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활자를 시공간에 옮겼다"는 한인 작가를 만났다

손기호 2023. 8. 7. 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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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청계상가서 전시 중인 '꼰大:레볼루션'... 철학적 소설 전시로 옮긴 김호빈 작가

[손기호 기자]

▲ '꼰大:레볼루션' 전시 김호빈 작가 김호빈 작가가 서울 세운청계상가 전시공간 '갤러리P1'에서 '꼰大:레볼루션'을 8월 2일부터 19일까지 전시하고 있다. 그의 작품 '무럴(Mural, 왼쪽)'과 '더 시스템(The System, 오른쪽)
ⓒ 손기호
"글자가 새겨진 저 유리문을 통과한 순간, 저의 책 속으로 들어온 겁니다."

김호빈 작가가 한 말이다. 지난 2일 방문한 서울 을지로에 위치한 세운청계상가에선 특별한 전시가 열리고 있었다. 유리문에 하얀색 영문으로 적힌 글자들과 유독 눈에 띄는 'Shit Shits, and fuck fucks'라는 문장. 이 문장을 굳이 번역해보면 '젠장, 망할 놈들' 정도가 아닐까. 이 전시가 궁금했다.

장발머리를 묶은 김 작가는 전라도 광주에서 올라왔다. 광주비엔날레가 열린 곳에서 여러 예술인들과 한바탕 예술혼을 쏟고 서울로 온 것. 그는 한국인이지만 한국뿐 아니라 일본과 미국에서 자라고 중국에서 5년간 유학하며 다채로운 경험을 한 작가다.

본래 그는 소설가란다. 영국 '커티스 브라운(Cutis Brown)'과 한국 '듀란 킴 에이전시(Duran Kim Agency)' 등의 문학 소속사에 속한 작가다. 이날 펼친 그의 전시는 미술가가 펼칠 법한 전시들이었다.  

이날 만난 김 작가는 "직접 쓴 소설이나 글을 시각화해서 행위예술, 회화, 영상, 설치미술로 실험적으로 표현했다"며 "문학을 하면서도 늘 가려운 곳이 있었는데, 시각예술을 접하면서 기분 좋게 그리고 재밌게 긁어나가고 있는 중"이라고 말했다.

아셨나요, 입장한 문부터 '작품' 
 
▲ 김호빈 작가의 '꼰大:레볼루션' 전시 김호빈 작가가 서울 세운청계상가 전시공간 '갤러리P1'에서 '꼰大:레볼루션'을 8월 2일부터 19일까지 전시하고 있다. 그의 작품 '무럴(Mural)'은 그의 소설 '꼰대'의 글을 유리문에 적은 것. 김 작가는 이 문을 통과하면 자신의 소설 속에 들어온 것이라고 설명했다.
ⓒ 손기호
 
전시공간은 독특했다.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하얀 마카펜을 사용해 영문으로 적은 유리문이었다. 이것도 작품이다. 그가 '이 문을 통과한 순간 제 책 속으로 들어온 것'이라고 한 말이 이해가 됐다.

그는 "책의 이야기에 지나치게 몰두하면 '책 속으로 들어간다'는 말이 있다"며 "제 단편소설 '꼰대'의 내용 일부를 유리벽의 3면에 적어 사상을 물리적 공간으로 전환시켜, 관객들이 책 속으로 들어갈 수 있게 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러한 은유를 통해 권력자에 의해 피해를 받던 시민들, 사람들이 권력을 전복하는 황당한 이야기를 경험해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꼰대', 유색인종 무시하는 백인들로부터 영감 얻은 소설"

'Shit, Fuck'이라고 유리문에 적힌 욕은 그의 소설 '꼰대'에서 나온 구절 중 하나다. 책 속의 주인공인 토끼는 이 말만 한다. 억압적이고 부조리한 체계를 향한 거친 외침이다. '꼰대' 소설에서는 부당체제 속 소수가 억압시스템을 구축한 데 대해 맞서 싸우는 내용이 담겼다.

그는 '꼰대' 소설에 대해 "미국을 포함한 다른 곳에서 유색인종의 사회적, 경제적 이익은 백인들에게 불이익을 초래한다는 'myth of reverse racism in America'에서 영감을 얻은 이야기"라고 했다.
 
▲ 김호빈 작가의 '꼰大:레볼루션' 전시 '더 시스템' 작품 김호빈 작가의 '꼰大:레볼루션'이 서울 세운청계상가 전시공간 '갤러리P1'에서 8월 2일부터 19일까지 열리고 있다. 그의 작품 '더 시스템(The System)' 전시에서는 한국적인 순지에 이국적인 가운데 손가락 사인을 먹으로 찍어 억압에 대항하는 모습을 표현했다. 한국에서 태어나 미국과 일본에서 자라고 중국에서 5년간 유학생활을 한 그는 이 작품이 동양인의 몸과 서양적인 마인드를 가진 자신과 닮았다고 했다.
ⓒ 손기호
또 하나 눈에 띄는 작품이 있었다. 우리나라 전통 순지에 길게 늘어 손도장을 찍은 작품. 그런데 이것도 '가운데 손가락을 치켜든 손'을 먹에 묻혀 도장처럼 찍어나간 것 같았다. 그는 맞게 봤다고 했다. 온갖 손가락 욕을 도장처럼 찍어낸 작품 중엔 딱 하나 '엄지를 치켜든 손'도 있었다. '잘했다'고 칭찬한 것이라고 했다. 마찬가지로 부조리와 억업된 체계에 대해 반대하는 행동을 옹호한 것이다.

