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속행정'에 또 무시당한 K리그…들끓는 축구 팬들의 분노
김명석 2023. 8. 7. 18:31
“축구팬들을 이렇게 무시해도 되는 겁니까?”
전라북도청 도민소통 게시판에 올라온 한 누리꾼의 불만이다. 2023 새만금 세계스카우트잼버리 K팝 콘서트 개최 장소가 전주월드컵경기장으로 결정되면서 그 피해가 고스란히 전북 현대와 K리그로 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관련 소식이 알려진 뒤 게시판엔 졸속행정 등을 비판하는 글이 100개 넘게 쏟아지고 있다.
팬들의 분노는 박보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잼버리 K팝 콘서트를 오는 11일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열기로 했다”고 6일 발표하면서 시작됐다. 당초 K팝 콘서트는 이날 새만금 잼버리 현장에서 열릴 예정이었다. 이어 7일에는 K팝 콘서트가 서울 상암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리는 방안도 검토 중이라는 소식도 전해졌다.
문제는 콘서트 전·후로 전북 홈경기가 두 차례나 예정돼 있었다는 점이다. 전북은 9일 인천과 FA컵 8강전, 12일엔 수원과 K리그 경기를 각각 치를 예정이었다. 그러나 콘서트 일정이 중간에 끼면서 홈 2경기 모두 치를 수 없게 됐다. 무대 등 시설물 설치·해체나 잔디 상태 등으로 인해 정상적인 경기 운영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9일 예정됐던 전북-인천의 FA컵 4강전은 결국 연기됐다. 대한축구협회(KFA)는 “정상적인 운영이 불가하다고 판단했다”며 공문을 통해 연기를 결정했다. 12일 전북-수원전 개최 여부는 미정이다. 전북 선수단과 팬들은 물론 인천·수원 등 원정을 준비 중이던 모든 구단이 피해를 볼 수밖에 없다. '잼버리 불똥'이 난데없이 K리그에까지 튄 셈이다.
관련 절차도 도마 위에 올랐다. 앞서 잼버리 주최 측은 콘서트 일정 발표 전날인 지난 5일 허병길 전북 대표이사를 통해 콘서트 개최 가능 여부를 물었고, 허 대표도 협조하겠다는 취지로 답변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사실상 통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국가적인 차원에서 긴급한 상황이라, 허 대표도 무조건 안 된다고 할 수는 없었을 것”이라는 게 관계자 설명이다. 김관영 전북도지사가 전날 “전북 구단이 K팝 콘서트를 위해 협조해 줘 매우 감사하다”고 밝혔던 배경도 것도 같은 맥락으로 풀이된다.
결국 주최 측은 K리그 구단과 팬들의 피해가 불가피한 상황을 알고도 전주월드컵경기장을 콘서트 장소 후보로 선정하고 접촉한 셈이다. 그 자체만으로도 K리그과 팬들을 완전히 무시한 처사라는 비판이 나온다. 전북 구단의 ‘협조’를 내세워 발표한 김관영 도지사를 향해 전북 팬들은 ‘관영씨! 협조? ‘협’박으로 ‘조’짐?’, ‘잼버리도 망치고 전북도 망치고’ 등 걸개를 통해 비판 목소리를 냈다.
설상가상 팬들의 분노에 기름을 붓는 일들도 이어졌다. 전북 남원·임실·순창이 지역구인 이용호 국민의힘 의원은 소셜미디어(SNS)에 “잼버리 성공을 위해 온 국민이 나서서 혼신의 힘을 다하고 있는 상황이다. 일부 축구팬들이 거부 반응을 보였다는 소식에 전북 정치인으로서 부끄럽고 실망스럽다. 전북 팬들이 보여준 태도와 반응은 더욱 납득하기 어렵다. 전북인으로서 그저 참담할 뿐”이라고 적었다가 거센 비난 여론에 결국 게시글을 삭제했다. 정작 모든 사태의 원인이 된 잼버리 콘서트는 돌연 전주가 아닌 서울 개최 가능성이 대두됐다. 축구 팬들의 분노가 들끓을 수밖에 없다.
K리그 구단이 황당한 이유로 안방을 빼앗긴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최근엔 부산 아이파크가 부산 엑스포 유치 기원의 의미를 담은 친선경기에서 부산시로부터 철저하게 ‘패싱’을 당했다. 파리 생제르맹(PSG)과 엑스포 유치를 지원하는 현대자동차그룹이 모기업인 둔 전북 간 친선경기가 부산에서 열린 것이다. 부산 엑스포 유치 기원 경기에 정작 부산 구단과 팬들은 외면받고, PSG와 전북이 친선경기를 치르는 촌극이 발생했다. 뿐만 아니라 부산은 이미 수차례 콘서트나 A매치 등을 이유로 홈구장을 내줘야 했다.
여기에 이번 잼버리 사태로 K리그를 무시하는 처사가 또 반복되니, 축구계 한숨도 깊어지고 있다. 축구계 한 관계자는 “K리그와 축구 팬들을 무시하는 처사가 이어지고 있다. K리그를 존중하는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다. 안타까운 마음뿐”이라고 전했다.
김명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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