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고출신 천재' 윤종규 KB금융 회장, 용퇴...갈등 봉합하고 리딩뱅크로
세대교체 본격화
9년간 KB금융그룹을 이끌던 윤종규 회장이 용퇴를 선언했다. 그는 2014년 불거진 'KB 사태' 수습부터 지배구조 개선 등 금융권 안팎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아왔다. 올해 2분기에는 역대급 실적 기록하면서 연임에 도전해도 무리가 없다는 시각도 있었으나 윤 회장은 명예로 퇴진을 택했다. 윤 회장은 2017년과 2020년 두 차례 연임에 성공해 현재 세 번째 임기 중으로 오는 11월 20일 임기 만료를 앞두고 있다. KB금융은 윤 회장의 용퇴로 9년 만에 세대교체를 본격화했다. 오는 8일 1차 숏리스트를 확정하고, 오는 29일 2차 숏리스트를 거쳐 9월 8일 최종 회장 후보자를 결정한다.
갈등 봉합한 첫 내부 출신 회장의 '용퇴'
윤 회장의 용퇴는 금융권에선 올해 초부터 예견했던 일이었다. 작년 말 조용병 전 신한금융지주 회장이 자진사퇴했고, 지난 1월에는 손태승 우리금융지주 회장도 임기 연장을 포기했다. 이런 분위기 속에 금융당국이 KB금융에 눈을 돌리기 전 윤 회장이 먼저 연임 도전 포기 선언을 한 것이다. 윤 회장의 이런 행보 덕에 관치 금융이 개입할 여지가 없어졌고, KB금융이 책잡힐 일도 사라졌다. 금융지주의 한 고위관계자는 "지금까지 금융사들이 문제를 일으키니까 당국이 개입하려는 욕구를 분출하고, 그걸 이용해 관치 개입이 횡행했다"며 "금융회사가 한발 앞서서 잘하면 금융당국도 뭐라고 할 수가 없으니 관치를 막으려면 빌미를 주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번 윤 회장의 조기 용퇴 선언도 이런 차원에서 내린 결정으로 보인다.
윤 회장은 은행 주전산기 교체를 둘러싸고 임영록 전 회장과 이건호 전 행장이 갈등을 벌인 'KB 사태' 직후인 2014년 11월21일 취임했다. 취임 직후 그는 지주 회장과 은행장을 겸직하면서 불협화음의 가능성을 차단했고, 사외이사 전원 교체부터 내부 감사 제도 강화 등 지배 구조 개선에 나섰다.
윤 회장이 이처럼 조직의 갈등을 봉합할 수 있었던 것은 KB금융지주 설립 이후 첫 내부 출신 회장이라는 점도 한몫했다. 광주상고 출신인 그는 1973년 고졸 은행원으로 당시 외환은행에 입사했다. 은행을 다니면서 성균관대 경영학과를 야간으로 다녔고, 대학 재학 중에 공인회계사 시험에 합격하고, 1981년 행정고시(25회) 2차 시험에 차석으로 합격했지만, 학생운동 전력으로 3차 면접에서 탈락했다. 이 같은 화려한 이력 때문에 그는 '상고 출신 천재'라는 별명도 얻었다. 윤 회장은 KB와의 인연도 끈질기다. 윤 회장은 KB에서만 퇴사를 2번, 입사를 3번 했다. 2004년 김정태 전 국민은행장이 물러날 때 함께 나왔고, 2013년 임 전 회장이 취임했을 때도 김앤장 고문으로 복귀했다. 이후 'KB 사태'가 터지면서 내부 출신 회장의 필요성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졌고 2014년 윤 회장이 금의환향했다.
윤 회장의 취임 뒤 과감한 내부 통제 강화 행보에 금융당국과의 관계도 점차 개선됐다. 그는 적극적인 인수합병(M&A) 등을 통해 지금의 KB금융의 토대를 마련했다. 2015년 LIG손해보험(현 KB손해보험)을 시작으로 2016년 현대증권(현 KB증권), 2020년 푸르덴셜생명(현 KB라이프생명)의 M&A를 주도해 비은행 사업을 강화했다. KB금융은 올해 상반기에만 3조원에 육박하는 역대급 실적을 달성하면서 국내 대표 리딩금융그룹으로 입지를 다졌다는 평가를 받는다.
금융권 안팎 긍정 평가…은행연합회장 적임자라는 평도
윤 회장은 주로 '온화한 덕장'으로 평가받지만 업무에 있어서는 철두철미한 모습으로도 유명하다. KB금융의 고위 관계자는 "과거와 비교해 KB는 업무방식도 많이 바뀌었다"며 "예전에는 단순히 '신용대출을 관리하자'는 식의 목표 설정을 했다면, 지금은 스펙트럼을 만들고 빈칸을 채우듯이 촘촘히 점검하는 방식이다"라고 설명했다.
또 윤 회장은 선제적으로 승계프로그램을 잘 구축해뒀다는 평을 받고 있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도 "KB금융은 상대적으로 승계 프로그램이 잘 짜여있다"고 평했을 정도다. 이 때문에 차기 수장으로는 후계 프로그램에 따라 양성된 허인·이동철·양종희 부회장 중에서 최종 후보자가 나오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 현재까지 우세하다. 증권사 최초 여성 최고경영자(CEO)인 박정림 KB증권 사장의 이름도 오르내리고 있다. 윤 회장은 올해 초부터 회추위에 안정적인 지배구조와 효과적인 경영승계 시스템이 잘 작동함을 시장에 보여줄 시기가 되었다는 의사를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에 대한 외부 평가도 꽤 긍정적이다. 이 때문에 그가 향후 행보로 은행연합회장직 도전을 고려해봄 직하다는 의견들도 나온다. 김광수 은행연합회장의 임기는 오는 11월30일까지다. 금융당국의 한 고위관계자는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무조건 관 출신이 맡는 것보다, 경영 능력이 검증된 윤 회장이나 조용병 전 신한지주 회장 등 금융지주 회장들이 은행연합회장직을 맡는 것도 긍정적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부애리 기자 aeri345@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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