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에서] ‘묻지마 칼부림’ 공포에 앞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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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쯤이면 내성이 생겼을 법도 한데 아니었다.
서현역 일대 묻지마 칼부림 사건의 현장 보고를 받았을 때 현기증이 났다.
나갈 때마다 방검복을 입을 수는 없다.
모든 묻지마 범죄가 같은 건 아니지만 최근 신림동과 서현역 칼부림 사건은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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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쯤이면 내성이 생겼을 법도 한데 아니었다. 서현역 일대 묻지마 칼부림 사건의 현장 보고를 받았을 때 현기증이 났다. 목격자에 따르면 피의자 최모씨가 몰던 차에 치여 쓰러진 여성 옆에서 한 남성이 “○○이 엄마”하고 소리지르며 오열했다고 한다. 두 사람은 부부였고, 외식하러 가던 길에 난데없는 참변을 당했다. 이런 사연이 하나하나 취재될 때마다 마음에 화석처럼 상처가 쌓인다.
순간순간 걷잡을 수 없이 화가 나기도 한다. 우리는 만약의 상황에 대비한 안전수칙 같은 걸 배운다. 아무리 횡단보도에 파란불이 켜졌어도 혹시 모를 일을 대비해 좌우를 살핀 뒤 건너는 것처럼. 그러나 이번 사건은 어떻게 하면 안전할 수 있었을지 아무리 고민해봐도 답이 없다. 수많은 인파가 몰리는 역사, 즐거운 퇴근길, 백화점 인근 데이트와 나들이…. 이런 상황 속에서 묻지마 칼부림을 예방할만한 안전 수칙 같은 게 있을까. 나갈 때마다 방검복을 입을 수는 없다. 지진 대피 요령 같은 국민 행동 수칙이 있을 리도 없다. 그저 운이 좋으면 산다. 대규모 시민이 흉악 범죄에 말 그대로 무방비로 노출됐다. 여기에 40건이 넘는 살인 예고, 있지도 않은 참사를 지어낸 유언비어까지 며칠 새 분노와 공포를 자아내는 일이 쏟아졌다.
그럼에도 잠시 감정을 다스리고 사건을 바라보면 좋겠다. 모든 묻지마 범죄가 같은 건 아니지만 최근 신림동과 서현역 칼부림 사건은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신림동 사건의 범인 조선은 가정환경이 불우했고, 무직이었다. 그는 경찰에 체포되면서 “열심히 살려고 했지만 안되더라. 그냥 X같아서 죽였다”고 했다. 최씨는 한때 수학 영재로 평가받았지만 중학생 때 정신질환을 앓기 시작했고, 최근 3년은 진료를 중단했다. 둘은 모두 신세를 한탄했고, 내적 분노가 불특정 다수를 향했다. 어렸을 때부터 사회적으로 고립됐던 이들이다. 범죄에 대한 엄단과는 별개로 이런 이들에 대한 사회적 안전망이 얼마나 촘촘한지 점검할 필요가 있다. 서울시에 따르면 전국에 고립·은둔 청년이 송파구 전체 인구(65만8000명)에 육박하는 61만명에 달한다.
두 번째로 이들은 처벌을 겁내지 않았다. 조선은 경찰이 도착하자 순순히 흉기를 버리고 저항 없이 체포됐다. 최씨는 범행 후 자신이 차를 몰고 왔던 방향으로 ‘좀비처럼’ 걸어가다 경찰에 붙잡혔다. 최씨는 범행 전날에도 서현역에 왔지만 무서워 범행을 하지 않고 돌아갔다고 경찰에 진술했다. 범행 직전엔 되돌릴 가능성이 있지만, 일단 범행이 시작되면 처벌을 두려워하지 않은 채 걷잡을 수 없이 폭력적으로 된다. 이런 이들에겐 범죄에 대한 엄벌이 크게 영향을 끼치진 않을 것이다. 고립, 스트레스, 열패감, 적대감 등이 뭉쳐서 흉악 범죄로 표출되기 전에 사전에 신호를 감지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복지·의료·형사 정책에 지자체의 협조가 더해져야 할 것이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극한의 패배감이나 열패감을 느끼는 사람이 늘고, 이를 극단적 방식으로 표출하는 모양새가 많아서 사회 전반적으로 매우 놀라운 상황”이라며 “사회에 적대적인 마음을 갖게 되는 맥락을 이해하고, 이런 게 발생하지 않게 하는 대책을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SNS를 비롯한 플랫폼 기업이 이러한 신호를 포착했을 때 즉각적인 계정 폐쇄 조치 및 유관기관 신고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이에 더해 살인 예고나 허위사실을 유포하는 이들에 대항하기 위한 조치도 검토했으면 한다. 이젠 아이들이 인터넷에 접속하는 것조차 걱정스럽다. 그동안 실명제를 반대했으나 이젠 그럴 명분도 희박한 것 같다.
강준구 사회2부 차장 eye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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