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하게’ 쾌적한 여름, 에어컨을 없앴다 [빼봤더니]

심하연 2023. 8. 7. 0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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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 후 방에 돌아온 오후 9시 48분, 에어컨을 틀지 않으니 방 온도가 30도까지 올랐다.   사진=심하연 기자

“이 더위에 에어컨 없이 살겠다고? 진짜로?”

전문가들은 이제 기후위기가 아니라 기후멸망의 시대가 도래했다고 주장한다. 미국 애리조나에선 더위에 자동차 범퍼가 녹고 선인장이 말라죽었다고 했다. 온실가스 과배출로 인해 2년 안에 해류가 멈출 수 있다는 보도도 있었다. 

그러나 잘 와닿지 않았다. 샤워기를 틀면 언제든 찬물이나 더운물이 콸콸 나왔다. 여름엔 추울 만큼 시원하고 겨울엔 더울 만큼 따뜻하게 지냈다. 나에게 ‘기후 멸망’은 언젠가 인간은 화성에 가서 살게 될 거라는 말처럼 멀게만 느껴졌다.

그래서 일주일 동안 내 방 에어컨 콘센트를 빼 보기로 했다. 에너지 절약, 나부터 실천하자는 기특한 생각은 아니었다. 내가 시원할수록 더워지는 바깥, 지구가 끓는 시대에 도래했다는데 나는 에너지를 얼마나 많이 쓰고 있을까 궁금했다.

방 안에 설치된 에어컨. 평일 저녁 집에 돌아오면 하루 평균 두 시간 정도 켜 두었다.   사진=심하연 기자

바깥은 34도의 여름…“단단히 잘못됐다”

기자의 방은 창 너머 베란다가 있어 통풍이 잘 되지 않는다. 환기가 어렵지만 공기청정기가 있어 딱히 불편하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다. 하지만 에어컨을 끄니 이야기가 달라졌다.

방문을 열고 열을 잔뜩 머금은 텁텁한 공기를 들이마시는 순간 무언가 단단히 잘못됨을 느꼈다. 34도까지 치솟은 낮동안 방을 뜨겁게 달군 열기는 꿋꿋하게 방에 가득 차 있었다.

급하게 창문을 열고 곧장 욕실로 향했다. 몸이 덜덜 떨릴 때까지 찬물을 맞으면 좀 더위가 가시지 않을까 싶었다. 아니었다. 떨어진 체온을 올리기 위해서 장기들은 더 열심히 몸을 데웠다. 선풍기 앞에 앉았다. 젖은 머리에 바람을 쐬니 조금 시원해졌다. 머리를 말리고 뒤척이다 바로 잠에 들었다.

에어컨 코드를 뺀 지 삼일 째 되던 날, 생각보다 이 '체험'이 할만 하다고 느꼈다. 더위에 익숙해졌다거나 이를 극복할 획기적인 방법을 알아낸 것은 아니다. 아침에 일어나 하루종일 에어컨 빵빵한 곳에 있다가 야근이나 저녁 약속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열 시 가까운 시간이었다. 씻고 잠들기까지 내가 에어컨 없이 지내는 시간은 두 시간 남짓 뿐이다. 새벽에 더워서 두어번 깬 적 있지만 버티기 힘든 정도의 시간은 아니었다.

선풍기를 강풍에 맞춰 두고 머리를 말렸다. 머리를 적신 물이 증발하면서 시원해지고 더위가 가셨다.   사진=심하연 기자

한국에서 에어컨 빼기는 ‘하늘의 별따기’

다음 날. 에어컨 있는 곳이 지뢰라고 생각하고 피해 다니기로 했지만 시작부터 실패했다. 출근길에 오른 지하철은 25도로 맞춰져 쾌적한 환경을 유지하고 있었다. 시청역에서 내려 근처 프랜차이즈 카페에 갔다. 문을 당기자마자 찬 기운이 쏟아졌다.
음료를 주문하고 손님이 없어 아직 에어컨을 틀지 않았다는 2층으로 올라갔다. 시원하진 않았지만 덥지도 않았다. 직원이 에어컨 리모콘을 손에 쥐고 따라왔다. 에어컨을 틀지 말아 달라고 부탁하고 구석에 자리를 잡았다. 

점심. 에어컨을 틀지 않는 식당을 찾아 보았다. 허름하거나 오래된 곳은 에어컨 대신 선풍기를 돌리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착각이었다. 심지어 찌개처럼 눈 앞에서 펄펄 끓여 먹는 음식을 파는 곳은 에어컨과 선풍기를 동시에 틀었다. 열네 번째 식당 문을 닫고 나오니 너무 덥고 진이 빠졌다. 햇볕은 사람을 잡아먹을 듯 땅을 달궜다. 어쩔 수 없이 서울시청 광장 근처 그늘이 있는 벤치에 앉아 김밥을 씹으며 생각했다. 

‘바깥은 정말 덥구나.’

오전 11시 20분, 카페에 손님이 들어오기 시작하자 직원도 에어컨을 틀었다. 하는 수 없이 짐을 싸서 야외 벤치로 나가 한 시간 정도 일을 했다.   사진=심하연 기자

에너지 과소비의 나라 ‘대한민국’

에어컨은 굶주린 괴물마냥 전기를 잡아먹는다.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룸에어컨은 선풍기 20~30대, 벽걸이에어컨은 선풍기 10대를 사용할 만큼의 전력이 필요하다. 에어컨 수요와 사용량이 늘면 화석연료 기반 발전용량으로 전기를 생산해야 하기 때문에 온실가스 배출량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한국은 에너지 수요의 90%이상을 수입에 의존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전력 소비량은 지난 2020년 기준 560TWh(테라와트)로 중국(7425TWh)·미국(4109.4TWh)·인도(1280.7TWh)에 이어 7위를 기록했다. 2021년 대한민국의 1인당 전력 소비량은 1만 330kWh다. 한국이 에너지를 사치스럽게 쓰고 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이민호 서울환경연합 기후에너지 팀장은 “에어컨 의존도가 높으니 틀지 말자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미세먼지나 폭염, 한파 등 우리가 마주한 다양한 환경 재난을 가전제품으로만 해결하려는 방향은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한정된 전력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지 고민하고, 에너지 절약을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우쳐야 한다”고 말했다.   

환경을 생각해서 에어컨을 없애버리자는 것이 아니다. 여름을 잘 보내는 것은 정말 중요하다. 게다가 폭염은 집에 창문이 없어 열을 식힐 수 없거나 더위를 피해 다른 곳으로 도망갈 수 없는 취약계층에게 더 잔인하다. 대안 없이 그들에게 에어컨 없이 여름을 보내라고 무책임하게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우리가 마주한 현실에 비해 한국의 여름이 과하게 쾌적하지는 않은지 고민해야 한다. 쓸 수 있는 에너지는 한정되어 있고, 올해 여름은 우리가 앞으로 맞을 여름 중 가장 시원할 것이기 때문이다.

심하연 기자 sim@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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