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봉렬의 공간과 공감] 철거 위기의 현재 유산, 옛 서울힐튼호텔

2023. 8. 7. 0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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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봉렬 건축가·한국예술종합학교 명예교수

남산 자락에서 서울역을 내려다보는 옛 서울힐튼호텔은 1980년대를 대표하는 뛰어난 문화유산이다. 당시 서울의 특급호텔들은 일본 설계를 수입해 흰색 타일 외장의 목욕탕(?) 같은 건물이 대부분이었다. 힐튼호텔은 짙은 회색의 발색 알루미늄 패널로 감싼 혁신적인 모습이었고, 세련된 구조와 완벽한 디테일은 아직도 새것 같은 현대의 고전적 건축이다.

공간과 공감

수백 개 객실을 가진 특급호텔은 그 기능상 긴 판상형 건물이 되기 쉽다. 힐튼호텔은 길이감을 줄이기 위해 양 날개를 구부려 병풍 같은 형태를 취했다. 흡사 남산을 두 팔 벌려 감싸 안은 모습이다. 지형적 환경과 어울리면서도 구불거리는 남산길과 대조되는 장소의 성격을 뚜렷이 각인했다. 경사지에 위치해 12m 높이의 아래위 지표면 차이를 거대한 로비 공간에서 훌륭하게 극복했다. 위와 아래 두 개 층에 나누어 로비를 두었고, 위층의 출입구에서 아래 로비를 향해 거대한 계단을 설치했다. 계단 중간층에 조각 같은 분수까지 설치했다. 2층까지 개방되어 모두 4개 층이 하나의 공간 안에서 수직적으로 관통하고 시각적으로 연속된다. 계단은 단순히 이동용 도구를 넘어 그 스스로 공간의 주인이 되었다.

힐튼호텔은 1978년 당시 미국 일리노이 공과대학 교수였던 김종성이 설계했다. 김 교수는 3대 모더니즘 건축가인 미스 반 데어 로에의 제자였고 미스의 건축적 유전자는 힐튼호텔에도 잘 나타난다. 그러나 병풍형 본채나 입체적인 로비 공간은 김종성 특유의 지형 해석과 조형 의지의 결과다. 건물주였던 대우그룹이 해체되어 소유주가 바뀌었다가 최근 국제적 자산운용사에 재매각되었다. 호텔을 철거하고 대규모 복합시설을 지어 이익을 극대화하려 계획 중이다. 이러한 개발 계획을 건축가 김승회는 “신라 범종을 녹여 무쇠솥을 만들려 한다”고 비판한다. 건물 전체가 어렵다면 로비 공간이라도 부분 보존하기를 소망한다. 보존을 통한 이익 창출이라는 품격있는 개발 모델도 가능하다.

김봉렬 건축가·한국예술종합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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