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 위 단상, 나이드는 청춘이 믿을 것은 근육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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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희종 기자]
새벽 동이 틀 무렵, 빛이 찾아왔음을 이웃집 수탉은 용케도 알려준다. 한 마리가 울어주면 이웃 닭도 울어주고, 품앗이하듯 동네 지킴이가 끼어들면 서서히 골짜기는 꿈틀대기 시작한다. 얼른 옷을 챙겨 입고 아래층으로 내려선다. 여름날 푸름을 보기 위해 자전거를 타기 위함인데, 아내가 깨지 않도록 조용히 냉장고 문을 연다. 성대한 아침 식사는 물 한 병과 빵 한 조각 그리고 과일 한 덩이면 충분하다.
▲ 안개가 내려온 골짜기 새벽에 만난 골짜기 모습이다. 안개가 하얗게 내려왔고 시원한 바람이 찾아오는 골짜기는 벌써 하루가 시작되었다. 산식구들은 마실을 나왔고, 동네 사람들은 일터로 나서는 아침이 조용히 찾아 온 것이다. |
ⓒ 박희종 |
아침에 만난 풍경
서서히 큰길을 벗어나 논길로 접어들었다. 여름이 점점 깊어지는 논자락엔 벼가 가득하지만, 장마가 휩쓸고 간 자리는 처참했다. 제방이 무너졌고 인간의 손길이 간 산은 처절하게 무너졌다. 벌목으로 휑한 자리엔 곳곳에 산사태가 났고, 산을 두 동강 내며 만든 도로도 여지없다. 자연의 순리를 어기고는 살아날 수 없음을 곳곳에서 알려준다. 곳곳에 자리한 태양광은 어떤 모습으로 우리를 기다릴까? 푸르른 산을 허물고 철판을 깔았으며, 멀쩡하던 논밭에도 철판은 들어섰다. 푸르름이 자리한 곳곳에는 저마다의 모습으로 여름이 자리했다.
안장에 올라 바라보는 여름날의 푸르름은 대단하다. 초록을 품고 깊어가는 골짜기 풍경은 어디서도 만날 수 없는 그림이다. 어느 화가가 이런 모습을 담아낼 수 있을까? 멀리엔 하얀 안개가 있고, 곳곳엔 거미가 설치한 예술품에 맑은 이슬이 반짝인다. 떨어질 듯 매달린 물방울이 망설이는 사이, 작은 도랑을 따라 달려가는 시골길은 다정스럽다. 도랑가엔 고마니풀이 분홍빛 꽃을 피웠고, 잔잔한 달개비도 보랏빛 꽃으로 화답했다. 장마가 지난 냇가 언덕에도 푸름은 가득하다.
시원한 시냇물이 흘러가는 곳, 지금껏 만나지 못했던 검은 새가 앉아있다. 대여섯 마리가 되는 가마우지가 앉아 있는 것이다. 고기가 많은 곳에 내려오는 가마우지, 근처 카페 사장님은 자주 보는 풍경이란다. 처음엔 한 두 마리였는데 가끔은 대여섯 마리가 찾아온단다. 언젠가 중국에서 만났던 풍경이 생각난다. 가마우지를 이용해 고기를 잡던 풍경이다. 가마우지가 물어오는 고기를 빼앗는 어부, 조금은 불편한 모습이었다. 고기를 빼앗길 일이 없는 가마우지가 다행스럽다는 생각을 하며 단골 커피점으로 들어섰다.
▲ 여름을 축복하는 결실 곳곳엔 고추가 붉게 물들어가고 있다. 농부들의 주요 작물중에 하나인 고추, 학자금을 마련하고 가용돈을 준비하기 위한 농부의 땀이 서린 결실이다. 비탈밭에서 익어가는 붉은 고추가 계절을 축복하고 있다. |
ⓒ 박희종 |
운동 후에 마시는 아이스커피 맛은 찰지다. 운동 후 매번 커피집으로 가는 이유다. 사는 곳이 시골이다 보니 커피숍이 드물 것 같은데 전혀 그렇지 않다. 자그마한 동네엔 새마을 커피가 있는가 했는데, 어느 순간에 커피집이 생기기 시작했다. 곳곳에 커피전문점이 들어서 있고, 새로운 건물이 들어서면 어김없이 커피점이 자리를 잡는다. 얼른 커피 한잔을 물병에 담아 들고 자전거에 올랐다. 아침 성찬에서 즐겨보려는 심산이다. 자전거에 힘을 실어 힘껏 달려보지만 언덕을 오르내린 근육이 힘겨워한다.
