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귀’ 오정세, 잊히는 배우를 꿈꾸며 [쿠키인터뷰]

김예슬 2023. 8. 7. 1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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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오정세. 프레인TPC

배우 오정세는 SBS ‘악귀’를 물음표로 기억한다. 그가 극 중 맡은 염해상이 미지의 존재였어서다. 악귀를 없애기 위해 나아가는 여정 속에서 해상은 많은 걸 신경 쓰고,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그는 짊어지고 있는 마음의 짐이 많다. 누군가를 잊지 않으려 애쓰는 해상을 떠올릴 때면 경건함마저 느낄 정도였다. 지난 4일 서울 삼성동 프레인TPC 사옥에서 만난 오정세는 ‘악귀’를 “물음표를 느낌표로 바꾸던 나날”이라고 표현했다.

어려움이 컸다. 해상이 쓰는 말투부터 익숙하지 않았다. 편한 대로 바꿔 말해도 된다는 김은희 작가의 배려에도 오정세는 그럴 수 없었다. “어떻게 할지 고민하다 현장에 가면 저도 모르게 작가님이 써주신 말투로 말하고 있더라고요. ‘김은희에게 졌다’고 생각하며 임했어요. 하하.” 해상의 말투가 편하다고 느낄 때쯤 그는 비로소 확신을 얻었다. “해상이 악귀를 추적하며 막막함을 느꼈듯이, 저 또한 해상을 표현하는 게 마냥 막막하고 불안했어요. 해상과 마찬가지로 막막했던 거죠. 공통점을 찾으니 조금씩 닮아갈 수 있었어요.” 

귀신을 볼 수 있고 혼자만의 세계에 빠진 이 민속학 교수는 악귀에 씐 산영(김태리)을 만나고 근원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오정세는 해상을 연기하며 누군가를 구하러 가는 발걸음에 대해 생각하곤 했다. 사건을 마무리한 뒤 절을 찾아 넋을 기리는 해상의 모습은 그의 마음에 울림을 남겼다. 음악으로 캐릭터를 들여다보는 오정세에게 열쇳말이 된 노래도 있다. 허회경의 ‘그렇게 살아가는 것’과 김일두의 ‘나는 나를’을 들으며 해상을 이해했다. “난 나를 왜 아프게 했을까, 아끼고 사랑해야 하지 않았을까…. 해상의 마음이 이랬을 거라 생각해요. 청춘을 넘어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이에게 들려주고 싶은 노래예요.” 친구가 겪은 일화와 김태리의 말 역시 해상을 이해하게 하는 단서였다.

“가장 친한 친구가 이런 이야기를 해줬어요. 어떤 절을 찾았더니 사람들이 남긴 소원 쪽지들이 벽에 걸려 있더래요. 그런데 한쪽 구석에 어린아이 글씨로 ‘여기 적힌 모든 사람의 소원이 이뤄지면 좋겠어요’라고 적혀있었대요. 해상이도 이런 마음이었겠구나 싶었죠. (김)태리가 듣더니 이러더라고요. 해상이도 성장한 거라고요. 억울하게 죽은 사람들의 과거를 추모하던 해상이가 악귀를 쫓다가 산영을 만나고, 이제는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로할 수 있게 변했다고요. ‘이거구나’ 싶었어요. 그 뒤부터는 연기하기가 훨씬 수월했어요.”

‘악귀’에서 염해상 역을 연기한 배우 오정세 모습. 프레인TPC, SBS ‘악귀’ 

어려운 캐릭터여도 도전할 수밖에 없던 건 좋은 사람들이 함께였기 때문이다. “내 실력이 부족할지라도 함께한다는 설렘이 있어서” 오정세는 ‘악귀’의 세계에 기꺼이 뛰어들 수 있었다. 언제나 그를 작품으로 인도하는 건 이야기와 사람이다. 그 안에서 인물을 맛깔나게 표현하는 건 그의 몫이다. 오정세는 “예전에도 존재감 있게 연기했지만 존재감이 없었다”면서 “어느 순간부터 저를 좋게 봐주신 덕에 존재감이 생겼다”며 웃었다. 그를 연기하게 만드는 건 좋아하는 마음 덕이다. 지금껏 버티게 한 원동력은 영화 ‘남자사용설명서’(감독 이원석)다. “물음표를 느낌표로 바꾼 최초의 경험”이어서다.

“지금까지 한 작품 중 가장 큰 부담을 느꼈던 게 ‘남자사용설명서’예요. 조연만 하던 제가 한 여성의 짝사랑 상대인 톱스타 역할을 잘 해낼 수 있을지 물음표가 따라붙었어요. 하지만 감독님은 저를 선택했죠. 힘들어도 의미 있던 영화예요. 덕분에 지금껏 중심을 잡고 있거든요. 의문을 확신으로 만든 그때 그 경험이 지금의 저를 만들었어요. 쉽지 않아 보이던 해상을 기꺼이 도전할 수 있던 것도 이 작품 덕분이에요. ‘남자사용설명서’의 승재도 해냈는데 해상이도 잘 해낼 수 있겠지 생각했어요. 저는 연기를 정말 좋아해서 좌절도 하지 않아요. 기복이 없는 편이고, 없으려 해요. 이 모든 마음의 시작점이 ‘남자사용설명서’입니다.”

안하무인 톱스타(‘남자사용설명서’ 승재)부터 야망 가득한 원수 남편(KBS2 ‘동백꽃 필 무렵’ 노규태), 주인공을 곤경에 빠뜨리는 상사(SBS ‘스토브리그’ 권경민), 어딘지 허술한 조직 보스(‘극한직업’ 테드창), 자폐 스펙트럼을 앓는 형(tvN ‘사이코지만 괜찮아’ 문상태)… 오정세는 여러 모습으로 대중에 기억되고 사랑받는다. 그런 그는 잊히는 배우이길 꿈꾼다. 오정세는 “어느 캐릭터로 사랑받더라도 다음 작품에선 새 인물로서 보이고 싶다”면서 “이제는 테드창이나 염해상 같은 친구들이 잊히길 바란다”며 미소지었다.

김예슬 기자 yeye@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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