김 작가는 "이 작품은 제 자신을 뜻한다"며 "순지라는 동양적 매체와 손가락 사인의 서양적인 요소는 동양인인 제 몸과 서양적인 마인드를 보여준다"고 말했다. 그는 "이질감과 사기적인 요소로 작가가 겪었던 부조리한 사회를 강조한 것"이라고 했다.

그의 소설 '꼰대' 줄거리 일부 중엔 한국의 고등학생 정수가 안하무인인 어른들(소위 '꼰대'로 표현됨)에게서 끊임없이 억압을 당하는 장면이 나온다. 유쾌한 성격의 승찬은 친구인 정수에게 꼰대를 논책하는 모임에 함께 가보자고 권한다. 이 과정에서 부조리에 대항하는 토끼를 만나게 되고, 그 토끼는 더 이상은 꼰대를 용납하지 않기로 결정한 뒤 더 번영하고 효율적인 사회를 창출할 시기인 'Great Refusal(위대한 거절)'을 기다린다는 내용이다.
 
▲ 김호빈 작가의 '꼰大:레볼루션' 전시 광주에서 올라온 김호빈 작가의 '꼰大:레볼루션'이 서울 세운청계상가 전시공간 '갤러리P1'에서 8월 2일부터 19일까지 열리고 있다. 그의 작품 '무럴(Mural, 왼쪽)'과 '더 시스템(The System, 오른쪽)
ⓒ 손기호
 
▲ 김호빈 작가의 '꼰大:레볼루션' 전시 작품 김호빈 작가의 '꼰大:레볼루션'이 서울 세운청계상가 전시공간 '갤러리P1'에서 8월 2일부터 19일까지 열리고 있다. 그의 작품 '형상'은 커팅메트 위에 쇠자와 나무코끼리가 놓인 것으로, 세렝게티와 같은 넓은 초원을 달릴 수 있는데도 쇠자가 놓은 위치로만 무한 반복하는 코끼리의 모습을 표현했다.
ⓒ 손기호
전시회 한 켠엔 '커팅매트 위에 쇠자와 나무 코끼리'가 있다. 이 작품을 이해하려면 그의 행위예술이 담긴 약 13분의 영상이 상영되는 TV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 TV도 작품이다. 백남준 작가가 TV로 예술작품을 표현했듯이 이 TV도 그렇다.

TV 속에 나오는 퍼포먼스 영상에는 사무실에서 사용하는 커팅매트 위에 쇠자가 놓여있고 그 쇠자를 따라서 나무 코끼리가 무한 오고가는 모습을 표현했다.

김 작가는 "이 초록색 판은 한 번은 들어봤지만 한 번도 안가본 세렝게티의 초원을 의미한다"며 "우리는 원래 동물처럼 초원에 뛰어 놀아야 자연스럽지 않나, 그런데 언제부터 우리는 자연적인 것을 포기한 것인지 궁금했다"라고 의문을 던졌다.
 
▲ 김호빈 작가의 '꼰大:레볼루션' 전시 '무럴' 작품 김호빈 작가의 '꼰大:레볼루션'이 서울 세운청계상가 전시공간 '갤러리P1'에서 8월 2일부터 19일까지 열리고 있다. 그의 작품 '무럴(Mural)'은 자신의 소설 '꼰대'의 글귀를 전시관 입구의 유리문에 적어서 표현했다. 그는 이 유리문을 통과할 때 자신의 소설 속으로 들어왔다고 했다.
ⓒ 손기호
 
김 작가는 또래에 비해 철학적이고 생각이 깊어보였다. 자유분방하면서도, 부조리하고 억압된 세상을 향해 한 바가지 욕을 날릴 용기가 있어 보였다.

김 작가는 "매스 미디어에 속해있는 책, 뉴스, 영상을 사용해 대중매체의 부정적 효과에 대해 풍자하고자 하는 실험적인 시도를 했다"며 "주로 예술과 관련된 시스템, 데이터 베이스에 기반한 사회적 리서치, 미디어를 통해 사회적 의식과 개개인의 주체성의 관계성을 연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 작가의 전시공간 '갤러리P1(인스타 계정 @Gallery_P1)'이 있는 '세운청계상가'는 레트로의 성지로도 유명하다. 여러 레트로 카페와 레코드 가게, 음식점들은 MZ세대들이 즐겨찾는 공간이 됐다. 상가의 중앙에는 오래된 오디오 스피커 등을 판매하는 공간이지만 주변을 둘러서는 다양한 먹거리와 전시공간들이 있다.
  
▲ 김호빈 작가의 '꼰大:레볼루션' 전시 김호빈 작가의 '꼰大:레볼루션'이 서울 세운청계상가 전시공간 '갤러리P1'에서 8월 2일부터 19일까지 열리고 있다.
ⓒ 손기호
 
김호빈 작가(인스타 계정 @ho_bin_kim)의 전시 '꼰大:레볼루션'은 지난 2일부터 시작해 오는 19일까지 세운청계상가 '갤러리 P'에서 전시된다. 김 작가는 현재 영국 '커티스 브라운(Cutis Brown)'과 한국 '듀란 킴 에이전시(Duran Kim Agency)' 등의 문학 소속사에 속한 작가다.

그의 개인전으로는 광주 호랑가시나무 글래스 폴리곤에서 '2022 Ggondae', 울산 중구문화센터에서 '2021 SALT' 등이 있다. 그룹전으론 광주 아시아문화전당에서 '2022 Behind The Wall – A Prefabricated Scene', 울산 갤러리P1에서 '2021 STOOL: the Embroilment of the Tangible, the Animate, and the Literal'에 참여했다. 그의 연구는 '2022 책 읽어주는 남자 여자(광주, 전일빌딩245)', '2022 저에게 고민을 버려주세요(광주 조선대학교)'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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