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홍규의 달에서 화성까지] 과학이 된 화장실…3평 남짓 우주선 공간에서 볼일은 어떻게
비행기에서 나는 ‘콰아~’하는 굉음에 한두 번 화들짝 놀란 경험이 있으리라. 부분 진공상태인 화장실 배관에 배설물이 순식간에 빨려 들어가면서 나는 소리다. 이렇게 버린 오물은 탱크에 저장해 뒀다가 공항에서 전용 탱크로리로 거둬간다. 하지만 세면대에서 쓴 물은 기체 밖으로 분사돼 곧바로 얼어붙는다. 어제 내린 비에는 그렇게 한 번 얼었다가 녹은, 누군가 버린 물이 섞였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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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형 진공장치로 대소변 처리
“어제 마신 커피는 내일의 커피”
땀·오줌 등 재활용 90%에 달해
남극·저개발국 화장실에 응용
」
기저귀 차고 귀환한 우주인
당연히 우주에서도 화장실은 필수다. 2021년 국제우주정거장(ISS)의 65번째 임무에 참여한 우주인 4명은 귀환할 때 기저귀를 착용했다. 선내 화장실이 망가졌기 때문이다. 우주인들은 진공청소기 같은 장치로 대소변을 처리하는데, 이를 탱크까지 내보내는 팬과 튜브가 어쩌다 문제를 일으킨다.
미 항공우주국(NASA)은 요즘 아르테미스 승무원이 쓰게 될 ‘범용 폐기물 관리 시스템’(UWMS)이라는 격조 있는 이름이 붙은 소형 변기를 개발 중이다. 그런데 UWMS의 시제품에서 악취가 나는 것은 더 이상 비밀이 아니다. UWMS는 3평도 안 되는 공간에서 4명이 배출하는 용변을 처리해야 하는데, 아직 갈 길이 먼 것 같다. 우주선 내에서는 떠다니는 땀과 승무원의 소변을 걸러서 쓴다. 액체의 재활용률이 90%에 달한다. “어제 마신 커피는 내일 마실 커피”라는 NASA 우주인의 자조적 독백이 와 닿는다.
남극선 대변 불태워 본국에 보내
‘하얀 화성’이라는 남극에서는 어떨까. 남극 내륙고원 탐사대원들도 좌변기를 쓴다. 필자 동료의 체험담을 그대로 옮긴다. “화장실에서 용무 보기 전에 단추를 누르면 기저귀처럼 생긴 하얀 종이가 변기 밑에 펼쳐진다. 일을 마치고 페달을 밟으면 그 아래에 있는 마대로 내용물이 툭 떨어진다. 다시 단추를 누르면 토치에서 섭씨 2000도의 열기를 뿜어 대변을 순식간에 재로 만든다.” 남극에서는 이렇게 오물을 처리해 본국으로 돌려보낸다. 환경 보존에 관한 유엔 협정 때문이다.
해양수산부 산하 극지연구소는 남극 해변 두 곳에 세종·장보고 과학기지를 운영하는데, 이와 별도로 2030년까지 내륙기지 건설을 계획하고 있다. 그런데 이곳 내륙에서는 1년 동안 물류 보급이 중단되기 때문에 연구원들은 고민이 많다. 식재료로 쓰는 작물도 직접 재배해야 하고, 오물과 쓰레기 처리도 이전과 다른 방식으로 해결해야만 한다.
올 초, 폭설이 내린 한라산 1100고지는 눈꽃을 구경하러 온 인파로 북적였다. 주변 도로는 주차 전쟁터가 됐지만, 화장실에는 ‘동파로 이용 불가’라는 팻말이 걸렸다. ‘보전지역’이라서 작은 공사도 하기 힘든 이곳은 ‘무방류 순환식’ 화장실밖에는 답이 없다. 오물을 정화해 재활용하는 방식이다.
빌 게이츠, 삼성에 손 내민 까닭
저개발 국가에서는 상황이 더 심각하다. 물과 하수처리 시설이 부족한 지역에는 제대로 된 화장실이 없어 9억 명 넘는 사람이 야외에서 용변을 봐야 한다. 그 결과 수질 오염으로 한 해 36만 명이 넘는 5세 미만 아이들이 병에 걸려 목숨을 잃는다. 끔찍한 일이다. 빌 게이츠 재단이 물과 하수처리가 필요 없는 화장실 상용화에 팔을 걷어붙인 이유다. 세계 유수 대학과 연구기관들이 뛰어들었지만, 기술 개발과 양산에 어려움을 겪었다.
빌 게이츠는 한국의 이재용 회장에게 도움을 청했다. 삼성은 3년의 연구개발 끝에 최소의 에너지로 배출수를 정화하는 동시에, 가스를 적게 내뿜는 화장실을 소형화하는 데 성공했다. 연구진은 열처리와 바이오 기술로 처리수 재활용률 100%를 달성했다. 재단은 이를 대량 생산해 보건 환경이 열악한 나라에 제공하고 기업은 특허를 무상으로 쓰도록 했다.
빌 게이츠 화장실은 화성에서도 잘 작동될까. 화성의 연평균기온은 영하 65도, 기압은 6.4밀리바, 남극점의 겨울 최저기온은 영하 63도, 기압은 680밀리바다. 혹한과 극한의 대기, 우주방사선도 위협요소다. 이 때문에 소재와 기계장치·전자회로를 우주급으로 교체해야 할지도 모른다. 화성에서도 화장실은 가장 편안한 공간이어야 한다. 이처럼 국립공원과 낙후된 지역과 극지에서 적용하게 될 기술을 ‘달에서 화성까지’(M2M·Moon to Mars) 확장하는 것은 얼마나 매혹적인 일인가.
NASA, 달·화성 탐사 위해 국제협력
지난 6월 영국 런던에서 NASA가 주최한 국제 M2M 워크숍이 열렸다. 마이클 패러데이의 크리스마스 과학강연(1856)으로 유명한 영국 왕립연구소에서다. 패러데이는 “전기를 어디에 쓰느냐”고 묻는 재무장관에게 “당신은 거기에 세금을 매기게 될지도 모른다”고 점잖게 응수한 물리학자다. 2022년 M2M 워크숍에서 NASA는 해외 참가자 의견을 듣고 63개 M2M 목표를 확정했다.
이번에는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한 청사진을 다 같이 논의하는 자리였다. 우리는 총 200쪽 넘는 문서들을 읽고 회의에 들어갔다. 15개국 대표와 NASA 본부 고위급 30여 명이 머리를 맞댔고, 파멜라 멜로이 NASA 부청장(차관급)이 워크숍을 총괄했다. 그는 여성 최초의 우주왕복선 선장으로 세 차례 ISS 건설 임무에 참여했으며 M2M을 기획한 주인공이다.
NASA는 해외 기관들을 진정한 파트너로 대했다. 본부 4개 임무국 국장과 부국장급 인사들은 회의를 주재하고 참가자 의견을 청취했으며, 깨알 같은 메모를 챙기며 질문에 즉각 대답했다. 그들은 현장 과학자였거나 우주 임무를 통해 잔뼈가 굵은 엔지니어나 기술 관리직들이다. 그들이 우리 일행에 물었다. “한국의 M2M 과학목표는 무엇인가.” “한국 정부 당국자는 어디 있나.” 대답하기 어려웠다. 우리는 귀국한 뒤, 정부에 회의 결과를 보고했다.
문홍규 한국천문연구원 우주탐사그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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