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한국전쟁 거쳐 탐정·로맨스물로...디아스포라 문학의 진화

홍지유 2023. 8. 7. 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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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친코』, 『영원한 이방인』, 『내가 사랑했던 모든 남자들에게』…

모두 한국계 미국인 작가의 손에서 태어난 소설들이다. 영어로 미국에서 먼저 출판돼 인기를 끈 뒤 한국으로 역수입돼 일부는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이민진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드라마 '파친코' 포스터 [사진 애플TV+]

이주자의 삶을 그린 디아스포라 문학이 진화하고 있다. 디아스포라 문학은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 등 한국의 특수한 역사를 담은 '민족 소설'로 시작해 탐정 소설과 10대 로맨스물, 성소수자가 등장하는 역사 판타지등으로 다양해지고 있다. 한인 디아스포라 문학의 어제와 오늘은 어떤 모습일까.

1세대 한인 디아스포라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로는 『순교자』를 쓴 김은국과 『동양인 서양에 가다』의 저자 강용흘이 꼽힌다. 『순교자』는 한국계 작가 최초로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됐던 김은국을 대표하는 작품이다. 한국전쟁 중의 평양을 배경으로 이념의 대립과 목사들의 순교를 다룬 영문 장편이다. 자전적 색채가 강한『동양인 서양에 가다』는 미국 사회에서 이민자가 겪는 인종차별,『초당』은 3·1 운동 시기 한국의 사회상을 담았다. 정은경 중앙대 문예창작과 교수는 "재미 1세대 작가들의 작품은 한국 전쟁, 일제 강점기 등 한민족의 특수한 상황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것이 많다"고 설명했다.

소설『파친코』의 이민진 작가가 지난해 8월 서울 광진구 세종대학교에서 독자들과 북토크 행사를 하고 있다. [사진 인플루엔셜]

한국계 미국인 작가들이 본격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이민 2세대가 본격적으로 작품을 내놓기 시작한 1990년대부터다. 이창래는 1995년 데뷔작인 동시에 출세작인 『영원한 이방인』을 통해 헤밍웨이 재단상과 펜 문학상을 받았다.『영원한 이방인』은 사설 탐정인 헨리 박이 같은 한국계 거물 정치인의 파멸을 목격하며 느끼는 정체성 혼란을 다룬 작품이다. 영어를 모국어처럼 사용하면서도 미국인이 될 수 없었던 작가 자신의 경험을 대중적인 탐정 소설 형태로 풀어내 평단과 독자로부터 두루 호평을 받았다.

이창래 장편 『영원한 이방인』. 이민자의 정체성 혼란을 탐정 소설이라는 형식으로 풀어낸 작품이다. 사진 교보문고


홍용희 경희사이버대 미디어문예창작과 교수는 "미국에서 태어나거나 아주 어렸을 때 미국으로 건너가 영어를 모국어로 받아들인 이민 2세대 작가들이 활동하기 시작하면서 이중 정체성을 다룬 작품이 많아졌다" 며 "성인이 된 이후 이민을 가 육체 노동에 종사했던 이민 1세대와 달리 어린 나이에 미국에 갔거나 아예 미국에서 태어나 좋은 교육을 받고 지식인이 된 2세대가 등단하며 작품의 성격도 달라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창래는 예일대를 졸업하고 프린스턴대 문예창작과 교수가 됐다.『파친코』의 이민진은 조지타운대 로스쿨을 나온 변호사 출신이다.

이민 2세대 한국계 미국인 작가들은 주로 이중 정체성과 관련한 고민을 작품에 녹여냈다. 이민진의 초기작『백만장자를 위한 공짜 음식』은 이민 2세대 젊은이들의 성공과 실패에 관한 이야기. 세탁소를 운영하며 자식에게 '올인'한 1세대 부모 밑에서 좋은 교육을 받으며 컸지만 피부색이라는 벽에 부딪혀 한국에도, 미국에도 속하지 못하는 삶을 살아가는 케이시가 주인공이다.『파친코』에도 아이비리그 졸업 후 뉴욕 금융계에 진출하지만 유리 천장에 가로 막혀 방황하는 솔로몬이 나온다.

소설 '파친코' 새 번역본 1권 표지. 사진 인플루엔셜


이민진의 대표작인『파친코』는 일제 강점기 부산 영도에서부터 일본으로 건너간 한인들의 강인한 삶을 그렸다. "역사는 우리를 저버렸지만, 상관없다"(History has failed us, but no matter)는 유명한 첫 문장으로 시작하는 이 소설은 그가 일본 지사에 발령받은 남편을 따라 4년 간 도쿄에서 살면서 자료 조사를 해가며 쓴 '취재 혼'이 녹아있다.

한국계 미국인 작가 제니한이 쓴 10대 로맨스 소설 『내가 사랑했던 모든 남자들에게』 는 넷플릭스 시리즈로 만들어져 많은 사랑을 받았다. 사진 넷플릭스


60년대생이 대부분인 이민 2세대 작가들이 기성세대가 되고, 'MZ' 작가들이 데뷔하면서 디아스포라 문학도 새로운 형식과 내용으로 진화하고 있다. 정은경 교수는 "과거에 비하면 역사의 무게를 덜어낸 작품이 많이 나오는 추세"라며 "한국계 작가가 쓴 하이틴 로맨스 등 장르물도 인기"라고 했다. 장은수 출판평론가는 "미국 사회에 편입하기 위해 발버둥치는 서사보다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받아들이면서 미국인으로 사는 법을 세련된 작법으로 풀어낸 작품들이 많아졌다"고 했다.

지난해 타임지 선정 '올해의 책'으로 꼽힌 한국계 미국인 작가 한요셉의 소설 『핵가족』은 실향민으로 북에 돌아가지 못한 채 사망한 혼령 백태우가 우연히 자신의 손자 제이컵을 마주치고, 손자의 몸에 들어가 월북을 시도한다는 발상에서 시작한다. 실향민, 한국전쟁 같은 역사적인 주제에 판타지 문학의 요소를 더했고, 손자 제이컵을 성소수자로 그렸다.

넷플릭스 시리즈 '내가 사랑했던 모든 남자들에게'의 한 장면. 한국계 미국인 소설가 제니 한의 동명 소설이 원작이다. 미국 하이틴 시리즈의 여주인공으로 동양인이 나와 이목을 끌었다. 사진 넷플릭스

프란시스 차의 『너의 얼굴을 갖고 싶어』는 한국의 룸살롱 문화와 성형 수술에 대한 이야기다. 제니 한의 10대 로맨스물 『내가 사랑했던 모든 남자들에게』는 넷플릭스 시리즈로 만들어져 큰 인기를 끌었다. 장은수 평론가는 한인 디아스포라 문학의 전망에 대해 "소수자 정체성이라는 큰 틀은 유지되겠지만 장르나 소재는 무궁무진하게 변화할 수 있다"며 "소수자의 서러움을 강조하는 평면적인 이야기보다 주체적으로 삶을 이끌어나가는 서사가 인기를 끌 것"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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