칼에서 바이에른을 만나 승부차기 끝에 꺾은 경험이 있다. 또한 가장 최근 만난 2022-2023시즌 후반기 대결 역시 마인츠가 바이에른에 승리했다.


"바이에른은 다른 팀들과 아예 다르죠. 경기 외적으로 보면 티켓값도 다르고요. 아무래도 수비적으로 경기해야 해요. 하지만 저희는 역습이 장점이라서 오히려 재미있는 게임이 되곤 하는 것 같아요. 대량실점할 때도 있었지만, 그렇지 않고 버티면 좋은 찬스들이 오더라고요. 저도 전북에 있어 봤으니까 바이에른같은 절대강자의 입장을 잘 알거든요. 모든 경기를 공격적으로 하고, 조급해질 수밖에 없어요. 그때 생긴 공간이 저희에겐 기회가 되죠."


김민재와 맞대결은 처음이기도 하다. 둘은 전북현대가 배출한 두 빅 리거다. 특히 2017년에는 이재성이 K리그 MVP, 김민재가 신인상을 수상하면서 나란히 앉아 기자회견을 했다. 대표팀에서도 물론 함께 뛰었기 때문에 적으로만난 적은 없다. 이재성은 색다른 경험이 될 것 같다고 했다. 뛰어난 위치선정 능력으로 장신 센터백을 따돌리고 헤딩골을 넣을 수 있는 자신의 특기가 김민재 앞에서도 발휘될 지 궁금하다.


이재성(마인츠05). 게티이미지코리아
이재성(마인츠05). 게티이미지코리아

▲ 발목은 지금도 온전치 않다… 하지만 감각은 날카롭다


이재성은 지난 시즌 내내 발목이 성치 않았다. 2022 카타르 월드컵도 발목 때문에 아예 불참할 수 있다는 불안감이 있었다. 그러나 결국 통증을 달고 뛰면서도 16강 주역으로 활약했다. 분데스리가에서는 가급적 자주 교체되며 팀의 배려를 받았고, 프로 데뷔 후 처음으로 전경기 출장에 성공했다. 공격 포인트는 7골 4도움으로 미드필더임을 감안하면 탁월한 수준이었다. 인터뷰 이후 새 시즌을 준비하는 친선경기에서도 골과 도움이 이어졌다.


"무조건 수술이 아니라서 관리해 가며 뛰고 있어요. 발목 상태에는 계속 업다운이 있는 것 같아요. 좋을 때도, 안 좋을 때도 있죠. 시즌을 앞두고 관리는 받고 있지만 아마 시즌 중에도 문제가 있을 수 있어요. 언젠가는 수술 날짜를 잡아야 할 거라는 마음의 준비를 했어요. 시기를 잘 정해야죠."


리그에 대한 적응은 잘 되어 있고, 경기 감각도 날카롭다. 이재성의 표현대로 몸 상태에는 '업다운'이 있는데 '업'이었던 올해 2월에는 경력을 통틀어 가장 컨디션이 좋았다. 실력에 더해 골운까지 따랐다. 공격 포인트를 몰아치며 행복하게 축구할 수 있었다.


"유럽 생활에서 얻은 점이라면, 아무래도 분데스리가에 적응한 것 같아요. 피지컬, 스피드, 템포에 적응했어요. 2부 킬을 떠나 마인츠에 처음 왔을 때는 많이 힘들었어요. 피지컬적으로 상당히 준비되어 있어야 하는 팀이고 훈련도 혹독하거든요. 그래서 3개월 정도는 교체로만 조금씩 뛰었죠. 시간이 지나면서 적응했고, 이제 즐길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따로 근육을 붙이려는 운동은 안 했는데 팀 훈련 강도를 2년 따라가다보니 자연스레 힘도 세진 것 같고."


영리하게 많이 뛰는 이재성은 보 스벤손 감독이 요구하는 조직적인 축구에 더없이 필요한 선수다. 최근 이재성은 마인츠와 재계약을 맺고 2026년까지 머무르기로 했다. 스벤손 감독은 재계약이 언제 마무리되는지 궁금해 하다가, 체결 소식을 듣자 별말 없이 팔뚝과 하트 모양 이모지(감정을 표현하는 간단한 그림이나 기호)를 보냈다.


▲ 남은 목표는 아시안컵


대표팀에 대해 이야기할 때 목표로 제시된 건 아시안컵이었다. 월드컵 16강 진출은 경험했다. 반면 아시안컵 우승은 이재성뿐 아니라 수십년 동안 한국 선수가 경험하지 못한 영광이다. 내년 1월 카타르에서 열리는 다음 아시안컵이 이재성의 목표다.


"대표팀만 생각한다면 아시안컵이 제일 큰 목표죠. 트로피를 얻을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기대가 되고, 잘 준비해보고 싶어요. 축구팬들의 기대를 받는다는 건 좋은 일 같아요. 때론 부담과 압박이 될 수도 있지만, 기대 덕분에 월드컵에서 좋은 성적을 냈다고 생각하거든요. 아시안컵도 기대와 사랑을 받으면 정말 그 기대에 충족할 수 있는 성적을 거둘 수 있지 않을까요? 제 기대도 상당히 큽니다."


사진= 풋볼리스트, 게티이미지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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