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축구는 비상하는데, '우물 안 개구리' 걱정되는 한국축구

이준목 2023. 8. 7.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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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목 기자]

▲ 취재진 질문에 답하는 벨 감독 콜린 벨 한국 여자 축구대표팀 감독이 5일 오후 인천공항을 통해 입국,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2023 국제축구연맹(FIFA) 호주·뉴질랜드 여자 월드컵에 출전한 대표팀은 H조 조별리그에서 1무2패 최하위 성적으로 16강 진출에 실패했다.
ⓒ 연합뉴스
 
"한국은 아직도 우물 안 개구리라고 생각한다." 대한민국 여자축구 국가대표 조소현의 통렬한 자기 반성이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조소현은 2019 국제축구연맹(FIFA) 프랑스 여자월드컵에 이어, 2023년 호주-뉴질랜드 월드컵이 끝난 뒤에도 똑같은 발언을 했다.

여자축구대표팀은 2019년 월드컵에서 조별리그 3전 전패 1득점 8실점이라는 참담한 성적으로 승점 1점도 따내지 못한 채 무기력하게 대회를 마감했다. 4년이 흘러 이번 2023년 월드컵에서는, 외국인 사령탑인 콜린 벨 감독 체제에서 꾸준히 준비를 이어왔고 '황금세대'로 꼽히던 선수들이 전성기를 맞이하며 내심 8강 이상의 성적을 기대했다.

하지만 '누구나 계획이 있다. 맞기 전까지는'이라던 권투선수 마이크 타이슨의 어록은 틀리지 않았다. 대표팀은 1승 제물로 노렸던 콜롬비아에 0-2, 모로코에 0-1로 무기력하게 연패했다. 그나마 최종전에서 FIFA 랭킹 2위 독일을 상대로 월드컵 최초의 선제득점 끝에 1-1 무승부를 만들며 간신히 승점 1점을 따내기는 했지만, 2회 연속 조별리그 탈락이라는 결과를 피할 수는 없었다. 무득점-전패탈락이라는 최악의 결과만 면했을 뿐, 4년을 준비한 월드컵 프로젝트는 명백히 '실패'로 끝났다.

콜린 벨 여자축구대표팀 감독은 지난 5일 월드컵을 마치고 인천공항으로 귀국한 뒤 취재진을 만난 자리에서 "선수들이 높은 기대치에서 감당하지 못하고 어려워하는 모습을 보였다"고 평가했다. 이어 벨 감독은 "선수들이 경쟁적이고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에 노출되어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 브라질이나 독일 같은 강팀도 조별리그에서 탈락했다. 세계 여자축구는 계속 발전·진화하고 있다. 팬들의 기대치와 요구도 높아지고 있는 만큼 선수들이 감당할 수 있어야 한다"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한국 여자 축구가 벨 감독에게 월드컵까지 장기간 지휘봉을 맡겼던 건 평론가같은 사후 분석을 기대한 게 아니다. 이제와서 벨 감독이 지적한 한국축구의 문제점은 바로 그가 지휘한 4년여의 시간 동안 해결하거나 최소한 개선했어야 할 부분이다. 월드컵은 경험하는 자리가 아니라 증명하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벨 감독의 발언을 가만히 들어오면 월드컵의 부진 원인을 주로 선수들의 경험부족이나 정신적 문제, 혹은 한국축구의 구조적 한계로 책임을 전가하고 있다. 하지만 성적에 있어서 먼저 가장 큰 책임을 지는 것은 당연히 감독이다.

이번 월드컵 내내 벨 감독의 전술적 역량은 그리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들다. 유럽파지만 소속팀에서 경기를 거의 뛰지 못해 실전감각이 저하된 윤영글을 붙박이 주전으로 기용했다가, 반드시 이겨야 했던 콜롬비아전에서 치명적인 실수로 사실상 자책골을 허용했다.

또한 콜롬비아전과 모로코전에서는 측면을 활용한 빠른 역습을 표방했지만 크로스에만 의존하는 단조로운 부분 공격전술과 형편없는 골결정력을 벗어나지 못하며, 대회 내내 독일전 단 1골을 제외하면 유효슛을 거의 찾아보기 힘든 한심한 경기력을 선보였다. 이번 대회를 통하여 벨 감독이 앞으로도 한국축구를 이끌어나가야 할 어떤 방향성이나 철학을 제시했는지 의문이다.

