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칩 경쟁 참여 않겠다" 선언한 영국...틈새 집중해 제2 ARM 만든다
“영국은 웨일즈에 대만을 재창조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칩 제조 경쟁에 참여하지 않는다.”
영국 정부의 디지털 경제 전략을 이끄는 폴 스컬리 기술·디지털 경제 장관은 7일 파이낸셜타임즈(FT)와의 인터뷰에서 “아시아·미국·유럽에서 벌어지고 있는 국가 주도 투자로 첨단 칩 제조시설을 건설하는 경쟁에 영국은 참여하지 않을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스컬리 장관은 영국의 국가 반도체 전략을 감독하는 반도체 자문단의 공동의장을 맡은 인물이다.
스컬리 장관은 “우리가 가진 것을 활용하려면 반도체 고급 패키징과 설계 디자인에 집중하는 게 필요하다”라며 “영국은 제조 경쟁이 아니라 글로벌 칩 공급망에서의 필수 부분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반도체 수요 증가로 인해서 우리가 이 문제를 제대로 해결한다면 영국이 가질 기회는 엄청날 것”이라고 말했다.
미·중 패권전쟁의 영향으로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이 재구성되면서 미국, EU(유럽연합), 아시아 국가들은 자국에 반도체 제조 시설을 설립하기 위한 투자 보조금 계획을 잇달아 발표했다. 미국은 칩스법을 발효해 반도체 제조 공장을 건설하는 기업들에 총 520억 달러(약 67조7900억원)의 보조금을 제공하고 세제 혜택을 준다. EU의 반도체법 역시 EU 권역 내에 반도체 제조 공장을 짓는 기업에 430억 유로(약 61조6100억원)의 보조금을 제공한다. 독일 역시 200억 유로(약 28조6600억원)를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일본은 TSMC 구마모토 현 팹 건설비의 절반인 4760억 엔(약 4조3천억원)을 지급하고, 일본 기업 연합으로 구성된 라피더스에도 1000억엔을 투자한다.
영국 정부는 국가 반도체 전략을 통해 향후 10년 동안 반도체 회사에 10억 파운드(약 1조 6600억원)를 제공할 계획이다. 이웃 나라 독일보다 현저히 적은 금액으로 영국 일각에서는 “야망이 부족하고 실망스러운 수준의 투자”라는 비판이 나왔다고 FT는 전했다. 하지만 영국 정부는 고급 패키징 분야나 설계 같은 틈새 분야에 보다 집중적인 투자로 효율을 극대화하겠다는 전략이다.
영국 정부가 공략하겠다고 꼽은 고급 패키징 분야는 최근 그 중요성이 더욱 부각되고 있다. 쉽게 말해 칩을 포장하는 기술인 고급 패키징 기술은 반도체 초미세공정 기술이 10㎚(나노미터·10억분의 1m) 아래로 진입하고 미세화 기술이 한계에 도달하며 힘을 발휘하고 있다. 서로 다른 칩을 패키징을 통해 이어 한 개의 반도체처럼 움직이게 하는 것으로 같은 선폭에서도 더 뛰어난 성능의 반도체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엔비디아 GPU의 품절 대란 역시 패키징 기술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사례다. 엔비디아의 대표 GPU에는 TSMC가 자체 개발한 패키징 기술인 CoWoS(Chip on Wafer on Substrate)를 사용한다. TSMC의 협조 없이는 증산이 사실상 어렵다. 이와 관련 TSMC는 지난 7월 2025년까지 CoWos생산능력을 2배 확충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삼성전자 역시 어드밴스드패키징 사업팀을 신설하고 다양한 기술 개발과 서비스 제공에 나섰다.
영국이 틈새 전략을 펼치는 이유로 영국에서 가장 중요한 반도체 기업이었던 ARM의 영향이라고 FT는 분석했다. 영국에 기반을 둔 ARM은 글로벌 반도체 IP(설계자산) 1위 기업(시장점유율 41.1%)으로 현재는 일본의 소프트뱅크에 인수됐다. 모바일 IP분야에서는 시장점유율이 90%에 달한다. 지난 4일(현지시간) 퀄컴, NXP, 보쉬, 인피니언, 노르딕 세미컨덕터 등 5개 반도체 업체들이 ARM에 대항하고자 오픈소스 RISC-V(리스크파이브) 기반 반도체 회사에 공동투자하기도 했다. 그만큼 반도체 공급망에서 막강한 위치를 자랑하는 기업이다.
영국 정부는 틈새 분야에 집중적으로 투자해 제2의 ARM을 만들어 반도체 공급망에서 영국의 존재감을 높이겠다는 전략이다. 스컬리 장관은 함께 반도체 자문단의 공동의장을 맡은 잘랄 바겔리 전 리딩 베이스드 다이로그 반도체사 대표는 “반도체 업계의 많은 미국 기업들은 Arm의 라이선스를 받지 못하면 제 기능을 할 수 없다”라며 “그것은 영국에서 온 것이고 IP와 디자인이 모두 여기에 있다”라고 말했다.
박해리 기자 park.hae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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