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에 대한 다른 질문, 그 여정의 시작점

나영 2023. 8. 7.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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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옴니버스 다큐멘터리 <당신과 나를 잇는 법>

옴니버스 다큐멘터리 <당신과 나를 잇는 법>은 성적소수문화인권연대 연분홍치마의 첫번째 놀이터 프로젝트이다. 다섯 명의 신진 여성감독과 차별의 감각에 대해 각자의 이야기를 풀어내본다. <편집자말>

[나영]

'낙태죄' 폐지 운동을 하면서 기자들로부터 당사자를 소개해 달라는 요청을 자주 받았다. '낙태죄'로 인해 차별과 고통을 겪었던 이들의 사연이 당사자 인터뷰를 통해 더 많이 알려지면 좋지 않을까. 그러면 사람들이 문제의 심각성을 알게 되고 여론의 힘으로 우리의 요구를 더 크게 전달하게 될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점차 이러한 당사자 인터뷰 연결 요청에 응하지 않게 되었다. 당사자가 직접 글을 쓰거나 충분한 시간을 들여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경우가 아니라면 정중히 거절했다. 많은 경우 당사자의 이야기는 기사를 편집하는 과정에서 언론사가 미리 정해둔 방향에 맞춰 조각나고 피해와 슬픔, 충격의 서사로만 짧게 소비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작 '낙태죄'의 영향을 받은 경험은 동일하지 않았다. 가족계획 정책의 시대를 살았는지 저출생 정책의 시대를 살았는지, 결혼을 했는지, 청소년인지, 장애나 질병이 있었는지, 상대방이나 자신의 국적이 어떠했는지, 경제적 상황이 어떠했는지 등에 따라 '낙태죄'는 누군가에게는 존재조차 모르는 것일 수 있었고, 누군가에게는 심각한 차별과 폭력을 감당해야 하는 것이 되었다. '낙태죄' 폐지 운동이 확장될 수 있었던 것은 단지 고통 받은 경험을 공유하게 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다른 경험들이 만났기 때문이었다. 

병원에 가기 위해 주민등록증을 빌려야했던 청소년, 폭력을 겪고 있었음에도 오히려 상대 남성의 '낙태죄' 고발 협박에 시달려야 했던 기혼 여성, 병원비를 감당하기 위해 몸을 회복할 새도 없이 곧바로 직장으로 돌아가 일을 해야 했다는 여성 노동자,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오히려 임신중지를 요구받았던 이들의 이야기가 만나니 완전히 새로운 장이 열렸다. 

그리고 그 이야기들을 만나는 과정에서 우리는 임신중지의 권리를 이야기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간과되어 온 장애인의 재생산권에 대해, 임신중지에 대한 비난을 피하기 위해 입증해야 했던 수많은 '사연'들과 구분짓기에 대해, 우리 자신에게 내면화되어 있던 낙인의 정체에 대해 새롭게 돌아보아야 했다. '모두를 위한 낙태죄 폐지'라는 슬로건은 단순히 모두가 당사자임을 말하는 것을 넘어 서로의 구체적인 맥락을 연결해 볼 것을 요청했고, 그리고 나서야 각자의 사연으로 남아있던 이야기들은 비로소 이 사회의 구조적 차별을 드러내고 해석하게 해주는 힘이 되었다. 
 
 다큐멘터리 <당신과 나를 잇는 법> 스틸 이미지.
ⓒ 연분홍치마
 
옴니버스에 담긴 네 개의 에피소드

이제 곧 상영 준비를 앞두고 있는 옴니버스 다큐멘터리 <당신과 나를 잇는 법>은 이런 이야기를 꺼내는 영화다. 이 옴니버스에 담긴 네 개의 에피소드는 그저 차별받은 이들의 이야기를 연결하는 것을 넘어, 오랫동안 우리에게 내면화되어 온 차별의 속살을 보게 한다.

성폭력 사건의 해결에 지쳐 이전 시대를 살았던 선배 여성인 할머니에게 지지와 위로를 얻고 싶었던 첫번째 에피소드의 주인공은 기대와는 다른 할머니의 이야기에 고민하고, 우울증으로 정신과 진료를 받는 두번째 에피소드의 주인공은 정신질환을 가지고 살아가는 이들에 대한 낙인을 고민하면서도 자신 역시 그 편견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음을 발견한다. 

세번째 에피소드에서는 발달장애가 있는 동생과 발달장애인 24시간 지원체계 구축을 요구하며 삭발을 결심하는 엄마, 페미니스트인 자신의 고민을 따라가며 당사자로서의 말하기와 연대의 말하기가 어떤 위치에서 갈등하거나 연결될 수 있는지를 질문한다. 

그리고 네번째 에피소드에서는 덴마크에서 비정규직 임시거주자로서 비혼동거의 형태로 살았던 주인공이 약을 이용한 임신중지를 경험했던 과정의 이야기를 보여줌으로써 관객들이 자신의 마음속에 있는 편견을 바라보게 한다. 

감독들은 모두 덤덤하게 이야기를 전하는데 영화를 보는 관객의 마음에는 어느 순간 하나둘씩 질문이 자리하기 시작한다. 에피소드 곳곳에 나의 마음을 건드리는 요소들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과연 어떤 마음으로 저 이야기들 안의 차별을 바라보고, 이야기해 왔을까. 이 영화는 막연하게 '우리 모두가 차별의 당사자'라고 말하는 대신, 오히려 그 차별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더 구체적이고 적극적인 갈등과 해석의 과정들이 서로에게 연결되어야 함을 보여준다. 
 
 옴니버스 다큐멘터리 <당신과 나를 잇는 법> 포스터.
ⓒ 연분홍치마
이 글을 쓰며 고민하던 지난 며칠 사이 주호민 작가와 관련된 사건이 연일 일상에 등장했다. 발달장애가 있는 어린이의 신상이 낱낱이 언론에 오르내리고 다른 학교로 전학 간다는 소식에 해당 학교의 학부모들이 "벌벌 떨고 있다"는 등의 보도가 넘치는 와중에, 정작 통합교육에 대한 지원과 시스템이 턱없이 부족한 현실은 여전히 큰 관심거리가 되지 못하는 세상을 보며 한동안 마음이 너무 어지러웠다.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사람들이 사건에 반응하는 것을 넘어 서로를 마주보게 하는 차별의 구조와 만날 수 있게 될까. <당신과 나를 잇는 법>을 보며 관객들의 마음속에 떠오를 질문들이 제목에 대한 답을 찾아가게 해주는 여정의 시작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 여정에서 나의 편견을 만나고, 나의 경험 또한 새롭게 해석되는 과정을 만나며 함께 차별의 구조에 맞설 새로운 연대의 힘이 만들어질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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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당신과 나를 잇는 법>은 8월 25일 인디스페이스에서 첫번째 기획상영을 앞두고 텀블벅을 통해 모금을 진행하며 소식을 알리고 있다. 이 글은 네번째 에피소드 <나는 문제라곤 없는 여자>의 자문 그룹이자, 오랫동안 차별의 문제를 함께 고민해왔던 동료인 나영의 소개글이자, 영화를 보며 떠오른 질문이 접속될 링크를 안내하는 이야기이다.  🌈🌈 <당신과 나를 잇는 법> 텀블벅 후원하기  https://link.tumblbug.com/wbu 🌈🌈 <당신과 나를 잇는 법> 소식 볼 수 있어요! ▶️ 인스타그램 '연분홍TV', '서울인권영화제'  ▶️ 페이스북 연분홍치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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