한국 선수단이 고작 독일의 발목을 잡은 것으로 만족하며 자화자찬하는 동안, 라이벌 일본은 비상하고 있다. 일본은 이번대회 C조에서 잠비아(5-0), 코스타리카(2-0), 스페인(4-0)을 연파하며 3전 전승 무실점으로 조 1위를 차지했다. 이어 16강에서는 또다른 우승후보 중 하나로 꼽히는 노르웨이마저 3-1로 완파하며 8강 진출에 성공했다. 4경기에서 무려 14골을 터뜨렸고, 이 중 5골을 터뜨린 미야자와 히나타는 득점 선두에 올랐다.

일본은 2011년 여자 월드컵에서 우승, 2015년엔 준우승을 차지한 자타공인 여자축구의 세계적인 강호다. 2019년 프랑스 대회 땐 16강에서 탈락했으나 이번에 8년 만에 다시 8강 진입에 성공했다. 일본은 오는 11일 스웨덴을 상대로 4강 진출을 다툰다.

남자축구도 사정이 크게 다르지 않다. 한국과 일본 남자축구는 지난해 카타르월드컵에서 나란히 아시아팀으로 동반 16강 진출에 성공했다. 한국은 포르투갈을, 일본은 독일-스페인 등 유럽의 세계적인 강호들을 제압하며 아시아축구의 경쟁력을 증명했다.

하지만 월드컵 이후 2023년에 들어 양국의 행보는 엇갈리고 있다. 일본은 카타르월드컵에 이어 자국출신 모리야스 하지메 감독과 재계약을 체결했다. 부임 초기 아시아 예선에서 불안한 행보로 많은 비판을 받았던 모리야스 감독은 카타르월드컵에서의 선전으로 평가를 반전시킨 데 이어, 내년 열리는 아시안컵과 2026 북중미월드컵에서의 우승이라는 야심찬 목표를 제시했다.

흥미로운 부분은 2023년 들어 한국과 일본이 최근 4번의 A매치를 치르는 동안 모두 홈에서 같은 상대(콜롬비아, 우루과이, 엘살바도르, 페루)를 만났다는 점이다. 양팀의 전력과 현 주소가 직접적으로 비교가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여기서 모리야스 재팬은 2승 1무 1패, 12득점 4실점을 기록한 반면,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이 새롭게 지휘봉을 잡은 한국은 2무 2패, 4득점 6실점에 그치며 신임 감독 체제에서 아직 1승도 거두지 못했다. 내용 면에서 일본은 한국이 0-1 패배를 당했던 페루를 경기 내내 두들기며 4-1로 완승했고, 한국이 1-1 무승부를 기록했던 엘살바도르를 무려 6골차(6-0)로 압승하기도 했다.

이후의 준비과정에서도 일본의 적극적이고 발빠른 행보는 두드러진다. 양국은 나란히 9월 A매치 기간을 유럽 원정으로 준비하고 있는데 일본은 이미 유럽의 강호인 독일-튀르키예와의 경기를 성사시키는 데 성공했다.

반면 한국은 웨일스와의 경기만 확정했을뿐, 멕시코와의 평가전이 무산되면서 아직 상대를 확정하지 못한 상황이다. 유럽팀 섭외가 현실적으로 어려워지면서 궁여지책으로 베트남이나 사우디아라비아와의 평가전이 대안으로 거론되고 있지만 '유럽원정 평가전'의 취지나 피파랭킹 관리, 대표팀의 전력점검에 실질적으로 도움이 될지는 미지수다. 여기에 클린스만 감독은 부임 이후 저조한 성적에 이어 잇단 설화와 잦은 외유 등으로 한국축구대표팀 사령탑으로의 성실성과 진정성이 도마에 오르고 있는 상황이다.

한국축구는 최근 전반적으로 일본에 뚜렷하게 밀리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남녀 A대표팀 뿐만이 아니라 연령대별 대표팀 역시 국제대회마다 최근 일본과의 맞대결에서 큰 점수차로 연전연패를 당하고 있는 실정이다. 앞으로 일본을 넘지 못하면 항저우 아시안게임이나 차기 올림픽, 내년 아시안컵 우승 등도 장담하기 어렵다는 우려가 나온다. 세계를 목표로 승승장구하고 있는 일본에 비하여 지금 한국축구는 어디로 가고 있는지 냉정한 분석이 필요해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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