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잼버리 배운다며 크루즈 즐겼다...공무원 해외출장 99번

김준영 2023. 8. 7.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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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부안군 새만금에서 열리는 ‘제25회 세계스카우트잼버리’ 개막을 앞두고 지난 8년간 새만금 잼버리를 명목으로 관계 기관 공무원들이 99번의 해외 출장을 다녀온 것으로 나타났다.

5일 오후 2023 새만금 세계 스카우트 잼버리에 참가했던 영국 대표단이 조기퇴영을 하고 서울로 떠나고 있다. 연합뉴스

이는 중앙일보가 6일 ‘국외출장연수정보시스템’에서 새만금이 한국스카우트연맹으로부터 국내 유치 후보지로 결정된 2015년 9월 22일 이후의 해외 출장을 전수조사한 결과다. 국외출장연수정보시스템은 공무원의 국외 출장 기록을 등록하는 데이터베이스(DB)다. 구체적으로 출장 보고서 제목에 ‘잼버리’를 적시한 기관은 5곳이다. 전라북도가 55회로 가장 많았고 이어 부안군 25회, 새만금개발청 12회, 여성가족부 5회, 농림축산식품부 2회 순이었다.

정근영 디자이너


해외 출장 목적은 세계스카우트 총회에서 새만금이 최종 개최지로 선정된 2017년 8월 16일을 기준으로 크게 두 가지 양태를 보인다. 국내 후보지로 선정된 후 세계스카우트잼버리 개최지로 최종 확정되기까지 약 2년 동안엔 54회의 해외 출장이 있었는데, 대개 유치전 성격이었다. 유치 후엔 선진 문물 탐방 목적의 출장이 많았다.

전라북도 세계잼버리추진단 소속 공무원 5명이 2018년 5월 29일부터 6월 5일까지 8일간 스위스ㆍ이탈리아 출장을 다녀온 후 작성한 보고서. 사진 국외출장연수정보시스템


겉으로 봤을 땐 문제 없지만, 보고서 세부 내역을 뜯어보면 부실한 출장이 적지 않았다. 예컨대 2018년 5월 전라북도는 ‘세계잼버리 성공개최 키맨 면담 및 사례조사’를 하겠다는 목적으로 5명의 공무원이 스위스와 이탈리아를 6박 8일간 방문했는데, 실제 잼버리와 관련된 일정은 첫날 유럽스카우트 이사회 전(前) 의장 면담, 둘째 날 세계스카우트센터 방문 외엔 전혀 없었다.

셋째 날부터는 인터라켄과 루체른 등 스위스의 유명 관광지를 찾았고, 나머지 기간은 이탈리아의 밀라노와 베네치아를 찾았다. 애초 스위스와 이탈리아는 세계 잼버리를 개최한 적도 없는 곳인데, 이들은 ‘국외 사례에 따른 시사점’이라며 새만금과 연결하려 했다. “새만금도 이탈리아의 베네치아처럼 차별화된 도시로 건설하여 후세에게 물려주는 방안 추진이 필요하다” 같은 식이다. 또 베네치아 산마르코 광장 등 자신들이 찾은 관광지에 대한 설명은 2014년에 보도된 한 지역 언론의 여행 기사 내용을 토씨 하나 안 바꾸고 베껴 넣었다.

왼쪽은 전라북도 세계잼버리추진단 소속 공무원 5명이 2018년 5월 29일부터 6월 5일까지 8일간 스위스ㆍ이탈리아 출장을 다녀온 후 작성한 보고서 중 일부. 오른쪽은 2014년 3월 27일 충남 청양의 지역 언론인 뉴스 청양에 보도된 기사. 사진 국외출장연수정보시스템


박경민 기자

2019년 10월 부안군 공무원 4명이 영국 런던과 프랑스 파리로 10일간 떠난 출장도 세부 일정을 보면 외유성 출장에 가깝다. 출장 목적으론 “영국의 잼버리대회 개최지 연구 및 파리의 우수축제 연구”라고 썼는데, 런던은 103년 전인 1920년에 세계잼버리를 열었고, 파리에선 개최된 적 없다.

출장 일정표도 영국 버킹엄궁전·웨스트민스터사원, 프랑스 몽마르뜨 포도 축제, 몽생미셸 수도원 방문 등 관광 코스로만 짜여있다. 보고서엔 ‘느낀 점’도 써넣었는데 “(몽마르뜨 언덕에서) 와인 시음행사. 부안군의 대표 축제인 ‘마실 축제’에 접목할 방안 고민” 같은 식이었다.

전북 부안군 소속 공무원 4명이 2019년 10월 3일부터 10월 13일 11일간 영국 런던과 프랑스 파리 출장을 다녀온 후 작성한 보고서. 사진 국외출장연수정보시스템


잼버리를 명목으로 크루즈 여행을 가기도 했다. 부안군은 잼버리와 별개로 크루즈 기항지 조성을 추진 중인데 잼버리 개최가 확정되자 “크루즈 거점 기항지 조성을 통한 잼버리 개최지 홍보”란 명목으로 2차례 관련 출장을 떠났다. ▶2019년 10월 13명, 중국 상해에서 최장 6박 7일간 크루즈 팸투어 ▶2019년 12월 5명, 대만 타이베이 101타워 전망대 및 지룽(基隆) 크루즈 터미널 방문 등이다.

출장을 가놓곤 대외비라며 보고서를 올리지 않은 경우도 있었다. 전라북도 공무원, 한국스카우트연맹 관계자 등 5명은 2016년 12월 12일부터 12일간 벨기에·이탈리아·오스트리아·슬로바키아·체코 등 5개국을 ‘유치활동 목적’으로 떠났는데 “유럽에서 스카우트연맹 및 대사관과 면담하였으나 대외비 및 정보 보안 문제로 보고서 미등재”로 등록했다.

전북 부안군 군의원 5명과 의회사무과 직원 3명 등 8명이 2018년 7월 25일부터 8월 4일까지 11일간 미국 출장을 다녀온 후 작성한 보고서. 사진 부안군의회

공무원이 아닌 부안군 군의원은 미국 잼버리에 출장 갔다. 2019년 7월 25일부터 9박 11일 동안 이한수 의장 등 군의원 5명과 의회 사무과 직원 3명 등 8명이 떠났다. 출장 목적엔 “미국 잼버리를 직접 참관하고 운영 사례를 습득하기 위해”라고 썼지만, 정작 잼버리가 열린 찰스턴에 있던 기간은 이틀에 불과했다. 남은 기간은 찰스턴과 한참 떨어진 뉴욕과 워싱턴DC에서 자유의 여신상·월스트리트·첼시마켓·타임스퀘어 등을 방문하는 데 썼다. 출장 경비는 3294만원이었다.

김성수 한양대 정치외교학 교수는 “국내에서 후보지로 선정된 지 8년이란 시간 동안, 실질적인 준비는 많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며 “정치인과 공무원의 도덕적 해이가 지금의 망신 대회를 자초했다”고 말했다. 정치권 관계자는 “차제에 새만금 잼버리에 투입된 예산 1000억원이 그간 어떻게 쓰였는지 제대로 살펴봐야 한다”고 했다.

김준영 기자 kim.jun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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