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 안부 물을 수 없는 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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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밖을 바라보면 여름의 이데아 같은 날씨가 펼쳐지고 있다.
분수에서 솟구친 물은 함부로 뛰어드는 아이들의 더위를 식히며 바닥을 적시다 하수구 속으로 흘러들어간다.
장마철의 흐림과 어두움을 통과해 도착한 날씨이기에 더욱 소중하고 찬란하다.
그러나 휴대폰을 꺼내 전날의 기사들을 읽어 내리면 눈앞의 아름다움은 끝나고 공포와 슬픔이 들이닥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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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밖을 바라보면 여름의 이데아 같은 날씨가 펼쳐지고 있다. 구름은 작게 무리지어 떠다니고 햇빛은 맑은 대기를 통과해 도심 사이사이로 내리꽂힌다. 분수에서 솟구친 물은 함부로 뛰어드는 아이들의 더위를 식히며 바닥을 적시다 하수구 속으로 흘러들어간다. 장마철의 흐림과 어두움을 통과해 도착한 날씨이기에 더욱 소중하고 찬란하다.
그러나 휴대폰을 꺼내 전날의 기사들을 읽어 내리면 눈앞의 아름다움은 끝나고 공포와 슬픔이 들이닥친다. 근래의 뉴스를 접하며 긴 공황 상태에 놓인 기분이다. 일을 하다가도 멈칫거리게 되고, 글을 쓰다가도 조심스러워진다. 글 쓰는 일을 업으로 하는 사람으로서 무엇을 어떻게 쓰는가의 문제는 언제나 중요했지만 요즘은 작은 안부를 전하는 일조차 어렵게 느껴진다. 비극이 도처에 있다. 내가 무사한 이유는 단지 운이 좋았기 때문이다.
김종삼, 전봉건, 김구용 같은 전후 모더니즘 시인들의 시집을 펼쳐든다. 전쟁 이후의 세계에서 시를 쓴 이들이다. 작금의 사회가 흡사 전쟁 이후 혹은 전쟁 한복판과 유사하게 느껴지기 때문일까. 김종삼 시인의 ‘원정’이라는 시에는 과수원을 걸으며 바닥에 떨어진 과일을 집어드는 화자가 등장한다. 그러나 과일은 몇 개를 집어보아도 놓여 있던 자리가 썩어 있거나 벌레 먹은 흔적으로 가득하다. 그렇지 않은 과일도 집어드는 순간 화자의 손 안에서 썩어간다. 갑자기 과수원을 지키는 이가 나타나고, 그는 화자에게 “당신 아닌 사람이 잡으면 그럴 리가 없다고”라고 질책하는 장면으로 시는 끝난다.
시는 열려 있는 텍스트이기에 개별적인 해석이 모두 가능하지만, 이 시에서는 전쟁 이후의 폐허를 살아가는 시인의 죄책감이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아름다운 과수원에 들어가 빛나는 과일들을 집어들었더니 모두가 썩어 있고, 그것이 당신 때문이라 질책하는 이가 나타난다. 폐허를 살아갔던 시인의 죄책감을 계속해서 떠올리게 되는 요즘이다.
김선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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