고단하지만 아름다운 자연을 만날 수 있음도 근육이 남아 있어서다. 늙어가는 청춘이 믿을 수 있는 것은 오로지 근육뿐임을 나는 벌써 안다. 먼 길을 돌고 돌아 푸름 속 동네 가장자리에 자리한 한적한 정자를 찾았다. 웬만한 동네엔 안락한 정자가 마련되어 있다. 동네 한가운데도 있고, 들판에도 정자 겸 쉼터가 마련되어 있음은 살기 좋은 세월임을 알려준다. 정자엔 동네 할머니들이 마실 삼아 오시기도 한다.
▲ 가을로 가는 길목 계절은 서서히 깊어가는 여름이다. 곳곳엔 여름이 열게 해준 과일들이 익어가고 있다. 텃밭엔 여름이 주는 토마토가 붉게 익어가고 있고, 계절은 저마다의 일을 말없이 해내고 있다. |
ⓒ 박희종 |
간신히 유모차를 끌고 오신 할머니는 더워서 아무것도 할 수 없단다. 더위에는 쉬어야 한다는 말에 얼른 수긍하면서도 더위가 힘들단다. 어째 이리 더위가 힘이 드느냐는 푸념이시다. 오래전 어머님이 생각나는 더위다. 더위가 힘이 들고 밥을 먹기에도 힘이 든다 하셨다.
이해할 수 없는 어머님의 말씀을 한참이 지난 지금에야 알게 된다. 그늘에서 쉬고, 찬물로 씻어내면 더위가 물러가는 세월이 아니었다. 그런 더위가 아니었고, 세월의 더위였으니 철부지 아들이 알리가 없었으리라. 할머니에게 인사를 하자 또 오라는 말씀에 외로움은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이 드는 건 왜일까?
몸과 마음이 바쁘다
▲ 근육의 힘 늙어가는 청춘이 믿을 수 있는 것은 근육의 힘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살아 있으면 해야하는 것이 운동인 이유이다. 밥을 먹는 것과 같이 해야하는 것이 운동인 것은, 버티어 주는 게 근육이기 때문이다. |
ⓒ 박희종 |
봄이면 논자락에 물을 주고, 일 년 내내 곡식을 익혀주었다. 민물조개를 줍는다는 중년부부 손놀림이 바쁘다. 가끔은 다슬기를 줍던 곳에 민물조개가 살고 있나 보다.
서둘러 자전거 페달을 밟으며 언덕을 오르는 길이 힘에 겹다. 부지런히 두발을 오르내리며 연습을 해야 한다. 자전거도 멀리하면 남은 근육마저 소진될 테니 이런 호사를 누릴 수 없을 것 같아서다. 긴 언덕을 오르려면 남은 힘까지 쏟아내야 한다. 엊그제 오르던 긴 언덕이 날로 힘겨워함은 노쇠한 근육의 탓인가 보다.
남은 근육을 소진하며 오르는 언덕길에 늙어가는 청춘의 마음마저 바쁘다. 남은 근육을 달래며 힘을 모아야 하고, 노쇠한 근육도 새 근육으로 채워야 한다는 생각에서다.
아직은 버틸만 하지만, 과거 포항에서 통일전망대까지 주파하던 근육을 다시 소환할 수 없다. 두물머리를 오르내리던 근육을 그저 추억만 할 수는 없다. 쉼이 없는 나만의 방법으로 남은 근육을 끌어모아 푸름 속에 젊음을 찾아가야 한다. 늙어가는 청춘이 믿을 수 있는 것이라곤 근육의 힘뿐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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