컵대회 스타들, '진짜 경쟁'이 시작된다
[양형석 기자]
지난 7월 29일에 개막했던 구미·도드람 프로배구대회가 지난 5일 여자부 일정을 모두 마쳤다. 작년 대회 우승팀 GS칼텍스 KIXX가 2년 연속 우승과 함께 통산 6번째 우승컵을 차지하며 컵대회의 강자임을 재확인했고 IBK기업은행 알토스도 젊은 선수들 위주로 대회를 치렀음에도 준우승이라는 성과를 올렸다. 반면에 지난 시즌 V리그 챔피언 결정전에서 격돌했던 한국도로공사 하이패스와 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는 나란히 조별리그에서 탈락했다.
이번 대회에서는 팀 합류 및 비자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외국인 선수와 아시아쿼터 선수들이 출전하지 못했지만 각 구단의 국가대표 선수들은 모두 출전할 수 있었다. 하지만 '배구여제' 김연경을 비롯해 김수지, 김해란(이상 흥국생명), 박정아(페퍼저축은행 AI페퍼스), 김희진, 황민경(이상 기업은행) 등 각 구단의 핵심 선수 중 상당수가 컵대회에 출전하지 않거나 제한된 출전시간만을 소화했다. V리그 개막을 앞두고 컵대회에서 무리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컵대회는 젊은 선수들에게 좋은 기회의 장이 되기도 한다. 특히 V리그에서 선배들과 외국인 선수에게 밀려 시즌 내내 웜업존만 뜨겁게 달궜던 각 구단의 젊은 선수들은 컵대회를 통해 부담을 털어 버리고 감독과 배구팬들에게 강렬한 눈도장을 찍기도 했다. 하지만 컵대회에서 활약했던 젊은 선수들은 지금의 성과에 만족하면 곤란하다. 이제 두 달만 지나면 진짜 '실전'인 V리그가 개막하기 때문이다.
▲ 뛰어난 공격력을 가진 정윤주가 서브 리시브까지 안정되면 흥국생명의 주전에 가까워질 수 있다. |
ⓒ 한국배구연맹 |
흥국생명은 작년 컵대회를 통해 김다은이라는 젊은 공격수의 가능성을 확인했다. 지난 시즌 정규리그 35경기에서 186득점을 올린 김다은은 시즌이 끝난 후 성인 대표팀에 선발돼 발리볼 네이션스리그(VNL)에서 세자르호의 핵심 공격수로 활약했다. 하지만 김다은은 최근 어깨부상을 당하며 늦은 팀 합류로 컨디션이 완벽히 올라오지 않은 김연경과 김해란 리베로, 무릎수술을 받은 미들블로커 김수지와 함께 이번 컵대회에 결장했다.
흥국생명의 마르첼로 아본단자 감독은 이번 컵대회에서 프로에서 두 시즌을 보낸 2003년생 유망주 정윤주를 김미연과 함께 주전 아웃사이드히터로 투입했다. 흥국생명이 조별리그에서 탈락하면서 3경기 밖에 뛰지 않았지만 컵대회에서 보여준 정윤주의 활약은 기대 이상이었다. 정윤주는 조별리그 3경기에서 47득점을 올리며 51득점의 표승주(기업은행)에 이어 '컵대회 MVP' 강소휘(GS칼텍스)와 함께 득점 공동 2위에 올랐다.
9번의 세트에서 37.84%의 성공률로 47득점을 올린 정윤주의 공격은 나무랄 데 없었지만 문제는 역시 수비였다. 조별리그 3경기 동안 상대의 집중적인 목적타 서브를 받았던 정윤주는 팀 내에서 가장 많은 61회의 리시브를 시도했지만 리시브 효율은 단 26.23%에 그쳤다. 디그 개수가 세트당 3.67개로 급증한 것도 수비능력이 향상됐기 때문이라기 보다는 출전시간이 급격히 늘어났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정윤주는 V리그가 개막하면 김연경을 비롯해 주장 김미연, 아웃사이드히터로 활약할 김다은, 여기에 아시아쿼터 선수인 레이나 토코쿠까지 쟁쟁한 내부 경쟁자들을 만나게 된다. 정윤주가 컵대회에서 기대 이상의 공격력을 보여준 것은 분명하지만 공격력 하나만 가지고는 결코 아본단자 감독의 신뢰를 얻기 쉽지 않다. 정윤주가 V리그 개막까지 남은 두 달 동안 서브 리시브 훈련에 매진해야 하는 이유다.
