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대법원장 찾기와 '법조 카르텔' 깨기[장세정의 시선]
취임 이후 숨 가쁘게 달려온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2일부터 6박 7일 일정으로 경남 거제시 저도(猪島)에 있는 대통령 별장에서 여름 휴가를 보내고 있다. 전북 새만금에서 1일 개막한 세계 스카우트 잼버리 와중에 폭염 및 준비 부실 논란으로 어수선한 시점이다. 8월 말 9월 초로 예상되는 일본의 후쿠시마 오염수 태평양 방류를 앞두고 거제 고현시장을 방문해 어민과 수산업 종사자들의 여론도 경청했다. 서울에서 저도로 거처만 잠시 옮겼을 뿐 휴가 아닌 휴가를 보내고 있는 셈이다.
취임 첫해는 정치 경험이 부족해 경황없이 보냈다면, 이제는 국정을 두루 파악해 나름 자신감이 생기고 탄력이 붙을 때다. 남은 휴가 시간이라도 대통령이 모든 것을 제쳐 놓고 긴 호흡으로 '대한민국 20대 대통령'의 역사적 위치를 점검하고 생각을 가다듬으면 어떨까. 이승만 전 대통령과 그의 시대를 해부한 복거일(77)의 대하 전기소설『물로 씌어진 이름』(백년동안)에 나오는 비유처럼 윤 대통령의 이름이 역사에 물로 쓰일지, 청동에 새겨질지 집권 2년 차가 판가름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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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 대통령 '저도 휴가 구상' 주목
사법부 개혁과 부패 척결 나서야
국가 기강 바로잡을 중대 기로
」
지난 1년을 돌아보면 내치는 혼란과 갈등의 연속이었고, 그나마 외치에서 상대적으로 눈에 띄는 족적을 남겼다. 한·미 동맹의 신뢰 회복, 한·일 관계 정상화, 한·미·일 안보 협력 강화 등 적잖은 성과를 냈다는 평가다. 이런 흐름을 타고 18일 미국 대통령 별장인 캠프 데이비드에서 열리는 한·미·일 정상회의는 화룡점정 분위기가 연출될 수도 있을 것이다.
외교·안보 분야의 긍정적 흐름을 살려가면서 이제는 집권 2년 차에 걸맞게 내정에서도 분위기 반전과 쇄신을 보여줘야 한다. 아무리 기습 폭우가 쏟아졌다지만, 충청북도·청주시·충북경찰청·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 공직자들이 보여준 재난 대처 모습은 실망스러웠고, 공직사회에 대한 신뢰에 타격을 줬다.
서울 관악구 신림동과 경기 성남시 분당의 칼부림 폭력 사건 이후 SNS를 통해 확산하는 모방형 범죄들을 보면 한국사회의 병리 현상이 임계점을 넘었음을 짐작하게 한다. 당 대표를 뽑으면서 돈 봉투가 살포된 정치권, 철근을 빼먹은 기업 현장의 도덕 불감증은 물론이고 공직사회든 시민사회든 분야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국가 기강(紀綱)이 총체적으로 무너졌다. 나라를 바로 세우기 위해 다음 두 가지가 꼭 선행돼야 한다는 생각이다
첫째, 강력한 반(反)부패 드라이브가 필요하다. LH가 발주한 아파트 91곳 중 15곳에서 철근 누락이 드러나 충격을 주고 있다. 앞으로 얼마나 더 나올지 불안해한다. '엘피아'라는 신조어가 나오면서 이권 카르텔을 깨야 한다는 목소리가 넘친다. 그런데 가장 크고 뿌리 깊은 이권 카르텔로 꼽히는 '법조 카르텔'을 놔두고 잔챙이만 때려잡으면 뭐하느냐는 냉소적인 반응도 적지 않다.
대장동 게이트에 연루된 박영수 전 특검이 구속되면서 '대장동 법조 카르텔'의 실체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검찰총장 출신인 윤 대통령은 검사 시절 개인적 인연을 배제하고, 누구든 예외 없이 철저히 수사하라고 한동훈 법무부 장관을 통해 검찰에 지시해야 한다. '검수완박' 상황에서 이원석 검찰총장은 이빨이 빠질 정도로 고군분투했다지만, 좀 더 화끈한 성과를 내야 한다.
둘째, 사법부의 개혁과 쇄신이 무엇보다 절실하다. 공직사회뿐 아니라 사회 전반에 걸쳐 비상식이 만연하고, 불의와 불법이 제대로 응징되지 않고 있다. 2019년 '조국 사태' 이후 죄를 지어도 정치적 유불리에 따라 처벌이 달라지고, 일부 판사들이 재판을 차일피일 미루니 정의와 불의가 뒤섞였다는 사건 당사자들의 하소연이 적지 않다.
여러 원인이 있겠지만, 김명수 대법원장 체제의 책임이 가장 무거워 보인다. 2017년 당시 문재인 대통령이 임명한 김명수 체제에서 우리법연구회라는 '사조직'이 요직을 차지하고 재판이 정치적으로 흐른다는 지적이 줄곧 제기됐다. 김 대법원장의 임기 만료(9월 24일)를 계기로 법조계부터 새 바람을 일으켜야 한다.
20일 전후로 발표될 후임 대법원장은 도덕성·역량·국가관을 갖춰 누구나 존경할만한 법조인이어야 한다. 행정부와 입법부가 흔들려도 사법부가 중심을 잡아주면 대한민국은 버틸 수 있다. 어쩌면 대통령이 새 대법원장을 어떤 인물로 물색하느냐에 앞으로 나라의 명운과 사회 기강이 좌우될 수 있다.
'바다의 청와대'라는 청해대(靑海臺)에서 상경해 9일 용산으로 출근하는 윤 대통령의 여행 가방 속에 어떤 구상이 들어 있을까. 가을바람이 불어올 무렵이면 하나씩 체감할 수 있는 구체적 변화로 나타나길 바란다.
장세정 논설위원 zh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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