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리사니] 김은경이 각성했으면 좋겠다

김영선 2023. 8. 7. 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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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선 정치부 기자
전열 흐트러뜨리고 먹잇감
까지 제공… 자리 고집하다
쫓겨나는 불명예 없어야

김은경 더불어민주당 혁신위원장이 그만뒀으면 좋겠다는 목소리가 많다. 잼버리 부실 운영부터 시작해서 LH 철근누락 아파트, 서울~양평 고속도로 종점 변경 의혹,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문제까지 정부를 감시하고 견제해야 할 일들이 너무도 많은데 김 위원장이 민주당의 전열을 흐트러뜨린다. 김 위원장이 난데없이 초래한 ‘노인 폄하’ 논란 때문에 민주당 의원들은 물론 지도부까지 어르신들을 달래느라 몇 날 며칠을 쏟아부어야 했다. 가뜩이나 사법리스크네 뭐네 하며 당 전체가 뒤숭숭한데 있지도 않은 리스크를 하나 더 얹을 필요는 없다.

당 전략을 흐트러뜨리는 데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상대 당에 좋은 먹잇감까지 준다. 국민의힘의 표적이 이재명 민주당 대표에 김 위원장까지 하나 더 늘었다. 김 위원장이 지난달 30일 간담회에서 중학생이던 아들이 “왜 나이 드신 분들이 우리 미래를 결정하냐”며 ‘여명(餘命) 비례 투표’를 언급했다고 말한 것을 ‘노인 폄하’라는 프레임으로 씌운 것도 국민의힘이다. 민주당이 곤욕을 치르는 사이 국민의힘이 경로당 냉방비 지원에 나선 것은 참 얄미우면서도 민주당으로선 자업자득이다. 보통 혁신위가 꾸려지면 상대 당은 뒤처질까 걱정인데 이번 혁신위는 국민의힘에 호재가 됐다.

김 위원장은 고집도 너무 세다. 아들의 발언이 ‘노인 폄하’ 논란으로 번진 뒤 이를 공식적으로 사과(8월 3일)하기까지 나흘이나 걸렸다. 엄마로서 아들의 번뜩이는 생각에 동의하는 것도 좋고 이것을 실수로 말한 것까지도 좋은데 어쨌든 ‘노인 폄하’라는 오해를 불러일으켰고 화가 난 쪽이 사과를 요구하면 그냥 “미안하다”고 하면 된다. 무슨 신념을 꺾는 문제도 아닌데 대한노인회와 괜한 자존심 싸움만 했다. 김 위원장 본인도 곧 60세라며 노인 반열이라 하던데 스스로 어르신들 특유의 고집스러움을 증명한 듯하다.

소통 능력도 부족해 보인다. 정치 경험이 없으면 당과 조율이라도 해야 하는데 김 위원장이 현역 의원을 혁신위에 넣지 않겠다고 우겨서 간신히 2명(황희 이해식 의원)을 채워 넣었다고 한다. 부작용은 단박에 나타났다. ‘책임 정치’라는 측면에서 ‘체포동의안 기명투표’를 혁신안으로 내놓은 것까진 좋았는데 비명계에서 곧바로 “수박(비명계를 뜻하는 은어) 낙인찍기냐”는 반발이 터지면서 당에 또 한 번 분열을 야기했다. 혁신위 내부에선 “김 위원장이 어려움을 딛고 일어선 개인사 탓인지 남에게 싫은 소리 듣는 것을 질색한다”는 말도 나온다.

혁신의 동력마저 상실했다. 김 위원장은 초선 의원들을 깎아내린 이른바 ‘코로나 초선’ 발언을 계기로 언론 인터뷰를 중단했고 이번 ‘노인 폄하’ 논란으로 인해 한창 진행 중이던 전국 순회 간담회를 멈췄다. 한 정치학 교수는 “이미 의원들이 ‘당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이 와서 점령군 행세를 한다, 훈계질 한다’는 말들을 하지 않느냐”고 했다. 당내에서 김 위원장에 대한 평가가 이 정도인데 이래도 욕먹고 저래도 욕먹는 ‘공천 혁신안’을 내놔봤자 온갖 비난의 화살만 꽂힐 뿐이다. 혁신위가 손질을 예고한 대의원제와 관련해 벌써 반발 여론이 들끓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남은 기간 무슨 일이 터질지 모른다는 게 제일 문제다. 지금까지 발생한 일들도 김 위원장이 의도한 게 아니듯 앞으로 터질 일도 김 위원장이 예상치 못한 곳에서 생각지 못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당장 주말을 지나며 돌기 시작한 김 위원장 개인사와 관련된 글이 진위와 무관하게 사람들의 이목을 끌면서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무리하게 혁신위원장 자리를 고집하다가 그간 쌓아온 커리어에 스크래치가 나고 사실상 당으로부터 쫓겨나는 불명예를 안을 수도 있다. 이참에 거취를 결정하든 아니면 그간의 행보를 되돌아보고 각성해 남은 기간을 잘 마무리했으면 좋겠다.

김영선 정치부 기자 ys8584@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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