▲ 지난 시즌 데뷔 후 최고의 활약을 펼친 육서영은 황민경과 브리트니 아베크롬비의 가세로 팀 내 입지가 좁아졌다. |
ⓒ 한국배구연맹 |
고질적인 무릎부상에 시달리던 기업은행의 간판스타 김희진은 지난 2월 수술을 받으며 컵대회를 결장했고 다가올 2023-2024 시즌 V리그에도 출전이 불투명하다. 여기에 FA로 영입한 황민경 역시 몸 상태가 썩 좋은 편이 아니라 지난 7월30일 흥국생명과의 첫 경기 출전 후 계속 벤치만 지켰다. 김수지의 이적으로 미들블로커 라인 역시 약해진 편이라 주전 미들블로커 최정민을 함부로 아포짓으로 돌릴 수도 없었다.
하지만 기업은행에는 아웃사이드 히터와 아포짓 스파이커를 오갈 수 있는 육서영이 있다. 일신여상 출신의 육서영은 2019-2020 시즌 신인 드래프트에서 2라운드2순위까지 지명순위가 밀렸지만 고교 시절 최가은(도로공사),김다은과 함께 트로이카를 형성하며 팀을 이끌었을 정도로 뛰어난 공격력을 자랑하는 선수다. 지난 시즌에는 33경기에 출전해 270득점을 올리며 팀 내 입지를 크게 높인 바 있다.
육서영은 외국인 선수가 출전할 수 없는 컵대회에서 김호철 감독으로부터 주전 아포짓 스파이커로 중용됐다. 그리고 육서영은 컵대회 5경기에서 81득점을 올리는 활약으로 표승주(98점), 강소휘(91점)에 이어 컵대회 전체 득점 3위에 올랐다. 특히 육서영은 김호철 감독의 배려(?)로 아포짓 스파이커와 아웃사이드히터를 오가며 서브 리시브에도 참여했는데 경기를 치를수록 점점 높은 리시브 효율을 기록하며 공격만 좋은 '반쪽 짜리 선수'라는 오명도 씻고 있다.
하지만 조별리그에서 47.19%, 준결승에서 38.78%의 공격성공률을 기록했던 육서영은 5일 GS칼텍스와의 결승에서 공격성공률이 25%로 뚝 떨어졌다. 육서영을 효과적으로 봉쇄한 GS칼텍스의 블로킹과 수비도 좋았지만 육서영이 가장 중요한 경기에서 제 몫을 해주지 못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물론 3일 연속 경기를 치르면서 체력적인 부담도 컸지만 육서영이 기복을 줄이지 못하면 새 시즌 표승주와 황민경의 자리를 위협하긴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 박은서는 수비에서 성장하지 못하면 박정아,이한비,채선아,박경현과의 경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기 힘들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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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말 어수선한 페퍼저축은행의 3대 감독으로 부임한 조 트린지 감독은 컵대회를 앞두고 "승패보다는 선수들의 장단점을 파악하는데 중점을 두고 싶다"고 밝힌 바 있다. 실제로 트린지 감독은 컵대회에서 3년 총액 23억2500 만원(옵션 포함)을 투자해 영입한 '클러치박' 박정아와 총액 3억5000만 원에 잔류시킨 오지영 리베로를 거의 출전시키지 않았다(박정아는 7월31일 현대건설 힐스테이트전에서 교체 선수로 잠시 코트를 밟았다).
박정아를 대신해 이번 컵대회에서 페퍼저축은행의 주공격수로 활약한 선수는 프로에서 두 시즌을 보낸 신예 박은서였다. 2021-2022 시즌 신인 드래프트에서 전체 2순위로 페퍼저축은행의 창단멤버로 입단한 박은서는 루키 시즌 39.57%의 성공률로 101득점, 지난 시즌 33.33%의 성공률로 133득점을 기록했다. 루키 시즌엔 신인왕 후보로 거론될 만큼 활약이 좋았지만 2년 차 시즌에 기대만큼 큰 성장속도를 보이지 못했다.
하지만 박은서는 이번 컵대회에서 페퍼저축은행의 주공격수로 활약하며 3경기에서 김세인(도로공사,119회) 다음으로 두 번째로 많은 116회의 공격을 시도해 45득점(공동5위)을 기록했다. 특히 전위뿐 아니라 후위에서도 23번의 공격을 시도해 11개를 성공(47.83%)시키며 전천후 공격수로서의 가능성을 뽐냈다. 하지만 박은서 역시 조별리그 3경기에서 리시브 효율이 23.33%에 그치며 수비에서 큰 아쉬움을 남겼다.
V리그가 개막하면 날개 공격수 3자리 중 2자리는 외국인 선수 야스민 베다르트와 여자부 최고연봉선수인 박정아의 몫이 될 것이다. 나머지 한 자리 역시 현재로서는 지난 시즌 V리그에서 39.23%의 리시브 효율을 기록했던 주장 이한비가 유력하다. 박은서가 지난 두 시즌 동안 484득점을 기록했던 박경현, FA로 영입한 채선아와의 경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지 못한다면 2023-2024 시즌에도 코트보다 웜업존이 익숙한 선수로 전락할 수 있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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