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덫에 걸린 中경제]②텅빈 쇼핑몰엔 직원만…"매년 사던 휴대폰, 3년 지나도 안바꿔"
"최신 기종의 신제품입니다. 지금 구매하시면 할인과 액세서리 증정 혜택을 받으실 수 있어요."
중국 베이징 동즈먼에 위치한 대형 쇼핑몰 래플스시티. 줄지은 전자제품 매장에 들어서니 직원이 반기며 금세 영업을 시작한다. 구경만 하겠다는 기자에게도 줄기차게 말을 걸며 최신 폴더블폰 사용을 권한다. 매장에 손님이 왜 이렇게 없느냐고 물었더니 "요즘 비도 많이 오고 날씨가 안 좋아서 그렇다"고 어깨를 으쓱해 보인다.
중국의 소비 부진이 심상찮다. 위드코로나 전환 이후 활짝 열릴 것으로 기대됐던 지갑은 여전히 굳게 닫혀있고, 개방과 함께 해외로 뛰쳐나갈 것 같던 중국인 관광객들은 여전히 여행을 망설이는 분위기다. 현장에서도 고강도 방역이 전개된 3년 동안 얼어붙은 소비 심리가 고스란히 느껴질 정도다.
지난 3일 찾은 쇼핑몰 래플스시티는 평일 낮임을 감안해도 지나치게 한산했다. 식음료 매장에만 사람들이 다소 몰려있을 뿐, 고급 잡화와 전자제품 매장은 직원만이 자리를 지키고 서 있다. 전날까지 퍼붓던 비도 멈춘 터였다. 샤오미 매장의 한 직원은 잘 팔리는 물건을 묻자 선풍기와 보조배터리 등을 가리켰다. 그러면서도 "건조기 기능을 갖춘 세탁기가 쓰기 편리하고, 인기가 많다"며 고가 백색가전 코너로 기자를 안내했다.
최근 중국에서는 '푼돈'에만 지갑을 열고, '큰돈'을 쓰는 데에는 인색해진 소비 풍토가 나타나고 있다. 식음료나 옷가지 등은 그나마 소비하지만, 가전·가구·자동차 등 가계에 부담이 될 만한 물건은 되도록 사지 않는 것이다. 주바오량 국가신식중심(SIC)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중국 젊은층들도 소비의 패턴이 과거와 크게 달라졌다"면서 "매년 휴대전화를 교체하는 게 일반적인 분위기였지만, 최근에는 3년에 한 차례도 바꾸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주 이코노미스트는 "그나마 3년간 소비를 덜 했던 의류 등에는 지출을 하지만 가전, 휴대전화, 노트북과 같이 코로나19 상황에 많이 샀던 내구재들에는 씀씀이가 작아졌다"고 부연했다.
지난 6월 중국의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은 전년 동기 대비 0%에 그치며 디플레이션(물가 하락) 우려를 키우고 있으며, 같은 달 소매 판매는 3.1% 증가에 그치는 등 경기 침체 경고등이 켜진 상태다.
톈진 시내에서 공유공간업체를 하는 한 한국인은 "월 단위 회원권을 끊는 학생들이 급격히 줄었다"고 전했다. 2010년대 삼성전자를 비롯해 대기업 생산시설과 법인이 철수하거나 이전하면서 가뜩이나 가라앉은 경제 상황이 최근 더욱 악화하면서다. 그는 "단순히 비교해봐도 스타벅스 컵을 들고 방문하던 고객들이 이제는 미쉐빙청(중국의 초저가 음료 프렌차이즈) 컵을 들고 나타난다"면서 "이번엔 불황이 길게 갈 것 같다"고 말했다.
관광 시장도 마찬가지다. 비용이 그나마 덜 드는 국내 여행에 집중하고, 해외여행은 좀처럼 가지 않는다. 실제로 지난 5일 오전 찾은 서우두 공항 국제선은 그야말로 스산한 풍경이었다. 출국장 의자는 텅텅 비어있고, 면세점 매장은 전부 문을 닫아 아예 영업조차 하지 않았다. 이용객이 너무 적은 탓에 영업을 일시 중단한 듯했다.
중국 관광연구소에 따르면 올해 중국인들의 여행은 총 55억회에 달하며, 여행 시장 수익이 코로나19 이전 수준의 약 80% 수준인 5조위안(약 903조2500억원)에 달할 것으로 관측된다. 장양 중국 관광연구소 연구원은 "여행 지출 회복은 다소 보수적이지만 연초 노동절 연휴와 단오절 기간의 여행 횟수가 이미 2019년을 넘어섰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여행을 멀리 떠나지는 않았다. 상반기 기준 본토를 떠난 여행객의 50.9%가 마카오를 향했고, 홍콩(26.7%)·태국(3.3%)·일본(2.4%)·대만(2.3%)이 뒤를 이었다.
특히 '요우커'라 불리던 중국의 단체관광이 크게 줄었다. 중국 문화관광부 자료에 따르면 올해 1분기 해외 여행객 중 단체여행객은 1.6%에 불과했다. 팬데믹 전만 해도 단체여행객 비중은 30%에 육박했다.
중국 소비 부진의 가장 큰 원인은 제로코로나를 겪으며 냉각된 소비심리가 해동의 계기를 찾지 못하고 있기 때문으로 진단된다. 특히 가처분소득 증가세가 둔화한 탓이 크다. 보스턴컨설팅그룹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 14억 인구 중 3분의 1이 중산층으로 분류된다. 중산층은 월 가처분 소득이 9500~2만9900위안 수준으로 정의된다. 중국 도시 가구의 상반기 가처분 소득 증가율은 전년 동기 대비 4.4%에 그쳐, 국내총생산(GDP) 증가율(5.5%)을 밑돌았다. 주 이코노미스트는 "중산층과 저소득층의 소득 증가 속도가 팬데믹 이후 너무 느려졌다는 데 소비 부진의 이유가 있다"고 진단했다.
베이징=김현정 특파원 alpha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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